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불과 8개월 전까지만도 제주 성산읍사무소에 근무했다. 6시 반에 요구르트와 달걀로 아침을 먹고 201번 버스를 탔다. 집에서 만든 플레인 요구르트는 용기와 함께 장수하고 계신 어머니 지인의 선물이다. 쿠팡에서 재료를 사는 건 내 담당이고, 어머니는 1주일에 1번 요구르트를 만드신다. 아침을 먹고 일본어 인강을 듣기는 내 계획일 뿐 한 번도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난 꾸벅꾸벅 잠에 취하고 만다.
덜컹덜컹~
학생 손님이 적진 않지만 새로 산 시외버스는 편리함과 의자의 딱딱함을 준다. 의자 머리 부분이 딱딱하지만 새 버스는 깨끗하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난다. 위생적이다. 손님들을 가득 태우고 버스가 시골길을 간다. 육지사람인듯한 젊은 기사는 친절하기까지 하다.
“할머니, 어디 가셤수과?”
“어디이? 표선 가지예?”
“타십서, 저기 자리 이신 게 마시.”
이 시간이면 해가 바다 위에 둥실 떠 있다." 해 뜰 때가 이쁜 데"말하며 바다가 보이는 옆자리를 슬쩍 본다. 새삼 비포어선라이즈는 몇 시에 찍은 건가 궁금해진다. 비록 여긴 오스트리아도 로마도 아니지만...
쿵
갑자기 시계를 보니 시간이 꽤 지났다. 큰 건물도 없이 나무만 우거진 터라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앞쪽 화면을 보며 해가 떠 있는 바다를 본다. 광치기해변이다. 처음 성산 왔을 때 감격한 것 중의 하나이다. 버스가 바다를 갈랐다.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은 난감하지만, 바다는 아름다웠다.
그 옆 오조리에 문화창고가 있다. 내 담당이었다. 성산 문화예술담당 고**. 내가 쓴 기고가 입구 한쪽에 붙여 있었다. 내가 관리하는 문화창고 지킴이 아줌마 김**씨는 아침부터 맨날 쓸고 닦고 참 깨끗이도 그곳을 관리했다. 칭찬이 자자했다. 이국적으로 생겼다는 성산고 카누부선생님마저 인정하는 듯했다. 카누샘은 내겐 인사도 안 건네서 대면대면해졌다. 그곳은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갔다. 버스도 한대 놓치면 한참을 거의 1시간을 기다릴 때도 있었다.
어느 날 김순이 샘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쓴 기고를 보시고 찾아오셨다. 정원을 가꾸시려고 난산리에 거주하신다는 시인님은 곱게 늙으셨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문화센터에서 뭐 재미난 거를 배우시나 보다. 은근 자랑이시다. 드라마 공항 가는 길에 나오는 한 화가분의 흔적이 거리에 있었는데 아직 있을는지 모르겠다. 오조리 바닷기를 둘이서 걸었다. 원초적인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바다였다. 그 화가의 연습실까지 갔다가 돌아서는데 그분을 못 뵘이 어찌 아쉽던지 모른다.
기억이 난다. 몇 해 지나고 김순이 시인님을 제주문학관 세미나에서 뵈었다. 이젠 관장님이 되어 계셨다. 여전히 난산리 그곳에서 달이 되어 별과 닮은 꽃을 가꾸시고 계셨다.
그곳에 가면 누구든 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