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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Mar 27. 2024

한 책방지기 혹은 북 큐레이터의 일상 속 책소개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김영건, 어크로스)

사계절 출판사에서 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이 전국 각지에 있는 동네책방지기들의 개괄적인 이야기라면 어크로스에서 펴낸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는 한 책방지기의 일상과 책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속초 동아서점 김영건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68년 된 서점을 2015년부터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30대인 글쓴이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지역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프롤로그를 읽어보니 내가 모르는 책들에 대한 정보가 많았고 신간 혹은 좋은 책들을 직접 읽어본 글쓴이가 소개한 책들이라 호기심이 동했다.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도움 받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글쓴이의 습관에 나는 공감한다. 지금은 눈이 침침해져 책 읽기를 조절하고 있지만 나 역시 새로운 분야의 무언가를 시작하면 책을 먼저 읽어보며 도움을 받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가를 배울 때면 요가에 관한 책을 읽고 보타니컬 색연필화를 배울 때는 보타니컬 책을 보고 어반스케치를 배우는 요즘에는 어반스케치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노하우를 배우곤 한다.


글쓴이는 자신의 에세이를 독서생활문이라 표현한다. 북 큐레이터이기도 한 글쓴이의 책 소개 방식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책을 자연스럽게 끄집어낸다. 하루종일 서점에서 생활하며 만나는 손님들에 관한 이야기, 함께 책방을 운영하는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책 소개를 한다.


책 속에는 32개의 에세이가 들어있는데 그 속에서 글쓴이는 37권의 책들을 소개한다. 그중에 '메리골드 거리'라는 에세이에서 글쓴이는 어머니가 시작한 서점의 정원 가꾸기를 통해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그 안에서 인용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딛고 서 있는지엔 별로 관심이 없다. 어딘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다 보면 적어도 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수평선이 얼마나 광활한지, 언덕이 얼마나 푸른지는 알아차린다. 하지만 발밑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 P153 <흙>

                                                                                             


차페크의 말들 속에는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들에 대한 경건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언젠가 <정원가의 열두 달>을 읽어볼 요량으로 메모지에 따로 책 제목을 적어 둔다.


글쓴이의 자기반성이 담긴 이야기와 함께 짐 아일스워스가 쓴 <할아버지의 코트>도 읽고 싶은 목록에 집어넣고 부희령의 <무정에세이>도 적어 놓는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어느 할머니에 관한 것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 눈길을 헤치고 책을 사러 서점에 온 할머니가 있다. 다른 지방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아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어서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가 책방주인인 글쓴이에게 아들이 읽을 책들을 골라 택배로 보내달라 부탁하고는 눈발을 헤치고 미끄럽고 힘든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글쓴이는 자식을 위해 책을 사주는 부모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실용성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그냥 책일 뿐인데, 책에는 책만이 가지고 있는 고귀한 매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올라브 하우게의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라는 책을 소개한다.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

저녁 정원을

막대를 들고 다닌다.

도우려고.

그저

막대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와 설 때는

온몸에 눈을 맞는다   

                          - p43,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내리는 눈을 그저 하염없이 맞고 있는 어린 나무가 힘들고 무거울까 봐 눈을 털어주기 위해 저녁 정원을 돌아다니는 시 속 화자의 마음이  아들을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 같다.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 마음으로 나는 올라브 하우게의 책도 메모지에 적어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 속에서 숨 쉬고 있는 글쓴이의 마음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거나 다른 시공간을 살았거나 책을 읽으면 내가 몰랐던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알았다 해도 제대로 알지 못한 세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생각을 만나고 새로운 마음을 품을 수 있다. 그것이 책 읽기의 매력이고 재미라고 생각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고귀한 정신과 고매한 마음을 만날 수 있고,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묵상을 할 수 있는 책 읽기는 나에게 살아가는 동안 놓고 싶지 않은 설레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동네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스스로 책 읽기를 즐기고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글쓴이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그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이 메모지에 가득해져 나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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