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얘기를 하기 전에 웹툰 원작의 드라마들에 대해 얘기해보자. 최근 런칭되고 있는 웹툰 원작의 드라마들은 꽤 큰 공통점을 갖고 있다. 스토리가 스타일리쉬하기보다는 10여년 전의 드라마들의 흐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웹툰들의 드라마 러쉬 초기에는 최대한 웹툰의 요소들을 활용하려고 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기 발랄한 웹툰의 스토리를 아주 전형적인 형식으로 고치고 캐릭터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태원 클라스>가 가장 대표적인 예다. 구닥다리 스토리에 매력적인 캐릭터. 이야기는 진행될수록 산으로 갔지만 캐릭터로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서 어떻게든 마무리 지은 드라마였다.
<간 떨어지는 동거>는 기존의 웹툰 기반 드라마들이 가지는 장점과 약점을 정반대로 갖고 있다. 이야기의 구조는 최근 로맨스 판타지에 아주 충실하면서도 주연 캐릭터가 밋밋하다는 말이다. 아주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별로더라도 캐릭터가 매력적인 드라마가 더 흔하기 때문이다. 이 것은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과 캐릭터를 주조하는 것의 난이도 차이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숲을 전체적으로 가꾸는 것보다 그 속의 나무 한그루 가꾸는 게 쉬운 것과도 같은 이치랄까?
<간 떨어지는 동거>의 이야기는 이렇다. 인간이 되기 위해 999년 동안 열심히 인간의 정기를 취해온 구미호인 신우여(장기용)가 인간여자사람 이담(이혜리)에게 자신의 정기를 우연히 뺏긴다. 그 정기를 다시 가져오기 위해서 둘이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이내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정기를 다시 가져왔음에도 인간이 될 기미가 없다. 산신이 와서 구미호가 1000년 안에 인간이 되지 못하면 죽는다는 미션을 주고 인간이 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한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적으로는 바로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에 다뤘던 신과 죽음을 중심으로 한 갈등관계에 충실하다. 사랑과 죽음이 전혀 다른 궤도에 있다가 신이 등장하면서 하나의 미션 안에서 선택지로 묶인다. 그리고 미션이 성공적으로 달성되면서 사랑 역시 이뤄진다. 사랑과 죽음을 미션으로 묶는 과정이 아주 매끄러워서 꾸역꾸역 보는 와중에도 놀랐다. 산신이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기가 아니라 인간성이고 그 인간성의 정점은 사랑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은 인상 깊었다.
하지만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에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직접적으로 작용-반작용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작용-반작용의 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신우여는 뭔가를 주도적으로 하기보다는 남을 시키거나 눈치를 보는 캐릭터다. 이담은 자기 의견은 똑부러지지만 그걸 드러내면 안되는 상황이 아니면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렇듯 캐릭터들이 소극적이기 때문에 사건/사고가 선행되어야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경우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드러날 수가 없다. 사건/사고에 끌려다니면서 주관을 밝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건/사고 속에서도 자신의 것을 드러내고 부딪혀야 캐릭터의 진가가 드러난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세상에 무관심한 구미호와 발랄하지만 주제파악 잘하는 여대생 수준에서 그친다.
제작진이 스토리에 공들였고 배우들의 매력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드라마는 맞다. 다만 스토리에 공들인 것에 비하면 캐릭터에 대한 고려는 부족했다. 그렇다 보니 배우들이 캐릭터들을 제대로 표현하기도 어렵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캐릭터가 제대로 성립이 안되니까 인간성을 표현하고 달성하는 과정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미션을 풀어가는 과정이 명확하지 않아 마무리도 어설픈, 아쉬운 드라마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기도 하다. 최근 웹툰 드라마들의 진부한 진행에 여러모로 심드렁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 떨어지는 동거>는 진부한 진행을 택하기보다는 트렌디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프로는 결과로 얘기하니까 이 드라마도 실패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화된 웹툰들 중 상당수는 이야기 캐릭터 모두 실패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성취를 거뒀다면 칭찬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