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엘리멘탈, 2023> 리뷰에 이어서 픽사 스튜디오에 대한 2번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주인공인 <인사이드 아웃 1, 2015>은 2010년대 암흑기를 지나고 있던 픽사의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작품이었습니다. 2000년대의 픽사는 특유의 기발한 발상과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찬란한 황금기를 보냈습니다. <몬스터 주식회사, 2001>를 시작으로 하여 <월-E, 2008>와 <업, 2009>를 연달아 개봉하던 시기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팬층을 확보했고, 평단의 호평과 함께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들며 '믿고 보는 픽사'라는 수식어는 폐기 직전의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이 시절에 등장했던 작품들은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한참 부족했습니다. 2011~2014년의 작품들은 대부분 전작의 성공에 의존한 2차 창작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카>, <인크레더블>, <몬스터 주식회사>의 속편들은 이전의 설정과 캐릭터를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이야기에도 별로 특별할 것이 없었기에 픽사의 팬들은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중 유일한 오리지널 작품이었던 것이 겨우 <메리다와 마법의 숲, 2012>이었으니 이 시절은 그야말로 '암흑기'와 같았습니다. 그렇게 '픽사의 황금기는 이제 끝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들리며 팬들은 2015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1. 탁월한 스토리텔링, 당신을 치유하는 이야기
'당신의 머릿 속 작은 목소리들을 만나보세요.'
2015년에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은 '픽사의 암흑기가 끝났다.'는 평을 이끌어냅니다. 2016년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을 비롯하여 당해 시상식을 휩쓸었으며 대중과 평단 모두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이야기는 무엇이 그리 특별했기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걸까요? 픽사의 스토리텔리의 정수는,메시지를 '뻔하지 않게 전달하는 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픔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다.' '슬픔의 순간이 결국 상처를 아물게 한다.' 와 같은 텍스트들은 진부하게 느껴집니다. 흔해 빠진 메시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인사이드 아웃>의 화법은 아주 특별합니다. 감정을 소재로 삼는 이야기는 이미 수 만 번 회자되었을테고, 뻔한 내용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감정(기쁨, 까칠, 버럭, 소심, 슬픔)을 의인화하고 시각화하여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로 구현하니, 아주 특별한 장면들이 완성됩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참신함'이 오직 픽사만이 보여주었던 대단한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 이야기는 마치 심리 상담을 받는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합니다. 도입부에서 마주하는 신생아의 머릿 속 공간에서 '기쁨'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합니다. 주인공은 성장하며 감정의 분화를 겪게 되고, 관객은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기회를 얻습니다. 한 때 품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소중한 감정들이 <인사이드 아웃>의 스크린에 투영됩니다. 그 시절 나에게 찾아온 '슬픔'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좌절의 순간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한 치유의 힘은 무엇이었는지를 되짚어봅니다. 이렇게 이 영화는 우리의 마음을 보듬고 치유합니다. 저는 조금 울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었던 '슬픔이'에게, 그리고 외로웠던 나의 벗이 되어주었던 '빙봉'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그들을 까맣게 잊고 지낸게 조금 미안하다고. 이렇게 이 영화는 우리에게 '슬픔을 딛고 성장해주어서 고맙다'며 위로를 건넵니다.
2. 믿고 보는 '피트 닥터'
오스카 3관왕에 빛나는 피트 닥터, 현재는 픽사의 CCO
2015년 개봉을 앞두고 있었던 시기의 <인사이드 아웃>은 이미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할만한 기대 요소가 많았습니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오리지널 작품이라는 부분이 주요했고, 트레일러를 통해 엿보았던 독창적인 캐릭터와 설정은 '명작'을 예감하게 했습니다. 허나 제게 있어 가장 큰 기대요소는 다름 아닌 '피트 닥터'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픽사의 황금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피트 닥터는 <토이스토리 1,2>와 <월-E>의 원안을 짜고 <몬스터 주식회사>의 감독을 맡은 뒤에 <업, 2009>을 통해 아카데미를 수상한 그야말로 천재적인 애니메이터였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피트 닥터는 그의 커리어 2번째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의 오늘날, 그가 직접 감독을 맡았거나 원안을 짠 작품들은 반드시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대에는 '픽사'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명작을 기대하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포스터의 하단에 '피트 닥터'가 새겨져 있는 경우는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그는 <인사이드 아웃>의 개봉 후에 <소울, 2020>을 통해서도 수 많은 이들에게 감명 깊은 이야기를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 부문의 유일한 3관왕에 오른 바 있습니다. 픽사 CCO의 자리에 오른 그의 기발한 상상력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큰 변화, 새로운 감정들' : <인사이드 아웃2>의 포스터
3. <인사이드 아웃 2, 2024>를 기다리며
원작의 개봉 이후 무려 9년이 지난 올해, 드디어후속작인 <인사이드 아웃 2>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픽사에서 '피트 닥터'가 깊이 관여한 작품은, 개봉을 손 꼽아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피트가 직접 감독을 맡지는 않았지만, 원안의 창작자인 만큼 제작에 깊이 관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던 <토이스토리 1,2>와 <월-E>가 대단한 수작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에도 기대감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인사이드 아웃2>에서는 주인공인 라일리가 사춘기를 겪으며 새로운 감정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1편에 없었던 다양한 감정들이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등장할 예정입니다. 부디 이번 작품이 원작보다 나은 속편이 되기를 희망하며(흔치 않은 일이지만) 리뷰를 마칩니다. <인사이드 아웃2>의 개봉일은 한국 기준 2024년 6월 12일입니다.(작성일 기준 D-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