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2018>의 후속작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2023>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멀티버스(다중우주-세계)'라는 개념은 오늘날의 영화계에서 매우 대중적으로 활용되는 소재입니다. 최근 10년 간 마블은 '다중우주'의 컨셉을 핵심으로 한 세계관을 그려왔고, 수 많은 작품들이 같은 소재(멀티버스)를 반복적으로 차용해왔습니다. 이전 리뷰에서 소개해드렸던 <데드풀과 울버린, 2024>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 이전의 작품으로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과 <로키> 등이 있습니다.
2020년대의 할리우드는 가히 '멀티버스 전성시대'라 부를만 하나,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 역시 존재합니다. '멀티버스'라는 소재가 대중성에 기대는 것을 넘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2022년에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오스카 7관왕을 달성하며, 다중우주의 개념을 역대 그 어떤 영화보다도 기발하고 대담하게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본 작품이 이러한 성과를 거둔 시점에서 '멀티버스 전성시대'는 사실상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향후 같은 소재를 반복 활용할 경우,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작정하고 멀티버스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그 색채와 그림체는 전작에 비해 매우 화려해졌으며 이야기를 다루는 톤은 한껏 무겁고 성숙해졌습니다.
1. '속편의 딜레마'를 극복하다.
더욱 정교하고 화려해진 애니메이팅
모든 명작의 속편에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난제가 1가지 있습니다. 그 문제는 과연 '전작보다 나은 영화인가' 하는 것입니다. 수 많은 작품이 같은 질문에 부딪혀 좌절했고 혹평 받았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전 리뷰에서 소개했듯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오스카 수상을 비롯하여 여러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수작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정공법으로 어려운 난제를 파훼합니다. 이미 전작에서 호평 받았던 애니메이팅 기법은,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넣는' 수준의 작화(디테일과 화려함)를 뽐냅니다. 이 역동적인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관객들의 머릿 속에는 같은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대체, 이 모든 장면에 애니메이터를 얼마나 갈아 넣었을까?"
소재의 진부함(멀티버스) 역시 정공법을 통해 극복해냈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장점인 '물리적 한계가 없는 연출'을 중점으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부제인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 걸맞게 주인공 마일스 모랄레스는 수 많은 우주 속 서로 다른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듭니다. 각 우주의 서로 다른 특징을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번 영화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실사영화는 다중 우주의 무한함을 표현할 때 물리적인 한계(등장인물의 수, 실제 촬영에 기반한)에 얽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애니메이팅에 기반한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세계와 수 많은 등장인물을 자유롭게 표현해냅니다. 흑백-코믹스-레고-3D-실사의 세계를 과감하게 넘나드는 연출은 '멀티버스'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관객들을 한껏 몰입시킵니다.
2. 운명론 vs MZ 스파이더맨
'낡은 운명론'을 거부하는 주인공, 마일스 모랄레스
마블 코믹스를 대표하며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사랑 받는 캐릭터는 역시 '스파이더맨'이라 생각합니다. 긴 세월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 왔기에, 이 캐릭터는 이미 여러 창작물을 통해 반복적으로 소비되어 왔습니다. 허나 '마일스 모랄레스'는 피터 파커(구-스파이더맨)와 스파이더맨에 대한 선입견을 깨부수는 인물입니다.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의 주인공인 마일스는 외모,출생,가정환경,인간관계 등 다양한 지점에서 낡은 클리셰를 탈피하며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한 편 이번 작품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마일스는 '스파이더맨'으로서의 근본적인 정체성까지 부정 당하는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극 중 스파이더맨 2099(미겔 오하라)의 설명에 의하면 모든 스파이더맨은 공식 설정인 '친족의 죽음'과 가까운 '경찰서장의 죽음'을 겪어야 합니다. 그 밖에도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수 많은 스파이더맨들은 유사한 운명과 비극을 타고난 채 필연적인 아픔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겔은 마일스가 본래 스파이더맨이 될 운명이 아니었으며 자신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마일스에게 초능력을 부여했던 거미는 지구-42에서 차원이동을 통해 지구-1610에 도착했습니다. 이로 인해 지구-1610의 마일스가 스파이더맨이 되는 오류가 발생했고, 이에 따라 지구-1610의 피터 파커는 사망했으며, 지구-42는 스파이더맨이 존재하지 않는 암울한 세상이 되었다는겁니다.
또한 미겔은 과거 자신이 가족을 되찾겠다는 욕심으로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운명'을 회피했던 경험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 결과 공식설정이 붕괴된 세계는 소멸을 겪어야 했고, 다시는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스스로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를 설립했음을 밝힙니다. 마일스는 일순간 고민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경찰서장이 된 「자신의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는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살릴 것인가」. 더 이상의 망설임 없이 마일스는 결정하고, 모두를 향해 외칩니다.
"다들 자꾸 내 이야기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이 떠드는데, 아니. 내 이야기는 내가 쓰겠어요."
3. 스파이더맨, 아니 마일스의 이야기
숙적(메인빌런)을 상대하는 주인공(마일스 모랄레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스팟'이라는 메인 빌런 역시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전개를 비껴가는 인물입니다. 스파이더맨 IP의 다른 영화나 창작물에서는 전혀 비중이 없던 캐릭터인데, 인물의 특징을 재해석하고 강화하여 완벽한 아치 에너미(숙적)으로 재탄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관객들 중 이번 작품의 스토리에 대해 다소 완결성이 부족한 채로 끝을 냈다는 평이 많습니다. 저 역시 이에 공감합니다. 마일스의 평화로운 일상은 철저히 무너졌고 주인공은 스파이더맨 소사이어티 전체를 적으로 돌렸습니다. 나아가 메인 빌런인 스팟은 능력을 완전히 각성한 뒤 초월적인 존재로 거듭난 탓에, 극 전체에는 암울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마저 느껴집니다. 이 상황에 마일스는 자신의 지구에 돌아가는 것에 실패하고, '또 다른 마일스'가 빌런이 된 세상을 마주하고 맙니다. 여기서 다소 갑작스럽게, 이번 영화의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앞선 작품들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줄곧 주인공이 '스파이더맨'으로서 겪게 되는 운명과 사건을 다루어 왔습니다. 그러나, 마일스 스스로가 모두에게 외쳤듯이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스파이더맨으로서의 운명에 얽매이는 한계를 벗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는 진짜 주인공,'마일스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다음 작품의 제목은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유니버스>로 현재 제작중에 있으며2025년 상반기 개봉을 예정에 두고 있습니다. 뉴 제너레이션, MZ 스파이더맨이 '낡은 운명론'을 거부하고, 스스로 개척할 이야기를 기대하며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