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인사이드 아웃>의 리뷰를 통해 예고했던 작품, <인사이드 아웃 2>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전작의 감독 '피트 닥터'는 자신의 딸 '라일리'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특별한 상상을 떠올렸습니다. 주인공 라일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녀의 내면에는 또 하나의 놀라운 세상이 창조됩니다. 그곳에는 처음으로 '기쁨'이라는 이름의 감정이 탄생합니다. 기쁨(조이)은 웃는 얼굴로 모든 일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앞으로 아이의 인생에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조이는 라일리의 내면에 머무르며 그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매 순간 헌신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일이 마냥 순탄하게만 흐르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아이는 다양한 경험을 쌓고 '즐겁지 않은' 순간들을 경험합니다. 이제 기쁨(조이)의 옆자리에는 버럭, 까칠, 소심, 슬픔이라는 새로운 감정들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라일리는 서로 다른 감정들을 배우고 경험하며 넓어진 시야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조이는 끝내 단 하나의 감정, '슬픔'만큼은 라일리에게서 떨어트려 놓으려 합니다. 라일리가 결코 슬프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이 역시 라일리와 함께 성장하기에, 마침내 깨닫습니다. 인생에는 어렵고 힘든 순간이 찾아오게 되며,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도록 하는 힘은 '슬픔'에있다는 것.'즐겁지 않은' 순간조차 라일리의 인생과 성장에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리라는 것.
1. '조이'도 아직은 열 세살
신념의 뿌리가 이어져 자아를 형성하다.
<인사이드 아웃 2, 2024>의 이야기는 전작의 시점에서 약 2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이어집니다. 이제 만 13세가 된 라일리는 머리를 많이 길렀고 티셔츠와 바지가 한참 짧아질 정도로 키가 훌쩍 컸습니다. 성장한 것은 외모 뿐만이 아닙니다. 라일리의 내면에는 긍정적인 자아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길고양이와 같이 작은 생명들을 향하는 따뜻한 마음.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를 도울 수 있는 용기. 어려운 과제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끈기. '나는 바르고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 그 모든 신념들은 라일리의 내면 속 가장 깊은 공간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리고'자아'라는 이름의 위대한 나무가 한 그루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슬픔의 가치를 배우고 성장했던 조이였지만, 관객들은 이야기의 초반부에서 조금 실망하게 됩니다. 조이는 라일리가 경험한 '부정적인 순간들'에 대한 기억들을 마치 '쓰레기'처럼 취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실수를 하거나 부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하면, 조이는 그 기억들을 멀리 있는 쓰레기 더미로 보내버립니다. 그래서 라일리의 자아에는 부정적인 경험과 기억들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오직 아름답고 때묻지 않은 기억만이 선별되며, 라일리의 자아는 마치온실 속 화초처럼 가꾸어집니다. 이제 관객들은 직감합니다. '아직 열 세살인 조이의 행동은 한참 미성숙하구나.'
2. 사춘기의 시작, 새로운 감정의 개화
쑥스러움, 불안, 동경, 따분(+뒷 방에 계시는 '추억')
라일리에게는 단짝 친구가 2명 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한 팀으로 아이스하키 경기에 임했던 어느 날, 그들은 행운과 같은 제안을 받게 됩니다. 고등학교 아이스하키 팀의 코치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한 선생님이 그들에게 캠프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라일리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며 장밋빛 같은 미래를 꿈 꾸게 됩니다. 캠프로 출발하기 전 날 밤, 감정의 세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Puberty' 즉, '사춘기'라는 무시무시한 비상벨이 울리고 내면의 세계에는 대격변이 시작됩니다.
이제 사춘기가 시작된 라일리는 사소한 감정에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당황하고 있는 기쁨,버럭, 까칠, 소심, 슬픔이들에게는 '새로운 감정들'이 방문합니다. 불안, 따분, 동경, 쑥스러움은 사춘기의 시작을 대표할 수 있는 감정들입니다. 이제 라일리의 내면을 지배하는 것은 새로운 감정들입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며 되뇌이던 유년의 자아는 힘없이 꺾여버립니다. 이제 주인공의 마음을 지배하는 감정은 '불안'입니다.
3. '불안'하기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가장 사랑스러웠던 빌런, '불안'
라일리는곧 단짝을 잃고 맞이해야 할 고등학교 생활을 걱정하며걷잡을 수 없는불안을 마주합니다.위태로운 감정은 곧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고등학교 팀 선배에게 잘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코치의 방에 몰래 들어가서 선수노트를 훔쳐보기도 합니다. 하나씩 잘못된 행동을 할 때마다 눈에는 왜인지 모를 눈물이 고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힐수록 신념은 점차 무너지고, 결국 새로이 가지를 친'자아'의 나무는 여기저기 비뚤어진 모습으로 되뇌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라일리는 선수 선발에 집착한 나머지팀원의 공을 빼앗고 철저히 이기적인 태도로 경기에 임합니다. 끝내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돌진하여 단짝친구를 넘어뜨리며 상처 입힙니다. 모든 계획이 무너지고, 잘못된 자아가 형성된 뒤에야 비로소 '불안이'는 자신의 행동이 라일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불안의 소용돌이'에 잠식된 그에게 기쁨이(조이)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며 이야기합니다.
"이제 라일리를 놔줘야 해."
함께 비뚤어진 모습의 자아를 뽑아내고, 이제 내면 깊은 곳 신념의 세계에는 조이가 쓰레기처럼 버려두었던 '부정적인 기억들'이 산더미처럼 몰려 들어 뿌리를 내립니다.
부정적인 기억과 긍정적인 기억이 뒤섞여 피워낸 라일리의 자아는 이제 완벽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 모습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며 되뇌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그러나, "때로는 실수하고, 나쁘게 행동하며, 불안하고, 비겁하며, 두렵고, 소중한 이를 상처 입히기도 해."
조이는 가녀린 모습의 자아를 끌어안으며 위로하고, 감정들은 서로를 포옹하며 응원합니다.
'불안이(anxiety)'는 이 영화에서 빌런의 역할을 맡은 듯 보이지만, 이토록 애처롭고 사랑스러운 악당은 어디에도 없을겁니다. 그의 모습은 우리 모두와 닮았습니다. 불안과 끝없는 근심들, 그로 인해 이어지는 잘못된 선택과 결과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못하기에 애처로운 존재입니다. 불안이는 라일리에게 행했던 모든 과오와 잘못된 선택의 순간들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안의 불안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나도 미래가 불안하고, 잘못된 선택과 실수를 해. 그래도 괜찮아. 당연한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4. <토이스토리>를 엿보다.
이미 어른이 된 앤디, 언젠가 어른이 될 라일리
전작이 그러했듯, 이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작에 비해 아쉬운 점이 있어 몇 가지만 전하려 합니다. 다양한 감정의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특정 인물(불안,기쁨)의 서사에만 지나치게 집중하여 다른 캐릭터들이 희생된 면이 있습니다. 또한 중심 서사(기쁨이가 실수를 하고 깨달음을 얻게되는 과정)는 전작과 지나칠 정도로 유사하여, 이야기가 뻔하게 진행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내면 세계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연출 역시 전작에 비해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픽사의 독창적인 상상과 기술력에 대한 기대(예: 1편의 다양한 섬들, 추상적 생각, 2차원의 묘사 등)도 온전히 충족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인사이드 아웃 2>가 그저 전작의 성공에 기대는 수준의 작품은 결코 아닙니다. 이번 작품의 핵심 가치는 라일리의 성장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활짝 열어주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고 몇 년이 지나면 성인이 될겁니다. 언젠가 독립을 할테고 어른의 고독한 인생과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을 겪게 되겠죠. 그 후에도 이어질 '라일리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관객들에게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을 소재입니다. <토이스토리 3>가 그러했듯, 아마도 <인사이드 아웃 2>의 후속작이 개봉한다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저와 그 밖의 누군가에게도 대단한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픽사의 명작 <토이스토리> 시리즈는 수십 년에 걸쳐 하나의 일대기가 되었습니다. 미래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뒷방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추억 할머니'의 모습을 또 다른 <인사이드 아웃>의 이야기에서 하루 빨리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분명 우리를 눈물짓게 할 이야기 보따리를 한가득 들고 오리라는 확신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