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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不惑), 존재의 중심을 묻다

by 김기황

“불혹(不惑).” 이 단어는 동양의 고전 『논어(論語)』에서 공자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말한 인생의 한 시기를 지칭한다. 그가 말한 ‘불혹’은 문자 그대로 ‘미혹되지 않는’ 상태, 즉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그는 자신이 마흔 살에 이르러 세상에 대해 더 이상 미혹하거나 혼란하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생각이 20~30대의 제자들에게는 얼마나 아름다운 유혹이었을까? 전통적으로 불혹은 삶에서 흔히 겪는 혼란과 갈등을 지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이해가 자리 잡는 시기로 여겨졌다. 불혹 이전에는 사람도 혼란에 흔들리며, 욕망과 실패, 불안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불혹’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나이로서의 ‘마흔’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자가 경험한 불혹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납득하는 능력’이자, ‘내면의 질서가 확립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불혹은 주로 연령의 경계로서, 인생의 성숙을 상징하는 지점으로 해석되어 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흔 즈음은 ‘인생의 중간 지점’으로 여겨지며, 혼란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명료히 깨닫는 시기로 이해되었다. 사마천이 그랬고 다윈이 그랬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 연령 기준은 점점 그 의미가 흐려지고 있다. 의학과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평균 수명이 크게 늘었으며, 직업 변화, 사회 구조의 유연화, 개인의 다양성 존중은 ‘성숙’과 ‘안정’의 시기를 훨씬 넓고 복잡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수많은 현대인이 마흔, 쉰, 예순을 넘어도 여전히 흔들리고 혼란스러워하는 현실을 맞닥뜨린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조차도 내면의 허기와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이처럼 불혹을 단순히 나이의 문제로 바라보는 해석은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과 맞닿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현대에서 불혹이란 무엇일까? 불혹은 더 이상 ‘나이’가 아니라, ‘존재적 자각의 능력’이다. 삶의 흔들림과 파고 속에서도 내면의 중심을 잃지 않는 능력, 외부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자기 존재의 확신이다. 이는 어떤 ‘상태’라기보다 ‘능력’에 가깝다. 능력은 연령과 무관하게, 어떤 순간 찾아오기도 하고, 또는 평생에 걸쳐 다듬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들림은 계속된다. 경제적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 삶의 불확실성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불혹을 이룬 이는 그 흔들림의 본질을 꿰뚫고 바라본다. 내면 깊은 곳의 잔잔함을 알고, 파문처럼 일어나는 감정과 상황들이 자신의 ‘나다움’을 표현하는 흐름임을 이해한다.

내가 경험하고 이해한 불혹은 돌멩이와 호수, 그리고 그 위에 퍼지는 파문으로 비유할 수 있다. 불혹은 돌멩이다. 마음의 호수에 던져져 파문을 일으키는 계기, 존재를 깨우는 자극이다. 그 돌멩이는 좌절, 실패, 고민, 깨달음,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몽환적 순간일 수도 있다.

마음은 호수다. 깊고 고요하며, 표면은 흔들려도 바닥은 늘 잔잔하다. 그 호수 위로 파문이 일고 가라앉으며, 그 무늬는 나다움의 흐름이 된다. 그 흐름이 바로 ‘내삶’이다. 외부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내 존재의 결을 따라 흐르는 삶, 나는 그렇게 내삶을 정의한다.

불혹은 흔들림을 부정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흔들림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그 속에서 자기의 고유한 흐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나다움’을 실현하는 과정이자, 자기 존재의 중심을 확립하는 능력이다. 나에게 불혹은,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아오르는 순간에 내 안에 깃든 확신이다. 홀씨는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자체로 존재하며,
바람과 함께하는 흐름 속에서 아름답다.

공자의 불혹은, 내가 내 삶 속에서 만나는 존재의 질문을 새롭게 해석하게 한다. 불혹은 단순한 ‘나이’나 ‘성숙’이 아니라, 내 안의 ‘존재’와 마주하는 순간이며, 그 존재를 설명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욕망과 흔들림이 떠오르더라도 그 밑바탕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아직 그 능력을 다 갖추지 못했지만, 그 길 위에 서 있다. 그 길은 단순한 성공의 길도, 좌절의 고통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존재’를 알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불혹은 내가 내 삶을 어떻게 설명하고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질문이며, 그 대답은 어느 한 시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는 계속 흔들리고, 기대하고, 나아간다. 그 가운데서도, 홀씨처럼 존재하는 나를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응답하는 시간들이 나의 불혹이며, 나의 삶이며 나의 흐름이며 나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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