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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정상성’ 배우기 1

삶의 속도는 김수현의 내러티브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애를 만드는 사회적 요인이다. 비장애인에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삶의 속도는 연구참여자에게는 ‘정상’으로의 압박으로 받아들여진다. 자 신의 속도와는 다른 빠른 속도와 활동에 대한 요구는 김수현을 위험에 노출시켰다. 또한 장애인에 게 동일하게 기대되는 ‘정상적인’ 활동 능력은 그녀에게 사고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비장애인에게 맞추어진 수행 속도는 장애인의 신체적 한계를 뚜렷하게 나타내고, 사회적으로 장애를 발생시킨 다. 하지만, 만약에 김수현이 잘 걸을 수 있도록 땅이 충분히 평평하게 설계된다면, 그녀의 한계는 눈에 띄지도 않고 사회의 모든 활동에 온전히 참여하는 데 문제를 발생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천 천히 움직여야 하고 활동력이 부족한 연구참여자에게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속도와 능력에 대한 기대치는 다양한 활동으로부터 그녀를 배제시켰다.

김수현의 내러티브에서 등장하는 사자 이야기는 장애인들의 생애사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것은 아기 사자가 태어나면, 낭떠러지에 떨어뜨려, 살아서 돌아온 사자만을 부모 사자가 키운다는 이야 기이다. 이것은 어느 생태계에서나 강한 존재만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지식 을 받아들인 사회는 약함은 곧 부족한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앞의 사자 이야기는 이미 잘못 된 내용으로 실제로 어미 사자는 아기 사자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등의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돕는다고 밝혀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진 ‘정상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김수현을 다 른 모습의 자신을 가족들이 싫어할지 모른다고 걱정하거나, 자신이 불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부 모로부터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내 아빠는 매일 바빴고, 다정한 아빠는 아니었지만, 가족끼리 함께 보내야 하는 시 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는 꼭 시간을 내어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축하해주고, 어릴 적에는 주말 아침에 핫케이크를 먹으러 자주 갔다. 그 리고, 가족들끼리 때때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거나, 계절에 따라 산책, 등산, 스키, 골프 따위를 하러 다녔다. 나는 집에만 있고 싶은 적이 많았기 때문에, 활동적인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는 언제나 마지못해 끌려가다시피   했다. 엄마는 집에 자주 누워있는 내가 심심할까 봐    언젠가 라디오를 사다 주었다. 나는 그걸 선물 받고 너무 기분이 좋고 들떠서, 자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내가 기분이 좋아 보이고 웃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그날  밤에 아빠는 집에 와서 라디오를 보고는 너무    화가 나서, 나가서 자전거를 타거나 뛰어다녀야 한다면서, 라디오를 집어 던져   버렸다. 나는 큰소리가 나는 것을 너무   무서워했기 때문에 불안해 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내   딸한테   이렇게 함부로 하면 같이 못 산다고 이혼하자고 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나에 대한 교육방식에 대해 엄청나게 싸웠다. 엄마는 골프채로 결혼할 때   할머니가 사 주셨다는, 제일 아끼는 자개가 박힌   장롱문을 내리쳐 부쉈다. 생각해보면, 엄마도 아빠도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아픈 아이를 처음 낳아서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을 막막한 상황에 너무나 지쳤던   것 같다. 아빠는 언제나 나에게 예외를 두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겨울에 산책하다가 얼음이 있어서, 내가 비틀거리거나 못 걷겠다고 해도 도와주거나 다른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빠는 다들 이런   길을 걸어 다니는데, 뭐가 무섭다고 매일 우냐고 화를 냈다. 아빠는 손을 앞뒤로 움직이고 발을 구르면서 어떻게 똑바로 힘주어 걷는지를 보여주고, 나에 게 똑같이 해보라고 했다. 엄마가 나를 도와주려고 해도, 아빠는 내 딸이 못하는 건 없다고 했다. 나는 다른 어른들처럼, 아픈 나를 봐주지 않는 아빠가 미울 때가 많았다. 아빠는 뭐든지 잘하고, 강했다. 아주 어릴   때는 내가 그렇게 멋진 아빠의 딸이 아니 라는 것으로 밝혀질까 봐   두려운   적도 있었다. 나는 아빠가 강하지 않고 약한 나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서 아빠   사자는 자신의 아이들을 절벽에서 떨어뜨리고 살아남은 아기 사자들만 데리고 산다는 내용을 읽었는데, 나는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아픈 아이를 창피해서 다락방에 가둬놓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볼 때도, 나는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어쩌면 가족들이 나를 싫어하거나, 내가 버려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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