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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Mar 07. 2024

에필로그

내 다리가 '피로골절'이라고?

귀국 비행기 시간이 넉넉히 남아 친해진 몇몇과 2층으로 된 시티투어버스에 올라 마드리드를 둘러본다. 짧은 시간에 도시를 보기에 이만한 것이 없다. 그동안 참 애썼다. 내 안의 나에게 셀프칭찬을 하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산티아고순례길의 출발은 깔끔했다. 그러나 첫 관문인 피레네산맥을 넘을 때 오른발 새끼발가락이 등산화에 계속 쓸렸다. 느낌이 안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성이 잔뜩 난 발가락을 달래기 위해 골무처럼 생긴 보호 커버를 끼우고 걸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끼발가락을 보호하겠다며 발바닥 안쪽에 힘을 주어 걸었더니 엄지발가락, 발바닥, 무릎이 동시에 반란을 일으켰다. 어쩔 수 없이 덕지덕지 테이핑으로 다리를 중무장하고 걸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급기야 오른쪽 신발까지 복숭아뼈 부근을 깨물어 망치로 두드려 부드럽게 해 주는 응급조치를 했다.      


결국 왼발이 다리 구실 못 하는 오른발 역할까지 떠맡아 두 몫을 하느라고 동분서주했다. 그러자 서서히 왼발도 지쳐갔다. 자주 쉬었고 스틱의 지원을 받았으며 압박붕대까지 감으며 견뎌야 했다. 역부족이었다. 결국 투항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려운 다리 상태가 되어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 의사를 만났다. 스페인 의사는 염증이라 했다. 나는 의사 말을 신뢰했기에 소염진통제를 보약처럼 열심히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생면부지의 한국 사람 ‘들꽃 바람’ 님이 수지침을 놓아주었고, 길 위의 사람들이 제공한 여러 나라의 근육 연고들을 밥 먹는 것보다 더 열심히 발랐다. 얼음찜질도 했다. 실력을 알지 못하는 현지인이 부황을 뜨기도 피를 뽑기도 했을 뿐 아니라, 내 얘기를 들은 프랑스 아저씨가 뱅쇼를 끓여주며 테이핑을 해줬는가 하면, 일본의 동전 파스랑 스페인 약국의 발목 보호대를 이것저것 사용하기도 했다. 

나는 발목 통증으로 걷는 게 느렸지만 최선을 다해 걸었다. 내 발목은 염증이 생겼을 뿐이니까. 그러나 지독한 통증은 숙면을 방해했다. 


새벽마다 어둠을 밝혀주며 함께 걸어준 라푼젤 언니와 빈속에 약 먹지 말라고 누룽지를 챙겨주던 여수 형님, 이 두 분은 참 감사하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 친동생처럼 챙겨 주었다. 제니퍼, 전 부장, 김 대리, 이들은 내 다리가 얼마나 아픈지를 읽어주었다. 그 따뜻한 마음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귀국하기 바쁘게 마중 나온 남편과 대학병원으로 직행했다. 정형외과 의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피로골절. 내 왼쪽 발목이 피로골절이란다. 스페인 의사가 염증이라 했다 하니 의사는 또 웃었다. 피로골절 초기의 실금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피로골절을 백과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피로골절(疲勞骨折)은 뼈에 대한 질환이나 외상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되는 압박으로 뼈에 스트레스가 생겨서 골조직이 찢어지면서 발생하는 골절이다. 

골절과 피로골절이 다른 점은 피로골절은 아직 뼈가 완전히 부러지지 않은 상태이며 뼈에 가느다란 실금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     


통증으로 잠을 뒤척이던 이유가, 걷지 못했던 원인이 명확히 밝혀졌다. 오른발에 없는 선이 진하게 보이는 왼발 에스레이 사진에 할 말을 잊었다.


끔찍한 통증이었다. 소염진통제에 일반 진통제까지 같이 먹어도 아팠다. 그것을 견뎌내고 마침에 산티아고에 입성했다. 미련스러움이 하늘을 뚫고 부처님 손바닥도 빠져나갔지만 염증인 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아와서 알게 돼 다행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처럼 ‘뼈는 괜찮다’는 현지 의사의 말 한마디가 나를 걷게 했으니 말이다.  

발목은 여전히 부은 상태에서 아프다. 의사는 내 발목의 상태가 심해서 통 깁스를 해야 할 정도의 골절이라 했다. 이젠 붙을 시기라서 깁스는 안 하지만 가능하면 걷지 말라고 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목발을 사용하라고도 했다.      


핑계 김에 쉬어가야겠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름 즐겼고 살아있음을 만끽했다. 이젠 느긋하게 새로운 내 세상을 만나련다. 여유 속에 공허가 들지 않도록 나에게 집중하며 지내다가 불현듯 새로운 세상이 궁금하면 다시 길 위에 설 것이다. 그러려면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 누군가 내게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무쇠 다리’라고 말하겠다.    

 

길은 생명이다. 걷다 보면 치유의 힘이 느껴진다. 이보다 더한 생명력을 어디서 느낄 수 있겠는가. 나이 의식하지 않고 길 위에서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싶다. 인생 2막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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