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만든 세계를 내가 선별하고 있었다.
이제 ‘심리상담’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어디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내면을 탐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동시에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상담은 종종 인본주의로 여겨진다.
천지만물의 주권자가 하나님이라 고백하면서 인간의 아픔을 사람들이 만든 기준과 해석으로 설명하는 일은 어딘가 불편했다. 마치 인간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언어로 정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담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의 말을 더 의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을 믿음 없음이라고 쉽게 단정했다.
모태신앙으로 살아온 나에게 심리상담은 하찮은 학문이었다.
“여호와께서 못하실 일이 없으시리라.”
그 말씀 하나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내가 선별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하나도 버림 없이 창조하셨다고 고백하면서도 상담만은 그분의 손길 밖에 두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교만이었다.
그런 내가 상담의 문을 두드린 것은 인생의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였다.
나는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부모님에게서 배웠다.
나누는 삶이 신앙인의 기본 태도라 여겼다.
그러나 그렇게 40년을 살고 나서야 알았다.
베풀기만 했더니 내 마음이 텅 비어 있었다.
나누며 살다 보니 정작 내 자리는 사라져 있었다.
결국 내가 없어졌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라는 질문만 남았다.
겉으로 보기엔 단단한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알 수 없는 공허함과
가슴이 막힌 듯한 답답함, 그리고 이유 모를 두통이 심해졌다.
더 열심히 봉사할수록 오히려 나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도 몰랐다.
살고 싶은 욕망이 희미해질 때조차 그런 생각은 신앙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억눌렀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무슨 불순한 생각이냐.”
나는 그렇게 나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처음으로 나는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 구조 요청을 했다.
“친구야, 나 좀 살려줘.”
그 말은 내 인생에서 가장 용기 있는 외침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없었다.
그저 이 공허함과 지옥같이 어두운 흑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만난 심리상담은 한 줄기 빛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산 소망’이라는 말이 이해되었다.
살 만하다고 느껴진 순간이었다.
상담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나를 보았다.
신께서 나를 빚으신 그 모습 그대로의 나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외면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자기 소멸이 아니라는 것도,
경계 없는 희생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보니 비로소 깨닫게 된 것들이었다.
올해 다시 성경 통독을 시작했다.
창세기 첫 세 장에서 이미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그 뒤의 수많은 장면들은 인간의 선택과 실패, 배신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이 한 문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선택하신다.
그리고 끝까지 나를 바라보신다.
이 깨달음은 상담과 병행하며 얻은 선물이었다.
나는 이제 믿는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상담 또한 그분의 섭리 안에 있다.
내가 필요 없다고 여겼던 것,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찾는다고 단정했던 그것이
실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또 다른 손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