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풍경

석조전 스케치

by 밝은 숲

동생을 만나러 서울에 갔다가 오랜 만에 덕수궁에 들렀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요즈음은 무엇을 그릴까, 늘상 생각하게 되는데 고궁을 그려보면 어떨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2월이었지만 봄날처럼 따듯했고 하늘은 청명하기 이를 데 없어 야외 나들이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동생과 만나 점심을 먹고 볼일을 보고 나서 청계천과 종로를 거쳐 덕수궁 앞까지 산책했습니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에 들어서니 평일 오후인데도 덕수궁은 관람객들로 붐볐습니다. 와국인들과 젊은 연인들, 중년, 노년의 관람객까지 다양했습니다.


금천교를 지나 광명문을 거쳐 단아하고 우아한 함녕전과 덕흥전을 구경했습니다. 기품있는 중화전을 살펴보고 그 뒤에 나란히 서 있는 전각들을 눈에 담았습니다.

석조전 스케치(임명옥)

그리고 발걸음은 석조전으로 향했습니다. 서양식 궁전으로 지어진 석조전은 백 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도 이오니아식 기둥이 아름답고 우아한 건축물이지만 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우리 역사의 한 축과 함께 합니다.


일본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긴 후 대한제국(1897)을 선포합니다. 이권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던 열강들의 각축전 속에서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석조전은 1900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하는데, 그 와중에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조선을 자신들의 먹잇감으로 만듭니다.

그 이후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1907년 정미7늑약으로 군대를 해산당하고 고종은 폐위당하고 1910년 급기야 주권을 잃게 되는 경술국치를 당합니다.


나라가 주체성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석조전은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석조전은 대한제국 최초의 건축물이자 마지막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잃어가는 와중에 지어진 석조전, 뼈아픈 우리의 현대사가 담겨 있는 석조전을 스케치하며 여러가지 상념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백 년이 넘는 사간이 흐르는 동안 석조전은 우리의 수많은 굴곡진 현대사를 또 지켜봤을 겁니다. 과거 역사의 참람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수많은 교훈을 알려 줍니다.


석조전을 스케치하며 어제의 석조전이 남긴 뼈아픈 교훈을 오늘의 석조전 풍경에 담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