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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너리 Aug 08. 2024

데드풀과 울버린(Deadpool&Wolverine)리뷰

엑스맨의 역사, 한 시대에 바치는 헌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감상하신 뒤에 글을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0. 엑스맨 유니버스 & MCU
엑스맨(X-Men) 코믹스의 첫 번째 표지

  <데드풀과 울버린, 2024> 데드풀 시리즈의 3번째 영화로, 전작의 개봉 후 6년만에 다시 관객들의 곁을 찾았습니다. 이 작품은 제작 단계에서부터 많은 팬들의 주목과 기대를 받았습니다. 엑스맨 유니버스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라는 두 거대 프렌차이즈에 비로소 '크로스오버'가 성사되었다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협업이 성사되기까지 24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그 과정이 매우 길고 험난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엑스맨은 마블 코믹스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당시 뮤턴트, 진화와 돌연변이라는 설정은 참신하고 매력적이었으며 많은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었습니다. 1994년이 되자 20세기 폭스는 엑스맨의 판권을 획득한 후 실사 영화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게 됩니. <엑스맨, 2000>에서 출발한 엑스맨 유니버스(영화)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이후 20년의 세월 동안 무려 13편의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한 편 마블은 뒤늦게 자사의 실사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MCU의 작품인 <아이언맨>이 2008년이 되어서야 세상에 등장했으니 폭스와 비교하면 출발이 8년이나 늦었던 셈입니다.


   시작이 다소 늦었음에도 마블의 MCU(시네마틱) 프로젝트 영화계에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10년대 마블의 감각은 절정에 있었고 가히 미다스의 손길을 방불케 했습니다. 흥행을 타율로 따진다면 9할에 근접하는 수준의 성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과장은 아닐겁니다. 상황이 이럴수록 '옆 동네에 고립된 엑스맨'의 행색은 초라해져만 갔습니다. 폭스社의 엑스맨에 대한 평가는 제작을 거듭할수록 하향곡선을 그려 나갔습니다. 결국 <엑스맨: 다크 피닉스, 2019>가 처참히 혹평 받으며 시리즈는 사망 선고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1. 24년 후, 고향 땅을 밟은 데드풀
<데드풀과 울버린> 국내판 포스터(24.7.)

  한 편, 엑스맨 유니버스가 서서히 붕괴되던 시기에도 특정 작품 만큼은 성공적인 데뷔를 해냈습니다. 그 주인공은 <데드풀, 2016>입니다. '데드풀'은 마블 코믹스에서 매우 특별한 설정을 갖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는 '제4의 벽'을 깨고 작품 세계의 바깥,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관객에게 수시로 말을 겁니다. 주인공 웨이드(데드풀)는 자신이 가상 세계의 캐릭터라는 사실을 인지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뉴스 역시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또한 데드풀이 갖고 있는 진정한 매력은 '유머'에 있습니다. 그는 끊임 없이 수다를 떨며 코미디언을 방불케 하는 입담을 뽐내고 관객들을 수시로 빵빵 터지게 합니다. R등급(청불)의 수위 높은 입담과 화끈한 액션으로 완성된 데드풀 시리즈는 독자적인 개성과 매력을 갖추기에 충분했습니다.


  폭스-마블-디즈니의 복잡한 관계 역시 데드풀의 입담에 유쾌히 활용되는 소재입니다.  20세기 폭스社엑스맨 유니버스의 몰락과 더불어 2019년 디즈니에 인수-합병 되었습니다. 비로소 데드풀이 MCU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고, 무려 24년 만에 <데드풀과 울버린>을 통해 고향 땅을 밟게 됩니다. 이제 데드풀은 관객들을 향해 당당히 외칩니다. "나는 마블 지져스(마블 예수)야."


2. 마블의 구세주일까
새차 냄새가 나는 슈트(MCU)으로 갈아입은 데드풀


  비로소 마블의 품에 돌아왔음을 깨달은 데드풀은 곧바로 카메라를 응시합니다. 그리고 '쏘쿨'하게 20세기 폭스와의 결별자축한 뒤, 마블의 '구세주' 자처하겠다며 공언합니다. 이 장면이 다소 '웃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마블의 셀프디스 의도가 유머러스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MCU 인피니티 사가의 아름다운 대장정이 마무리되고 난 뒤, 2020년대의 마블이 보인 행보는 연일 실망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캐릭터 하나 하나의 서사를 구축하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빌드업에 공을 들였던 '장인 마블'은 이제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OTT(디즈니+) 컨텐츠의 양산을 위해 매력도, 설득력도 없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급조하며 사상누각반복했으며 팬들을 떠나가게 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마블이 반복한 실수는 결국 '대환장의 멀티버스'라는 괴물을 낳고 말았습니다. '평행 우주'와 '시간 여행'이라는 진부하면서도 위험한 클리셰를 남용한 결과는 처참합니다. 캐릭터의 설정과 각종 세계관이 뒤섞여버린 탓에 그 무엇 하나 '오리지널리티'를 갖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마블은 데드풀의 입을 빌려 관객들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한 고해전합니다. 인피니티 사가 이후 멀티버스의 전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며, 이후의 행보가 실패의 연속이라며 팬들에게 사과합니다. 이러한 센스는 2010년대의 마블을 빛나게 했던 특기였고, 극장에서의 폭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3. 아득하게 높은 진입장벽
TVA 요원과 데드풀

  감독인 '숀 레비'는 인터뷰를 통해 이전의 시리즈와 코믹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이번 작품의 감상에 큰 영향이 없을거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감상으로 이 인터뷰는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번 작품은 어느 코믹스 기반의 영화와 비교하더라도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고 확신합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을 온전하게 감상하기 위한 준비물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데드풀의 1,2편 뿐만 아니라 '엑스맨 유니버스'의 모든 작품을 총망라하는 수준의 사전 지식과 추억이 필요합니다.


 아직 준비는 아직 끝나지 않습니다. 이번 영화에는 <블레이드, 1998>와 <판타스틱4, 2005>에 대한 추억을 전제로 하는 캐릭터와 장면이 등장합니다. 또한 MCU의 드라마 시리즈 <로키, 2021-2023>에 등장하는 소재와 세계관이 중심 배경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마블 코믹스와 접점이 없는 <매드맥스>의 설정을 대놓고 오마쥬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모든 사전 지식을 온전히 갖추고 극장에 입장한 저마저도 이 영화를 100% 이해하며 감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원작 코믹스에서 차용한 설정과 장면들까지 여럿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4. 추억팔이와 헌사, 그 어느 사이.
주연 배우들과 감독의 촬영현장

  <데드풀과 울버린>에는 지나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작품들의 설정과 캐릭터가 녹아 있습니다.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이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넘나들며, 수십-수백 가지에 달하는 설정과 소재가 차용됩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관객들을 한 데 집중시키는 구심점은 존재합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추억'입니다. <블레이드, 1998>의 웨슬리 스나입스는 무려 26년의 세월을 초월하여 다시 한 번 같은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로건, 2017>의 작은 소녀였던 로라(X-23)는 이제 성장하여 성인이 된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하며, 작중에서 울버린과 재회하는 장면으로 많은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다시는 볼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휴 잭맨의 울버린은 55세의 나이에 전성기의 피지컬을 그대로 회복하여 돌아왔습니다. 그 옆에서 90세까지 부려 먹히게 될거라며 깐족대는 데드풀의 모습 역시 미소를 짓게 합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판타스틱 4, 2005>의 휴먼 토치를 다시 한번 연기하는 크리스 에반스의 모습도 매우 반갑습니다.


  이 영화의 추억여행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화룡점정을 찍습니다. 먼 과거 <엑스맨, 2000>에서 연기하던 배우들의 앳된 모습을 회상하고, 추억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촬영 현장의 영상들이 재생됩니다. 지난 20여년의 세월 동안 수 많은 작품에서 연기했던 배우들의 인터뷰, 인간적인 모습들이 연달아 스칩니다. 이를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았기에, 추억을 공유하고 있구나."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은 20여년의 세월을 함께 한 '엑스맨 시리즈'에 작별을 고함과 동시에 아름다운 헌사를 건네는 작품입니다. 허나 이와 동시에, MCU에 합류한 엑스맨이 향후 어떤 시너지를 보일 수 있을지를 증명해야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데드풀은 하필이면, 마블의 전성기가 아닌 명백한 침체기에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마블의 구세주를 자처하는 그의 시작을 꽤 '괜찮았다'고 평가해봅니다. 이번 작품은 2020년대의 마블이 내놓은 작품들 중 맨 앞에 세울 수 있을 수준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합니다. 그러나, '추억팔이' 라는 치트키를 사용하는 것은 분명 지속 가능한 방법은 아닐겁니다. 엑스맨이라는 천군만마를 얻은 MCU가 전성기의 폼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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