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by JACOB


“00님이 라이킷했습니다.”

핸드폰 화면에 올라온 라이킷 소식을 애써 지웠다.

“징-”

짧게 울리는 진동이 라이킷을 알렸지만, 이 역시 애써 외면했다.


“라이킷수가 10을 돌파했습니다!”

....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시름없이 나를 위로했다. ‘그래, 10명은...’


저 작은 하트 모양이 내 세상을 요란하게 뒤흔든다. 나 역시 이곳저곳에 눌러대는 하트인데, 버튼 하나에 내 이토록 요동쳐도 괜찮은 걸까.

분명 처음 글을 쓸 때는 ‘라이킷에 연연하지 말고, 우직하게 내 글을 쓰자’ 다짐했지만, 말 그대로 어리석음이 곧았던 것인지 우직하게 쓴 ‘내 글’일수록 라이킷 하나하나가 절실해졌다. 왜인지 라이킷이 달리지 않을 때면 자연스레 아비 된 자의 속상함이 옹골차게 매달렸다. ‘혹시 내 글이 너무 쓸쓸해하진 않을까.’


괜스레 쓸쓸해 보이고, 괜스레 외로워 보이고, 괜스레 애달파 보일 때가 있다.

내 시간이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할 때, 내 삶이 누구에게도 독려받지 못할 때, 내 감정이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할 때,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내 글이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할 때.


그래서 우직하게 쓴 ‘내 글’일수록 작은 하트 하나하나가 푸릇하다.

“아드님 인사성이 밝네요.” 건너편 박 씨가 툭 던진 작은 하트처럼.

“딸 웃음이 참 헤퍼” 슈퍼 아주머니가 툭 던진 작은 하트처럼.

“저 글은 누굴 닮아 예의가 바른 거야~” 교회 권사님이 툭 던진 작은 하트처럼.


최고의 것으로 채워 낳지 못한 내 아이가 많은 사람에게 그저 이쁨 받았으면 하는 마음.

아니, 설령 이쁨 받지 못하더라도 부디 너무 외롭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


기껏 나라도 쓸쓸히 있는 내 글을 위로하고 독려해 보려 하지만, 원래 가족의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는 차마 계산할 수 없는 값어치에 비해 속절없이 미약한 법.

그저 안방의 아버지처럼 애써 묵묵히 자리를 지키다가 라이킷수가 열을 넘어설 때에야 잔잔하게 말을 툭 건넨다. “아들, 동네에서 아들 얘기 좀 들리더라?”


시선은 계속 텔레비전을 향하지만 기쁨이 벅차오른다.

시선은 계속 텔레비전을 향하지만, 걱정이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