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지는 봄날, 오늘. 4월 4일.
오늘은 오래도록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날이다.
2026년 1차 검정고시일.
작년 두 번의 시험을 패스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 시험에 딸이 갈 것인지...아니면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기고 지레 짐작하고 멈추지 않을지
두 가지의 갈림길에서 딸의 선택이 전자이기만을 바래왔다.
작년 11월 이후 달라진 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방안에서 침잠해 온 시간들이 의미가 있었구나.
고치에서 실을 뽑기 위해 머물러 온 시간이었구나. 하며 아이에게 너무나 감사했던 시간들이 떠올랐고 희망은 있다고 생각해왔다.
시험날이 다가오며
딸은 감기에도 걸리고 적당히 짜증도 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시험을 앞두고 예민해진 거라는 생각이 들며 불안해졌다.
시험날이 다가오니 신체화가 시작된 걸까? 자퇴 이후로는 신체화증상이 없었는데..
정작 예민했던 것은 나였던 것 같다.
딸은 시험을 이틀 앞두고
공부를 시작했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검고 문제집과 검정고시앱으로 예상문제를 풀며
"80점 이상들은 나오는데 왠지 불안하네..수학은 때려칠까. 도대체 켤레복소수가 뭐야. 나때 이런거 안배운 것 같은데?? 영어는 무조건 100점이고. 국어는 92점 나오네."라며 농을 쳤다.
그런 딸을 보며 옆에서 모르는 문제는 챗지피티에 물어보기도 하고
<시험 이틀 앞두고 해야 할 일> 같은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시험을 하루 앞둔 어제.
하루종일 딸 생각을 했다. 뭐하고 있을까. 공부는 어제처럼 하나? 학원은 갔나? 기분은 괜찮을까? 등의 생각.
퇴근하기 직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설 이후 처음 전화였던가?
나도 참 무심하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네.
친구에게 그리 다정하며 엄마에게는 무심한 딸이다.
엄마는, 딸이 연락이 없으니 당신께서 답답하셔 안부를 물으시려 전화하셨다.
당신 손녀의 검정고시는 말하지 않았다. 작년에 두 번 안갔던 경험 때문에
누군가에게 시험을 미리 말하고 싶지 않았다.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끊기 직전 엄마는 나에게 말씀하신다.
"하루라도 네 생각을 하지 않는 날들이 없단다. 건강하자. 잘 지내~"
나의 엄마는 당신의 딸 생각을 하고그 딸은 자신의 딸 생각을 한다.
이런 것이 내리사랑인가.
엄마의 사랑을 받고 힘을 내어 엄마 덕분에 내가 내 딸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힘이 생긴다.
내 딸은 또 자신이 돌볼 아이를 감싸안고 무한한 사랑을 속삭일 것이다.
<깨어있는 부모>의 셰팔리 차바리 박사는 말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아이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부모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엄마와의 짧은 통화 후, 집으로 돌아가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검정고시를 보는 날을 그렇게 긴장하며 기대하며 기다려왔는가?
-아이가 검고에 합격하여 고졸학력을 따놓아야 대학을 가든 취직을 하든 무엇을 하든
걸림돌이 안 될 것이라 믿었다.
고졸학력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어느 정도 직장이나 일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학력이 고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태지나 다른 예술가들처럼 중졸의 학력으로도 일반인을 훨씬 뛰어넘은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우리 딸이 그러지 말란 법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한다. 이것은 남들과 다르고 싶은 나의 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혹시 모를 딸의 다른 선택에 숨구멍을 틔워주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기도 하다. 딸에게는 결코 실망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어떤 선택이든 지지하고 싶은 것이 기본 방향이다. 나는 딸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검정고시를 보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검정고시를 보지 않는다면 당장의 고졸학력은 얻을 수 없고 대학입학은 미루어지거나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딸의 삶은 멈추어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방향을 향할 것이다. 그것이 어느쪽인지는 딸의 선택이다.
예상되는 걱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딸이 자신의 목표한 바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까, 도전하기 전에 두려워보이는 허상에 굴복하여 발걸음을 멈추지나 않을까, 무기력해지지 않을까, 다시 살이 찌고 그 모습을 본인이 싫어하여 다시 숨어버리는 도돌이표가 찍히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두려움이다. 두려움 앞에서 굴복하고 싶지 않다.
이런 정리가 되고 나니 마이클싱어의 철학이 떠올랐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파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것에 저항하면 원하는 것은 영영 멀어질 것이다.
이러해도 좋고 저러해도 좋다.
파도에 몸을 내어맡기고 순응해 보라.
삶은 저항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딸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사랑하는 엄마가 아니다.
어떤 모습이라도 어떤 짓을 하더라도 딸이 내 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우리 딸을 내게 보내주신 것은 어떤 큰 의미가 있어서일 것이다.
딸의 어떤 선택이라도 나는 지지한다. 그리고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정리 끝에 비로소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그리고 순수히 웃는 얼굴로 딸을 맞이할 수 있었다.
딸은 자기 전에 부탁을 건넸다.
"엄마 내일 아침에 치즈계란말이 해주세요"
얼마든지!
오늘 아침 딸은 기분좋게 일어났고 무사히 시험장에 들어갔다.
학교 근처 칼국수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의 과목만을 남겨둔 상태이다.
기도한다.
딸이 자신으로써 살아갈 수 있기를,
삶의 걸림돌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근육을 키워주는 아령이나 덤벨같은 존재라는 것을.
모든 세상의 생명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매일의 기쁨으로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이미 자신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딸이기에,
흐드러지게 떨어져 있는 매일의 행복을 주워 삶의 조각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이렇게 엄마로서, 인간으로서 한층 더 성장한다고 느낀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고맙습니다.
딸이 들어간 시험장.
나처럼 기다리고 있는 모든 부모님들,
그동안 얼마나 가슴이 시리고 힘들었을까.
모두들 웃을 수 있기를, 가슴을 열고 아이를 폭 안을 수 있기를, 진정한 교감을 나눌 수 있기를...
축복받은 기회!
아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인 축복받은 부모님들.
큰 뜻을 품자!!
간밤의 비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모체에 붙어있는 꽃잎들.
학교 옆의 어린이공원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했다.
꽃잎은 어디에 있어도 존재감을 뿜어낸다.
가벼운 동네산책.
좋은 날은 반드시 와요!!
그날이 오늘이예요. ^^
샛노란 담장. 초록빛의 나무.
불완전한 프레임, 완벽한 그림.
오래된 동네의 매력과 미학.
마을을 몇십년을 지킨 듯한 단독주택.
오전에는 학교 근처 카페에서 아몬드라떼를 마시고
딸을 기다려 점심시간에 나온 딸과 함께 먹은 칼국수.
나는 그냥 칼국수, 딸은 들깨칼국수.
샌드위치를 싸오기는 했지만 따뜻한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딸을 들여보내고 아침 카페 옆의 카페에 와서 주문한 아메리카노와 버터떡, 에그타르트.
이 맛있는 걸 혼자 먹어서 미안하네....
딸, 고맙고 사랑해.
날개를 펼치고 기지개를 켜고 있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안타깝고 안스러운 때도 있지만
엄마가 현명하고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네.
내 손으로 너의 얇고 섬세한 날개를 떼어주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단단해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
사랑과 애정을 담아.
#검정고시
#자퇴
#곧성인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