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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너리 Apr 22. 2024

소울(Soul, 2021) 리뷰

삶이 지겹고 의미 없다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감상하신 뒤에 글을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0. 단언컨대, 10년 내 최고작

  오늘은 <엘리멘탈, 2023>과 <인사이드 아웃, 2015>에 이어서 픽사의 작품에 대한 3번째 리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그 주인공은 근 10년 내에 픽사의 최고작이라 단언할 수 있는 <소울, 2021>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개봉하던 날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손 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리뷰에서 소개 드렸던 바와 같이, 그저 감독의 이름이 '피트 닥터'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유일한 3관왕에 오르게 되었죠. 사실 제게 이 작품에 대한 대외적인 평가는 그다지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소울>을 극장에서 관람했던 날, 이 영화는  인생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여운을 남겨 주었으니까요.


1. 그의 삶, 우리의 삶
중학교 밴드부를 가르치는 조 가드너(주인공)

  영화 <소울>의 도입부에서 엿볼 수 있는 '조 가드너(주인공)'의 인생은 우리 자신의 삶과 겹쳐 보입니다. 그는 중학교 밴드부 학생들을 지도하며 반복되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간제 강사였던 그에게 학교에서는 정규직 채용을 제안했지만, 그는 이를 수락하는 것을 망설입니다. 조에게는 중학교 음악 교사가 아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재즈바에서 감상했던 피아노 연주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날로부터 이미 수 십년이 흘렀지만,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삶이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조는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인 듯 보입니다. 이 세상은 밥벌이를 뒤로 한 채 허황된 꿈만을 쫓으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이미 그의 오랜 무명 생활을 알고 있기에 학교에서의 정규직 제안을 수락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려던 조는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과거에 가르쳤던 제자에게서 '도로테아 윌리엄스' 밴드의 재즈 피아니스트 연주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게 되죠. 비록 한 차례의 연주만 맡아달라는 제안이기는 했으나, 그에게 이 기회는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했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그날, 조의 인생은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2. "내 인생은 의미 없었구나."
사고로 죽기 전, 희망에 가득 찬 조의 모습

  마침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던 그 날에, 운명의 장난은 조를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습니다. 사고로 죽게 된 조는 곧바로 '사후 세계'에 던져지게 되죠. 그곳의 모든 영혼들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Great Beyond(위대한 저 너머)'로 건너가, 완전히 소멸하게 됩니다.  그는 이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고 결국 '유 세미나(태어나기 전의 세계)'로 도망치게 됩니다.


  '유 세미나'에 우연히 도착한 조는 '태어나기 전의 영혼'에게 멘토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렇게 멘토가 된 조는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본 뒤에 슬픈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죠.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구나." 그가 스스로삶을 돌아보며 마주한 장면들은 모두 초라하고 쓸쓸하며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홀로 쇼파에 앉아 tv를 보며 보냈던 시간들, 프로 뮤지션의 꿈이 좌절되었던 순간들, 밥벌이를 위해 음악 강사로 소비했던 나날들, 매일 홀로 끼니를 때우던 시간들까지.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삶은 본래 꿈꾸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3. 그딴건 인생의 목적이 아냐.
지하철에서 버스킹을 처음 본 '22'

  조가 멘토를 맡게 된 영혼의 이름은 '22'입니다. 유세미나에서 무려 22번째만에 태어난 영혼은 오랜 시간 동안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해 지구로 떠날 수 없었죠. 그 어떤 것에서도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던 '22'의 태도는 우연히 지구에 떨어진 뒤에 180도 달라지게 됩니다. 22는 조의 몸을 차지한 채 삶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이제 처음으로 '인생은 꽤 살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삶의 목적을 알겠다.'고 말하는 22에게 조는 차갑게 쏘아 붙입니다. 피자를 먹는 것?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 그냥 걷는것? "그딴건 인생의 목적이 아니야, 그건 그냥 사는거잖아."


  22는 조의 말에 크게 낙담하게 되고 유세미나에 돌아온 뒤에 지구에서의 삶을 양보하게 됩니다. 그렇게 조는 자신의 몸을 되찾은 뒤 꿈에 그리던 도로테아 윌리엄스와의 무대에 오르게 되죠. 그날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조는 결국 도로테아의 인정을 받으며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되죠. 이제 프로 뮤지션이 된 조는 도로테아에게 묻습니다.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거죠.?" "내일도 여기에 와서 똑같이 무대를 하면 돼." 


4. (그냥) 살아가는 순간들
바다를 찾는 젊은 물고기의 이야기

  이 순간에 와서야, 비로소 조는 깨닫게 됩니다. '삶은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구나.' 집에 돌아온 조는 22가 아끼고 사랑했던 물건들을 하나씩 살펴보게 됩니다. 바람에 날리며 팽그르르 떨어지던 낙엽, 조의 어머니가 무대 복장을 수선해 주었던 실타래, 미용실에서 긴장을 풀라며 선물 받았던 막대사탕, 차갑게 식어버린 피자 한 조각까지. 22는 그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으며 '사는 것'을 경험한 끝에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조의 인생도, 우리의 인생도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마침내 뮤지션의 꿈을 이룬 조가, 결국 눈물을 흘리며 추억할 수 있었던 장면은 '(그냥)사는 것들' 이었으니까요. 조가 갓난쟁이였을 적에 목욕을 시켜주던 어머니의 환한 미소, 재즈 LP를 들려주던 아버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바라보던 하늘, 부모님과 함께 지붕에서 감상했던 폭죽놀이, 눈이 내리던 날 카페에서 혼자 먹었던 파이 한 조각, 처음 음악 수업을 하던 날의 설렘, 어린 학생에게 처음으로 드럼 채를 쥐어주던 날, 나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행복해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가 돌아가시던 날 어머니와 바닷가로 달려가 함께 노을을 바라보았던 순간. 이 모든 순간들 끝에 영화의 장면은 조의 공간에서 뉴욕으로, 우리의 지구로, 그리고 끝에는 온 생명과 우주를 비추게 됩니다.


5. 모두의 삶에 대한 위로
조의 삶에서 모든 이들의 삶으로

  그렇게 스크린이 온 세상으로 확대되는 순간, '소중한 삶', '소중한 인생'의 대상은 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 나아가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됩니다. 영화 <소울>은 제게 말로는 쉽게 표현하기 힘들 만큼의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 인생과 삶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문구와 격언은 차고 넘칩니다. '태어난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말을 살면서 수 천 수 만번 듣는다 한들,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한 적 조차 없습니다. 픽사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듯 합니다. '단순히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는 지가 더 중요하다.'


  어떤 영화, 글, 작품이 당신의 가치관을 크게 바꿀지도 모른다. 혹시 이 말에 공감하시나요? 적어도 제게 있어 이 영화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꿈'이라 부르는 것을 이루지 못한 채 삶의 여정을 나아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극소수의 사람들은 꿈을 이루었기에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며 자부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삶을 살고 있든지 간에, 우리 모두는 같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끝과 필연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이 모든 고단한 과정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생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소울>은 우리를 위로하고 한 편으로는 깨우치도록 합니다. 너는 아주 운이 좋게 소중한 삶을 선물 받았으니, 그것을 최대한 즐기라고. 삶은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모든 장면들은 유일하기에 소중하고 그렇기에 모든 인생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정의 끝에 'Great Beyond(위대한 저 너머)'를 마주했을 때, 후회 없이 매듭 지을 수 있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해보며 오늘의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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