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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Mar 06. 2024

세상의 끝에 서다

'무씨아'와 '피니스떼레'

작은 어촌 마을 두 곳을 방문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한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유럽 대륙의 끝이자 세상의 끝으로 알려진 ‘무씨아’와 ‘피니스떼레’를 방문한다. 나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대서양을 죽음의 바다라고 불렀다는데 나는 살기 위해 찾아갔다.  

    

두 지역은 세상의 끝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지만 분위기는 판이하게 다르다. 

무씨아(Muxia)는 영화 <The Way>에서 엔딩장면이 감동적인 바닷가 마을로 등장한다. 피니스떼레의 북동쪽에 있는데, 성 야곱이 포교에 어려움을 겪자 성모마리아가 돌로 된 배를 타고 나타나 야곱을 응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둘러보니 과연 돌로 만든 배일 것 같은 커다란 자연석이 뭍으로 튀어 오른 듯한 형상으로 바닷가에 서 있고, 바르카 성모의 성당(Nuestra senora de la Barca)은 돌로 만든 배를 바라보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성당이 있는 자리는 고대 켈트족의 섬김을 받던 신성한 곳이라고 한다. 17세기에 지은 성당이 번개로 파괴되어 2013년에 다시 지었단다.     

이곳에는 세 개의 돌이 있다. ‘카드리스, 아발라, 라 에리다’가 그것이다. 성당 앞 두 개의 바위 중에서 더 큰 바위인 ‘카드리스’는 돌 밑으로 사람이 지나가면 액운이 사라진다는 속설이 있단다.  


‘아발라’는 납작하고 둥근돌이 더 큰 돌에 붙은 것처럼 생긴 해안 흔들바위이다. 굴렸을 때 움직임이 있으면 죄가 없어진다고 전해 내려왔으나, 2014년에 거친 파도로 돌이 깨져 지금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라 에리다’는 인공적으로 세워졌다. 10m가량 되는 두 개의 큰 돌이 서로 마주 보는 형상이다. 2002년에 이곳에서 파도로 말미암아 유조선이 두 토막 나는 큰 사고가 있었단다. 수년에 걸쳐 잘 극복해 냈고,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로 세워놓은 유류 피해 극복 기념비이다.      

 

무씨아의 바닷가는 파도 소리에서 적막감이 묻어난다. 쓸쓸하다. 바람은 시간이 지나도 잦아들 기미가 없고, 내 작은 몸은 갈대처럼 휘청거린다. 이 풍진 세상에 대한 염려가 묻어나는 순간이다.      


피니스떼레(Finisterre)는 매우 동적인 바닷가 마을이다. 해안에 부서지는 파도부터 기념품 가게의 음악 소리까지 모두 크고 산만하다. 그래서일까 절벽 아래의 대서양을 죽음의 해안이라 부른다는 것마저 섬뜩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많았던 해상 사고와 예측할 수 없는 강한 해류, 바람, 안개, 폭풍 때문에 생긴 이름이란다.       

이곳은 무씨아의 분위기와 많이 다르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기념비 하나를 발견했다. 인류 최고의 지성인 중 한 사람이었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흔적이었다. 

     

'나는 때 이른 죽음이 찾아올 가능성과 함께 살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죽기를 서두르지도 않는다. 나는 그전에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라고 했던 그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왜 죽음의 해안에 접해 있는 어수선한 이곳을 찾았을까. 


바닷가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순례자 고행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의 신발 청동상이 있다. 왼쪽 한 짝뿐이다. 슬며시 다가가 내 오른쪽 신발을 벗어 완성된 한 켤레를 만든다. 

나는 지금 세상의 끝을 밟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예전에는 이곳까지 온 순례자들이 자신이 신었던 신발이나 지녔던 소지품 등을 태우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지금은 불법으로 규정해 놓아 할 수 없는 의식이 되었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두 지역에는 공통적으로 0.000km 표식이 있다. 땅의 시작인 동시에 끝이며, 대서양을 향해 열려 있는 이베리아반도의 땅 끝 마을이기도 하다.    


  

두 팔을 벌려 대서양의 바람을 맞는다. 세상이 고맙다. 이렇게 오랫동안 길 위에 서 있는 것을 허용해 준 남편과 아이들에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보낸다. 

내 안의 나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으로 길을 나섰으나, 예상하지 못했던 골칫덩이를 만나 아직도 걷는 게 힘들다. 왼쪽 발목의 통증도 여전하다. 그러나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는 별별 사람을 다 보며 많은 시간 ‘인간답게’를 생각했다. 


나는 ‘된 사람’이길 희망하고 ‘든 사람’이길 원하지만, 결코 ‘난 사람’이길 바라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그렇다. 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좋은 이웃들과 어울리며 웃고 싶고, 제니퍼와 이우넛처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 그런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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