댓글이 삶으로 내려앉을 때

by 해안 강민주

댓글이 삶으로 내려앉을 때


해안 강민주


브런치에서 댓글을 달다가

두 번이나 전화기를 들었다.


친구가 없다는

어느 작가의 고백 아래

나는 이런 댓글을 쓰고 있었다.


“저는 친구는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 문장을 남기려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떠올랐다.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제야 마음에 걸렸다.


망설임보다

그리움이 먼저였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밝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짧은 안부와 웃음 몇 번.


그것이면

충분했다.


나는 그 선생님을 좋아한다.


오랫동안 장애인 목회를 해온 남편 곁에서

묵묵히 교회를 돌보고

세 아이를 키우며

틈틈이 공부를 놓지 않았던 사람.


내가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소개했을 때

“봉사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라고 말해주던 사람.


이번에 스포츠스태킹 봉사단에

함께해 달라고 했을 때도

선뜻 고개를 끄덕여주던 사람.


그렇게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그로 인한 상처까지

숨기지 않는 사람.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거창하지 않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내 마음이

조금 바르게 놓이는 것.


저녁이 되어

다시 브런치에서 댓글을 달다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읽는 순간

오래전 장면이 떠올랐다.


새벽 공기 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줄을 서

번호표를 받아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주었던

올케와 남동생.


그 고마운 일을

나는 왜

이제야 떠올렸을까.


이번에는

올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정말 고마웠어.”


잠깐의 침묵 뒤에

수화기 너머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말로 꺼내는 순간

묵혀 있던 시간이

조용히 제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또 한 번.


무속공화국을 비판하는 글에

댓글을 달다가

문득 떠올랐다.


내가 왜

실명까지 드러내며

세상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나는

소위 신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은 미친 것이 아니라

마음을 크게 다쳐

신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몸이 낫듯

부서진 영혼도

다시 나을 수 있다고.


그 치유의 길을

맹신이 아니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보고 싶었다.


내가

그 길을 지나온

사람이니까.


초심을 떠올린 나는

브런치 초기 글들을

다시 퇴고해 볼 생각을 한다.


요즘 나는

글을 많이 쓰기보다

잠시 멈춘다.


댓글을 남기다가

떠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전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 본다.


또 다른 이들의 글을 읽으며

내가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을

조용히 가늠해 본다.


어쩌면 글은

종이 위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하루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어


사람을

조금 더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밀리의 서재 에세이 공모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시면 많은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millie.co.kr/v4/millieRoad/31449/104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