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천륜(天倫): 서로가 인식해야 할 책임의 무게

by 김기황

엄마가 아기를 안는 이유는 작은 조각으로 평안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고, 아기가 엄마를 안는 것은 큰 조각의 흐름이 너무 빠르지 않도록 여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인간이 그것도 과학자가 곤충을 연구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그래서 단순히 과학자의 호기심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인류의 삶이 이룩한 문화가 복잡해질수록 더 자세하고 근원적인 이해를 위해서 인류는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탐구하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러한 행태는 인간은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진화한 존재라는 다윈의 진화론이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인간 집단이 복잡해지면서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 행동들에 대한 설명이 인간 집단에 대한 이해만으로 부족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단을 유지하면서 생존해 온 다른 존재들의 생존 방식이 궁금해진 인간의 호기심은 과학자의 호기심으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소위 사회적 곤충이라고 하는 벌, 개미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인류는 인간 집단의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통찰력을 얻기도 한다.

사회성 곤충들에 대한 풍부한 연구자료와 분석에 따르면 생물학적으로 부모와 자식은 서로가 우위를 가지는 게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수직적 위계보다는 수평적 협력 형태를 띤다고 한다. 각 개체는 나이와 능력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하며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하여 생존 방법을 익힌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기한 사실은 한 마리의 여왕이 모든 개체의 어머니이지만 유전적 다양성은 풍부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적 다양성이 집단의 수평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유리할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부모와 자식은 서로 우위를 가지는 게 없다는 사회성 곤충에 관한 연구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인간사회의 삶인 천륜에 관하여 짧게 생각해보고자 한다.

천륜은 도그마(dogma)다. 도그마는 특정 종교나 이념체계에서 절대적으로 믿고 의심하지 않는 교리나 신념을 의미하며 반박할 수 없는 진리로 여겨지는 주장이다. 그 종류와 시대, 사회적 배경에 따라 많은 폐해가 있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도그마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불변성, 권위, 맹목적 신뢰 등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이 야기(惹起)하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기는 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모든 자식에게 부모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적절한 시기까지 부모에 대한 비판이나 의심은 허용되지 않는다. 적절한 시기까지 자식들은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따른다. 이것들이 천륜도 도그마이게 한다. 위에서 언급한 적절한 시기를 현명하게 넘기지 못한다면 천륜도 도그마의 폐해를 입을 수 있다. 신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 가진 힘은 부모 자식의 관계이다. 절대로 해체할 수 없는 이 사실을 가지고 부모가 자식에게 비판이나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권위로 자식에게 맹목적인 신뢰를 강요할 때 크고 작은 천륜의 폐해가 나타난다. 가장 극심한 경우는 인간성의 상실과 억압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천륜의 폐해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의 원인은 부모가 자신의 삶을 자식을 위해서 살았다는 수준이 낮은 사고, 부모가 자신의 가치를 자식 삶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강요할 때, 부모가 자신의 욕망을 자식이 희생으로 채우고자 할 때, 부모가 자신의 경제적 성공을 자식을 통제하는 올가미로 사용할 때 등이다. 그래서 항간에서 ‘내가 널 어떻게 길렀는데, 자식은 고생하지 말라고 유학을 보냈다’와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부모의 욕망으로 길러진 경우도 홀로 보내진 유학 생활의 시작도 이미 고생길일 수도 있다.

한편 자식이 밑 빠진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부모에게 강요할 때, 부모가 가꾸어 온 삶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제거하려고 할 때, 적절한 시기에 자식이 정신적 독립을 하지 않을 때 등도 불화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항간에서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부모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어’와 같은 부모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 흘러 다닌다.

천륜에는 2개의 축이 있다. 부모는 천륜을 만들었으니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있고 자식은 천륜의 혜택을 입었으니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 축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부모는 부모로서 책임의 무게를 자식은 자식으로서 책임의 무게를 감내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이것이 생물학적으로 부모와 자식은 서로가 우위를 가지는 게 없다고 연구 보고된 사회성 곤충에게서 얻은 인간 삶에 대한 더 나아간 통찰이다. 개인에게 천륜이 영원하듯이 모든 사람에게도 천륜은 영원하다. 그리고 천륜은 영원히 이어진다. 다만 모든 사람의 천륜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류는 모든 사람의 천륜이 아름답도록 애쓰길 바라면서 아름다운 장치를 발명하고 장려했다. 이 장치는 천륜의 폐해로 인해 발생하는 공동체와 구성원의 불안감, 개인의 고립감, 복잡한 사회관계 등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효능을 드러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맹목적 믿음을 강요하고 다른 가치관은 배척하면서 획일적 사고를 강요하는 도그마의 일부 특징을 띠게 되면서 그 효력이 약해지고 있다. 누구나 예상했듯이 이 장치의 이름은 효(孝)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1: 친애(親愛)와 효도(孝道)

효의 기원이나 시대별 성격, 그리고 통치행위에 연결된 모습 등과 같은 연구와 설명은 전문적인 학술 연구가의 몫이다. 이 글은 개인이 일상에서 부딪히게 되는 효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려는 목적에서 서술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효의 개념, 시대별 성격,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해석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은 독자들께서 헤아려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가끔 맹자는 용감하고 거침이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특히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주장은 당시에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했음에도 이런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사상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의 발로였다고 보인다. 『맹자』 이루장구(離婁章句) 편은 이러한 그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명칭인 것 같다. 이루(離婁)는 전설상의 인물이기도 하고 맹자의 제자이기도 한 인물이다. 이루장구(離婁章句) 편의 처음에 나오는 이루는 아마도 전설상의 인물을 지칭하는 것 같다. 중국의 역사서와 많은 문학작품에서도 이루는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이루장구 편에서 맹자는 이루를 시력이 아주 좋아서 백 보 밖에서 털 오라기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것은 자신의 사상에 관한 대단한 자부심이 있음을 엿보이게 한다. 맹자가 이러한 자부심을 드러낸 것은 자신의 사상으로 인간 세상의 이치를 자세히 밝힐 수 있다는 오만으로까지 보인다. 중국 사상서를 읽다가 드는 생각은 대개의 설명이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효(孝)라는 개념도 이러한 경향을 벗어나지는 않는 듯하다. 맹자가 설파하는 효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군주의 통치행위에 도움이 된다는 논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루장구(離婁章句) 편에서 효와 연관된 이야기는 군자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한다. 맹자의 요지는 부모가 가르칠 때 올바른 길로써 가르치고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자식의 마음이 상한다. 부모가 자식에게는 바른길로 가라고 하고 자신은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부모 자식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즉 부모도 언행일치의 행동거지를 늘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보다 더 옛날에는 자식을 바꾸어 가르쳤다고 이야기한다. 결론적으로 부모가 바른길로 가르치지 못하고 자식이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을 때 서로가 잘못이라고 한다면 부모 자식의 사이가 소원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가장 나쁜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부모의 자식에 대한 태도인 친애가 자식의 부모에 대한 태도인 효도보다 먼저 바로 서야 함을 설파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히 부모의 가르치는 태도, 즉 부모의 보살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필 수 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가르침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유학의 사상을 전하는 서적에는 간간이 언급되고는 있지만 대개는 자식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뉘앙스이다. 『맹자』 이루장구(離婁章句) 편은 자식보다는 부모의 태도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효에 관한 논지는 통치행위로 연결되어 희석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효는 개념은 통치행위를 보완하면서 강화하는 정치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태도를 묻히게 하는 더 큰 사회의 암묵적 억압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효를 논하고 있는 유학 사상의 전체적인 논조는 통치의 방법이나 방안들의 전시장이다. 물론 효 개념 자체는 정치적이지는 않다. 다만 그 활용에 있어서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효가 촉발될 수 있는 부모의 보살핌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정치적 색깔을 지워내고 부모와 자식의 순수한 감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유학 사상가들은 효의 근본을 인애(仁愛)라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인(仁)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애(愛)는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라 정리한다. 인애가 인간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주장에는 이의를 제기할 틈이 없다. 인애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주장에 틈이 생기는 것은 인애를 조건에 따른 감정으로 보는 식견이 닿았을 때이다. 부모가 자신을 보살펴 주고 있다는 느낌을 자식이 느꼈을 때 자식에게 인애(仁愛)의 감정이 생긴다. 그렇지 않다면 부모의 슬하에 머무를 자식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한 부모의 보살핌에 고마움을 드러내지 않는 자식이라면 슬하에 자식을 거둘 부모가 몇이나 되겠는가? 인애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식이 같은 책임의 무게를 견지할 때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애는 상호작용의 힘이 더 많이 가해지는 인간의 감정이라 볼 수 있다. 결코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으로만 볼 수는 없다. 부모가 거둬야 함에도 그러지 아니하고 자식이 감사해야 함에도 그러지 아니하여 생겨나는 갈등이 인류가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잔잔한 호수 위에 낀 살얼음처럼 부모와 자식의 머리 위에 얹혀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2: 충(忠)과 효(孝)

『도덕경』에는 효(孝) 자가 한 번만 언급되고 있다. 도덕경 18장에서 부, 모, 형, 제, 처, 자 즉, 육친이 화목하지 못하자 어버이에 대한 효도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게 되었다고 했다. 불화가 생긴 가족들을 다시 화목하게 모으기 위해서 어버이에 대한 효도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면 효는 발견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육친이 화목한 상태를 뭐라고 지칭하였는지를 알 수 없기에 효는 발명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즉 육친이 화목하게 지내는 여러 상황에 효가 자리한 것이다. 인류가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개념들은 사회가 혼란할 때 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듬어지기도 했다. 특히 동양 사상의 커다란 축을 형성하고 있는 개념들은 역사상 가장 혼란이 극심했던 시기를 거치면서 다듬어졌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활동했던 사상가들은 어떤 글자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 한문으로 된 서적을 읽으면서 부딪히는 가장 혼란한 경우는 같은 글자이면서도 같은 문장, 같은 책에서도 의미를 다르게 해석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다른 책에서 다른 사람이 쓴 글이라면 그 뜻을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글자의 뜻이 긴 시간 동안 다듬어진 경우라면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시대와 사람에 따라 원본의 낱말과 글귀를 알기 쉽게 주석(註釋)한 집주(集註)의 분량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생사여탈의 권력으로 강요하는 충과 인간 본성의 자발적 발로인 효가 자연스럽게 융화되기 위해서는 시대를 거치는 동안 사상가들의 지식이 가미되었다.

충(忠)에 대해서 노자는 백성을 이롭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 하였고 공자는 백성이 군주를 돕는 것이라 했다. 같은 충(忠)인데 그 시선이 닿는 곳이 다르다. 노자의 시선은 백성에게 머무르고 있고 공자의 시선은 군주에게 머무르고 있다. 역사의 기록에는 노자와 공자는 동시대를 살았다고 하였다. 한 세대를 전후하는 나이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사실로 볼 때 같은 글자에 부여한 의미가 급격하게 변했음을 볼 수 있다. 공통점은 백성과 군주를 직접적으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혼란했던 고대 중국 사회가 조금씩 안정되어 가면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종법 제도가 확립되었다. 종법 제도를 유지하는 수단은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제사와 다른 점은 부모에 대한 제사보다는 집안 시조에 대한 제사를 중요하게 올리는 것이라고 한다. 제사의 의미가 많이 변화된 오늘날에는 이해가 잘되지 않는 대목이다. 왜? 집안 시조에 대한 제사가 중요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노자의 시선이 공자의 시선으로 옮겨진 이유가 드러난다. 노자는 백성이 자신의 취향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공자에게는 혼란을 잠재웠던 군주의 통치가 그리웠다. 그래서 혼란한 시절을 안정시킨 군주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또 다른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공자에게는 극심한 혼란을 태평성대로 만든 요임금과 순임금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인격인 성인(聖人)이다. 종법 제도로 통치 권력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백성이 군주를 돕는 충(忠)의 개념으로 통치 수단을 확보함으로써 군주의 권력은 막강하게 되었다. 이러한 막강한 수단을 가졌음에도 군주의 통치는 지속되지 못한다. 또다시 혼란과 분열의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군주의 능력을 능가하는 사람들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노자와 같이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을 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백성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들의 군주나 이웃 나라의 군주에게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을 이롭게 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태도는 일반적인 인간의 감정이다. 이를 민심이라고 하며 민심이 떠나면 군주는 나라를 잃게 된다는 논리가 득세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하면서 활동했던 사상가들은 민심의 주인인 백성들이 군주에게 몰려와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했다. 그래서 우선은 백성과 군주가 직접 연결되는 고리를 더 강화해야 했다. 그래서 충은 군주를 위한 백성들의 도움이라는 뜻이 판정승을 거두게 되었다.

공자를 따르고 추종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제자들이 별다른 성과도 없이 스승이 죽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을 것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다시 다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당시 사회의 변화를 몸으로 부딪친 지식인들이었다. 당시 사회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그들이 군주와 백성의 고리를 강화해야 하는 가치가 부각하고 있음을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기억이나 메모에 남아있던 기록을 모아서 책을 만든다. 그들이 공자의 어록을 편집하면서 다양하게 이런 가치들을 활용하였음은 논어가 유학의 사상과 학문을 지배하였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유학 사상의 핵심은 기존의 충과 새롭게 부각하는 효가 자리하게 된다. 새롭게 부각하는 효의 논리에서 군주는 부모의 권위를 빌려서 백성에게 다가가고 백성들은 자식으로 빙의하여 군주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했다.

효(孝); 강요된 태도와 자발적 보답인가?

그러나 오늘날의 효에 관한 관점에서 보면 공자의 이야기로 전하는 논리는 애매하다. 공자는 부모를 섬기되 은미(隱微)하게 간할 것이니, 뜻에 따르지 아니하신 것을 보고도 공경하여 어기지 아니하며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은미(隱微)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을 뜻하는데 자식이 부모의 어긋남을 지적할 때 표정과 기세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도 더욱 공경해서 말하다가 보면 부모가 자식의 뜻을 알아줄 것이니 부모의 말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어 수고스럽더라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남송의 유학자 주희는 이 대목에 대한 주석에서 표리(表裏)가 맡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공자가 한 말을 따르고 있다. 부모의 허물을 자식이 드러내지 않는 행위가 인정상 더 자연스럽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을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없고 결코 해서는 안된다. 부모의 잘못을 자식이 참아내야 하는 상황을 효로 연결한 부분은 늘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공자의 제자들이 효를 폭넓게 해석한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제자들은 그들이 펴내는 책이 당시 세력을 형성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세력가들에게는 이론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신의 주변에 머무르면서 이제까지 이룩한 업적을 잘 지킬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인재들은 자신의 지식을 쓸 기회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력가와 그가 채용할 인재가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가 공감하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폭넓게 해석하여 사람들의 일상에 넓게 퍼져 있는 행위들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고 본다. 그렇게 인간의 이성으로는 쉽게 납득(納得)할 수 없는 상황이 정치의 영역으로 끼어들어 가게 된다.

충(忠)을 노자는 백성을 이롭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 하고 공자는 백성이 군주를 돕는 것이라 했다. 노자와 공자의 충의 개념을 섞으면 백성을 통치 권력과 직접 연결하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누군가가 백성을 이롭게 하면 백성들은 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효는 부모와 자식의 친화력에 중심을 두는 논리이므로 백성과 통치 권력을 이어주는 고리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효에서는 군주나 통치집단보다는 부모에게 ‘이로움’과 ‘도움’의 중심점이 이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효가 빠짐으로써 느슨해지는 통치체제의 약점을 통치집단이 놓칠 리 없다. 온 백성과 군주의 연결을 강화하는 새로운 연결고리가 필요해졌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에는 효를 확대하면 충이 된다는 논리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효와 충의 개념을 충분히 녹여내면서 통치체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아야 했다.

인간 삶에 대한 사유들을 발전시킨 유학을 체계화하고 사서(四書)로 편찬한 사람은 성리학을 집대성했다고 하는 남송(南宋)의 주희다. 『예기』는 고대 중국 주(周) 나라 말기에서 진한 시대 유자들의 고례(古禮)에 관한 설을 정리한 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이 주석을 달았다. 그중에서도 대학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부분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이전의 유학자들이 『예기』에서 분리해서 연구해 온 전통을 이은 주희가 주석을 붙이고 논어 맹자 중용 대학으로 합편함으로써 사서의 위치를 확보했다고 본다.

대학의 핵심 논지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 정리할 수 있다. 주희가 대학을 정리하면서 주목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핵심을 표현한 글귀라고 하겠다. 굳이 시대별로 학문과 연구자의 특성을 구별하여 이름을 짓더라도 그 학문과 연구자의 관심이 향하는 바는 인간의 삶이다. 삶이라는 단어를 쓰기 위해서는 함부로 살아가거나 막무가내로 행동할 수는 없다. 따라서 모든 것에 우선하여 수기(修己)와 수신(修身)이 요구된다. 수기는 마음에 비중을 둔 표현이고 수신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실에 비중을 둔 표현이다. 하지만 마음의 상태가 행실에 반영될 수밖에 없으니 수기는 수신에 포함되었다고 봐야 한다. 수신이 필요한 이유, 수신의 방법, 수신의 태도, 수신의 결과는 자신을 지키고 스스로 설 수 있게 함으로써 재가(齋家)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집안을 바르게 하는 재가의 필요성, 재가의 효과, 재가의 태도, 재가의 모습을 치국으로 연결을 시킨다. 치국의 모습은 평천하(平天下)와 이어진다. 그리고 천하의 평안한 모습을 설명하면서 수신이 평천하로 끝나게 된다. 재가와 치국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효도는 임금을 섬기는 논리가 슬쩍 삽입된다.

수신으로 집안을 바르게 하고 재가의 역량으로 치국을 담당하여 천하를 편안하게 하였다면 정치적으로는 대단한 업적을 이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왕조를 창업했던 사람들의 신분은 다양하다. 하지만 결코 맹자가 이야기한 역성혁명인 정치적 반역이 일어난 적은 많지 않다. 이미 수신과 효의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이 반역의 마음을 품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수신에서 시작된 자신의 삶을 통하여 왕조의 고위직이 된다는 것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며 이는 군주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권력이 지향해야 할 충과 권력자가 요구하는 충은 노자와 공자의 충의 개념으로 충분하다. 수신에서 시작해서 백성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은 권력이 지향하는 충이다. 백성들에게 이로움을 주어 평안한 삶을 누리고 있는 모습이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종착점이다. 그런데 백성들의 평안한 삶을 소유하겠다는 마음을 품으면 권력자가 지향하는 충의 개념이 된다. 이러한 권력자가 지향하는 충의 개념에 효가 악용되었을 때 일반적인 인간 감정으로는 이해하기 곤란한 효의 개념이 끊임없이 등장하게 된다. 이유는 절대권력자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의 강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의 맹목적 복종은 연결된 논리를 타고 내려와 효에 대한 맹목적 수용을 강요한다. 이러한 강요는 부모의 바르지 못한 행실을 자식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주저하고 망설이게 한다. 부모의 허물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 바람직한 모습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져서 효의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다고 해서 바람직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바람직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모든 학문이 인간의 삶을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하듯이 유학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오래전에 생각해 내고 끊임없이 다듬어진 유학의 개념들을 우리는 아직도 활용하고 있다.


자식의 태도에 대하여

맹자는 부모에게 선을 간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불책선(不責善)을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전 조건이 있다. 부모 자식이 이미 화목한 데 선을 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부자유친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식이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자식을 바꾸어 교육했기 때문이다. 천륜으로 드러난 자식이 어떤 의미의 존재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자식을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고 부모가 자식을 바꾸어 교육할 정도의 인식을 가진 부모라면 천륜의 무게와 책임을 스스로 감내하는 인품이다. 이러한 부자 관계라면 효의 개념을 달리 교육할 필요가 없다. 자식은 부모의 행실을 우러러 따르게 될 것이다. 이미 이런 수준의 의식을 가진 부모는 자식에게 간함을 당할 일이 없다. 이런 부모 밑의 자식들은 패륜을 저지르지도 않을 것이다. 간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논리다.

부모의 은덕에 대한 자식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효가 예외가 없는 도그마처럼 그 끈질긴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효라는 도그마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효는 천륜을 위해서 부모가 짊어진 책임을 자식이 나누어 짊어지는 책임이다. 효의 시작은 자식에게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우세했던 이유는 권력자의 왜곡된 충이 효를 악용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효는 자식에게서 시작한다. 그러나 효를 촉발하는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부모의 잘못을 자식이 덮어두려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 것은 맞지만 그 행위가 떳떳하거나 바람직하다고 우겨서는 곤란하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은 부모 자식 관계에서 당연히 부모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 부모가 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데 자식이 바람직한 행동을 할 수는 절대로 없다. 늘 잘못을 저지르는 부모 밑에서 부모의 잘못을 고발하는 자식은 나올 수 없다. 그런 자식은 부모의 행위가 잘못인 줄도 모른다. 그런 부모의 잘못을 고발하는 자식이 있다면 이미 부모에게서 심리적 독립을 한 자식이다. 그들에게 천륜은 끊어진 지 오래다. 부모의 잘못은 효의 대상이 되고 자식의 바른 마음은 효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상한 논리는 백성의 충성을 맹목적으로 요구하던 권력자의 왜곡된 효의 논리가 스며들어 있다. 이 이상한 점을 피해 가려고 지식인들은 경(敬)의 개념을 추가하지만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공경하는 마음이 있다면 부모가 잘못하더라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앞에서 보았듯이 맹자는 이 논리를 원천 봉쇄한다. 애초에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지도록 천륜에 대한 책임을 유지하고 있는 부모라면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을 것이며 설사 그러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자식이 간곡히 이야기한다면 자신의 허물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마치 효에 절대적인 가치가 있어서 사회 질서를 위해서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은 부모의 잘못이 아니라 일부 군주의 잘못이었다. 어쩌면 일부의 부모들도 피해자일 수 있다. 군주가 생사여탈의 독재를 하더라도 신하들의 간언 하는 말을 듣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서 벌을 받더라도 군주를 원망하지 말라는 논리를 군주가 대놓고 주장한다면 덕치를 완전한 통치의 모습으로 설정한 유학의 근본이 무너진다. 당연히 덕의 정치에서 덕이 빠졌다면 더 들을 이야기는 없다. 수신하지 않은 사람이 수신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군주가 되었을 때 군주의 태도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군주가 권력을 목적으로 여기지 않고 수단으로 사용할 때 폐해는 극심해진다. 권력의 목적은 백성들에게 이로움과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는 권력을 수단으로 여겨서 일어났던 폐해가 종종 발생했으며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부모의 잘못을 숨겨주는 마음을 쓰는 자식의 태도도 있고 고발하는 마음으로 기우는 자식의 태도도 있다. 이럴 정도의 일이 있고 그러지 못할 일이 있다. 모두 인정상으로는 바람직한 것들이다. 부모가 끝없이 자식의 마음을 후벼 파더라도 자식은 끝없이 불경(佛經)을 읊조려야 하는 광경은 절대로 자연스럽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패륜의 부모는 효를 입에 담아서는 안되며 패륜의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사회성 곤충의 연구에서 얻은 통찰로 천륜과 효를 살피면 부모는 자신 삶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감내하고 자식도 자신 삶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감내해야 한다. 현대의 효도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는 민망한 상황이 아니라 서로의 책임을 나누어지려는 화목한 가정에서 나오는 봄날 햇살의 따사로움이다.

천륜과 인륜, 그 공생관계

천륜은 새로운 인륜을 만들도록 해서 그 인륜이 다시 천륜을 만들도록 할 책임이 있다. 이렇게 천륜과 인륜이 끝없이 이어지는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천륜이라는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륜이 천륜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틈을 만들고 변화를 만들어 낸다. 이 변화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변화라야 한다. 인륜에 씌우는 천륜의 비겁함은 서로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려는 나쁜 변화일 뿐이다. 이러한 행태에 효라는 비단옷을 입히지는 말자. 무명옷도 아깝다. 천(天)이라는 글자를 입에 담기 위해서는 그 무게를 감내하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실수든 아니든 아버지의 허물을 보았는데 그것을 눈감아 주는 행위를 효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마찬가지로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는데 부모가 눈감아 주고 비호까지 하는 행위를 양육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억지다. 이러한 경우가 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효를 강요해 서는 안된다. 효를 자식이 가능한 한도(限度)에서 부모를 모시는 것이라는 소박한 결론을 낼 수 없었던 것은 전제군주의 폭정을 참고 견디라는 묵시록인 동시에 그것을 견제하는 백성의 저항이었다. 개인의 행위의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이치이다. 부모가 어렵게 산다면 여력이 되는 자식이 돌봐주는 소박한 논리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식도 어려운데 부모가 도움을 요구한다면 자식의 삶은 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부모의 노릇을 단지 천륜을 만든 것으로 다했다고 하는 태도에 공분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드러나고 있다. 모든 이가 공분하는 이러한 사안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상황을 법이 그렇다고 말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아무리 양보한다고 해도 이것은 전제군주의 폭정이 모습을 바꾸어 천륜의 책임을 회피한 비겁한 사람들의 파렴치한 변명일 뿐이다. 부모의 잘못을 드러내고 차라리 감옥살이를 뒷바라지하는 것을 효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것도 자식에게는 가혹하다. 자식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자식의 삶을 망가뜨리면서도 자식에게 효를 강요한다면 그는 부모의 자격이 없다. 그래도 부모는 부모라고 우격다짐으로 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맹자는 백성을 괴롭힌 왕을 왕으로 보지 않았다. 백성과 왕은 천륜이 아니라고 하는 태도는 옹색하고 비겁하다. 부모가 천륜을 팽개쳤음에도 부모라 용인하고 있는 우리의 법체계는 마치 효가 악용되어 사람들을 힘들게 했듯이 사회적 비겁자를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효가 한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긴 세대를 이어가야 한다면 누군가는 이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의 잘못된 관습을 효라는 틀에 가두어 끌고 갈 필요가 있는가? 부모의 잘못은 부모에게 남겨두고 자식에게는 자식의 도리를 요구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자식의 도리가 부모의 잘못이나 무리한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는 억지는 그만하자.

작가의 이전글가혹(佳惑)한 마흔, 가혹(苛酷)한 불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