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佳惑)한 불혹 가혹(苛酷)한 마흔

나의 불혹

by 김기황

불혹-홀씨가 된 날, 존재가 깨어나다

오랜 세월 나는 나를 설명할 언어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헤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많은 언어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중 어느 것도 ‘나’라고 느끼지 못했다고 해야 한다.
성공, 성취, 꿈, 희망, 목표, 열망 등.
삶을 움직이게 해주는 힘이라고 배우고 믿었던 것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짓누르는 무게로 변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이 나를 덮쳤다.
잠에서 깨어난 기억도 아니고, 꿈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
현실의 감각이 묘하게 뒤섞인 몽환적인 풍경이었다.

가물가물한 배경의 동산을 마주하고 있었다.

동산에는 수많은 민들레의 노란 꽃이 피었다가 바로 지고,
하얀 홀씨가 하늘거리고 있었다.
계절은 봄과 여름 사이의 흐릿한 경계였고
바람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주 미세한 숨결처럼 바람이 지나가자
동산에 있던 모든 민들레 홀씨가
일제히 하늘로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나는 그중의 한 홀씨였다.

나는 날아오르지도 않았고, 떨어지지도 않았다.
어디로 가고 있다는 감각도 없었다.
그저, ‘있었다’.
무엇에도 설명될 필요가 없는 내가,
어떤 이유도 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예고도 없고, 의지도 없고, 소망도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는 나로 밖에는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그 경험은 단지 몽환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나를 구성하는 조각들—성취, 실패, 평판—이
나를 움직이는 중심축이었지만,
그날 이후 그 조각들은
중심에서 서서히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무엇인가 들려왔다.
‘잔잔함.’
흔들림이 없는 평온이 아니라,
흔들림 이후에도 깨지지 않는 바닥 같은 것.
때때로 채워지고, 때때로 비워져도
결국 다시 고요로 돌아오는 호수의 바닥 같은 것.

나는 그 바탕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단지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잔잔함을 되찾았다고 해서
욕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이전의 열망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잘 살아야 한다는 기대,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력,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들.

이 욕망들이 다시 밀려올 때
나는 잠시 당황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가,
다시 흔들릴 것인가.

하지만 그 감정은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기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확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욕망이 나를 흔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욕망은 욕망대로 올라오고 내려가지만,
그 아래의 바탕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욕망의 중심이 아니라
욕망을 바라보는 자리로 옮겨 와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홀씨의 장면은 단순한 몽환이 아니라
내 존재가 나에게 보여준 하나의 은유였다는 것을.
홀씨는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바람도 스스로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이 불 때
홀씨는 떠오른다.
그 떠오름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도
그 자신으로서 존재한다.

나는 이제야 이해한다.
왜 사람들이 불혹(不惑)을 이야기하는지.
왜 공자는 자신의 인생을 나이로 나누어
어떤 시점에서 혼란이 사라졌다고 했는지.

불혹은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아니다.
흔들림의 중심에서 벗어나
흔들림을 바라보는 자리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나이에 의해서 오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스무 살에도, 마흔에도, 일흔에도 온다.
혹은 끝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민들레 홀씨가 떠오르던 그날,
아주 조용히 찾아왔다.
그 장면은 내 안의 어떤 문을 열었고
그 문 너머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다움의 근원”이 있었다.

지금 나는 그 근원을 이름 붙일 수는 없지만
설명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바람이 일며
때로는 혼란이 스며오지만
그 모든 것의 아래에서
나는 나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가고,
하루를 정리하며,
홀씨처럼 하늘을 떠도는 생각들을 지켜본다.

내 정체성은 어떤 성공의 기준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실패의 서사로도 규정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안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힘은
나의 ‘꿈’이 아니라
나의 ‘존재’였음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라고.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말하는 ‘나의 불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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