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읽고
기행산문집이라는 형식을 처음 접했다.
처음에는 일기 같은 글인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읽을수록 이 책은 단순히 ‘어디에 다녀왔다’는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여행지에서 본 것과 경험한 것, 그리고 그로부터 건져 올린 생각을 촘촘히 적어 놓는다.
낯선 단어들과 그 조합 또한 인상 깊다.
20년 전의 여행산문임에도 불구하고, 유행에 뒤처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이유다.
특히 내가 다녀왔던 장소들이 등장해 더욱 정감이 갔다.
백두산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온 첫 해외여행지였다.
그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시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니, 그 여행이 더 또렷하게 남는다.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을 남겨줄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 여행을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티베트를 직접 가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만난 티베트는 내가 알고 있던 티베트와는 사뭇 달랐다.
외국에 나와서야 내가 태어난 나라를 조금 더 다채롭게 알게 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특히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른 나라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낯설게 읽히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 비로소 당연한 것이 언제나 당연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에베레스트인가, 초모랑마인가.
“그러나 초모랑마는 최고봉이라고 발견되기 전에도 최고봉이었고, 이름이 붙여지기 전부터 거기 있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오래 멈춰 섰다.
누군가에 의해 불리기 전에도, 본연의 모습은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
이름은 다만 부르는 이의 편의를 위해 붙여졌을 뿐이다.
나는 나로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누구에게는 ‘엄마’로, 누구에게는 ‘아내’로, 또 누구에게는 ‘딸’이나 ‘며느리’로 불리지만,
나는 그 이름들로만 규정되지는 않으리라.
나를 만드신 이가 지으신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