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성인인증서
성인 인증서를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 어떤 이는 직장인이 되고 누군가는 대학 신입생이 되고 또 다른 이는 지나간 시간을 되풀이하는 고난을 자처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성인이라는 인증을 하는 점이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현대판 성인인증서이며 졸업식은 현대의 성인 통과의례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성인인 이들에게 어떤 시선을 보내고 있는가? 아직 아이라고 하대하는가? 이제는 성인으로 대우하는가? 우리 사회는 ‘아직’과 ‘이제’라는 이 시점에서 어떤 눈길을 보내고 있는가? 혹시 이들을 경제적 도구로만 보는 옹색한 눈길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 경제적 독립이라는 옹졸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는 않은가? 이들은 ‘이제’라는 대접을 기대하며 스펙, 경력, 경험을 쌓기 위해 청춘을 아파한다. 스펙, 경력, 경험은 삶을 가꾸는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것들을 자신의 의지보다는 사회가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지는 않을까? 스펙, 경력, 경험을 경제적 측면으로 과하게 내몰아서 이들을 경력에 매몰되게 하고 경험에 얽매이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력에 매몰되지도 강요한 경험에 얽매이지도 않고서도 이들이 ‘아직’보다는 ‘이제’에 무게가 실리는 대접을 받으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우리는 이들에게 그러한 도움을 주고 있는가?
이들보다 앞선 사람 중에는 눈살을 찌부러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먼저 왔다고 눈앞의 이해관계에서 ‘아직’과 ‘이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뒤에 온 사람의 권리를 의무로 강요하고 앞선 자의 이득을 뒤에 온 사람의 희생으로 채우는 볼썽사나운 짓을 서슴없이 벌인다. 이러한 행위는 뒤에 온 사람이 건강한 성인이 될 가능성을 짓밟는 행위이다. 앞선 자의 그러한 행위는 매우 파렴치하며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오로지 금전에만 매달리는 그 파렴치한의 몰염치를 국가와 사회는 외면하거나 심지어 도와주기도 한다. 이런 앞선 자들의 파렴치한 행위들에 대항하여 옳은 목소리를 내는 뒤에 오는 사람을 길러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공동체에 있다.
국가가 성인을 인증해 주는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성인 통과의례 풍속의 기록이 있다. 들돌, 지게 짐, 새참 내 가기 등이 있었다.
들돌은 주로 마을 앞 당산나무 아래에 있었으나 마을에 따라 여러 곳에 있었다. 들돌은 성인인증의 역할도 했다. 집약적 농업사회에서 성인인증의 의미는 품삯의 차등이다. 이때부터 노동을 제공하면 어른에게 적용되는 품삯을 받게 된다. 그런데 사람의 성장 속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난다. 1년에 한 번으로 고정되면 그 차이를 반영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정월대보름, 유두, 칠석, 추석 등에도 사용함으로써 개인의 성장 차이를 배려했다. 들돌의 종류는 능력의 구별을 위해 1 인력, 2 인력, 3 인력도 있었다. 들돌 들어 올리기는 주로 명절에 사용함으로써 온 동네 사람들에게 성인인증을 공표하는 효과도 있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지게의 형태는 한반도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유물의 출토와 기록을 바탕으로 학계에서는 삼한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지게 짐은 지게에 얹은 짐으로 성인의 대우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인정하는 객관적 기준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같은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성인과 아이의 땔감 한 지게의 부피는 차이가 있고 당연히 값도 차이가 있다. 지게 짐은 지게로 짐 지는 능력을 눈으로 살피지 못하고 품삯을 정하는 일을 할 때는 유용한 방안이다. 성인 몇 명, 소년 몇 명으로 산정하여 일의 총예산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녀들의 성인인증의 방식은 새참 소쿠리 내 가기였다. 이를 ‘손 더듬’이라 했다. 가녀린 소녀가 열댓 명의 식사를 야외로 옮겨서 준비하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다. 큰 소쿠리에 일꾼들이 먹을 음식을 담아 머리에 이고 비포장길에서 쏟지 않고 배달하는 것은 성인들도 쉽지 않다. 특히 좁은 논둑길을 지나가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빈 몸으로 걸어가기도 쉽지 않다. 열댓 명의 밥, 밥그릇, 국, 국그릇. 각종 반찬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이 무게를 담은 소쿠리를 온전히 머리로 떠받치고 양팔을 올려 잡고 눈을 내리깔고 좁은 논둑을 지나가는 일이다. 이 일을 가녀린 소녀에서 성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네에서 계속 아이로 대접받게 된다.
동네에서 소년과 소녀가 성인인증으로 얻는 것은 단순히 온전한 품삯인 경제적 이득만은 아니다. 그들은 성인의 능력에 아울러 성인으로써의 자질도 보여주어야 한다. 당연히 어른들은 성인인증을 통과한 소년과 소녀에게 마을 공동체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대우해 주어야 한다. 또한 성인인증을 통과한 사람도 마을 공동체의 건강한 유지를 위해서 인격적 성숙을 도모해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건강한 구성원으로서의 자질은 공동체 유지, 발전에 기여한다. 이 자질에는 인격과 도덕성, 지혜와 판단력, 책임감과 독립심 등이 있다. 정직과 신뢰의 바탕에서 예의범절이 나타나며 인내와 절제를 바탕으로 나눔과 배려가 실현된다. 경험과 경력에서 사리분별력을 키움으로써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한다.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독립심을 배양하고 독립적인 생활 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덕목들이 전통 사회에서 성인인증으로 얻으려는 공동체의 내면화된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건강한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이라는 최종 목적에 부합된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현대 사회의 들돌, 지게 짐, 새참 내 가기의 상징적 표상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나를 세워준 생각들로 살아간다. 부모, 사회, 국가가 요구하는 사회구성원으로 그 자격에 맞는 활동으로 생활한다. 부모의 자식, 학교의 학생,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활동에 충실하면 문제는 없다. 이 활동의 중심은 주로 학습에 주안점을 둔다. 성적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입장과 그래도 가끔은 하늘을 보자는 입장이 팽팽하다. 학습은 일생을 보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가능성을 높이는 도구이다. 대학 입학이라는 학습 기회의 연장은 건강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가능성을 높여주겠지만 일생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성인인증 이후에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삶을 가꾸기 위해 공동체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노력은 계속된다. 성인인증은 건강한 구성원으로서의 공동체에 기여하라는 공동체의 요구다. 따라서 고등학교 졸업장은 대학 졸업장보다 더 무게가 있다. 전자는 전체 공동체의 관심사이고 후자는 자신이 선택한 공동체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일률적으로 정하는 성인인증이기는 하지만 이제부터 부모와 사회와 국가는 다른 자질과 역할을 요구한다. 나를 세워주었던 사회의 배려를 줄이면서 공동체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자질을 갖춘 스스로 서는 사유를 요구한다. 사회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보다는 공동체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사유를 만드는 사람이 되길 요구한다. 타인이 세워주는 나가 아닌 스스로 서는 나를 기대한다.
건강한 공동체의 구성원이란 자신 내면에 공동체의 가치를 승화시킨 사람이다. 공동체는 이런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성인인증이라는 통과의례를 발명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외형적 식별이 가능한 성인 능력으로 자동차운전면허 취득, 취업과 대학 입학, 개인적 성취-학업, 예술, 운동, 기술 등-을 요망한다. 이는 공동체의 건강한 구성원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충분조건은 건강한 구성원이 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갖출 수 있다. 이러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외형적인 목표 너머에 관한 사유, 내면의 균형적 발달과 성장, 책임감을 갖춘 주체적 태도, 공동체에 관한 관심, 지속적인 자기 성찰 등에 나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들돌, 지게 짐, 새참 내 가기, 고등학교 졸업장 등은 성인인증의 기능이다. 성인인증의 기능은 건강한 공동체의 구성원을 보충하고 확충하려는 의도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러한 건강한 공동체 구성원을 보충하고 확충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 대표적인 제도가 교육시스템과 과거제도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맥락은 여전히 건재하다. 건강한 구성원이란 공동체의 본질을 이해하고 공동체의 질서와 가치를 내면화한 사람들이다. 건강한 공동체 구성원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공동체는 유지 발전을 지속해 나간다. 건강한 공동체 구성원은 기존 질서에 맹목적으로 복종해서는 될 수 없다. 그들은 공동체의 폐해를 제거하고 그른 것을 바로잡는 목소리를 낸다. 올바른 것을 유지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행동을 한다. 따라서 공동체는 이들에게는 경제적 수단을 제공하고 공동체의 본질을 사유할 수 있는 여건을 지속해서 제공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은 국가와 사회가 짊어져야 할 막중한 책임이자 의무이다. 개인이 공동체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의 충분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 기대수명의 연장이다. 100세는 공동체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삶을 가꾸어 나로 서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고등학교 졸업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인간의 다양한 자질을 배양하고 증대시키는 노력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함으로써 공동체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삶을 시작하는 통과의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