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결과 표절률 0%가 나오면 그리도 기분이 좋았다. 비록 위대하진 않지만 당당하게 나의 글을 썼다는 뿌듯함이랄까. 미약한 글이어도 자랑스러웠다. 세상에 내 글을 적어낸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으니까.
그런데, 정말 내 글을 적은 사람은 나일까.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장 위로 색색의 밑줄과 질문과 생각들이 얼기설기 올라온다. 질문을 부르는 단어, 공감을 일으키는 문장, 영감을 주는 문단. 작가가 적은 글 위로 내 펜이 형형색색 휘날린다. 이게 작가의 책인지 내 책인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한 권 두 권 읽다 보면 무엇에 홀린 듯 책을 덮고 내 노트를 펴게 된다. 작가의 책 위가 아닌 내 노트 위에 생각을 얹고 싶은 것인지, 내 노트 위에서의 긴 엉덩이 씨름을 시작한다. 그 끝내 받아낸 ‘검사 결과 표절률 0%.’ 그러나 사실 나는 안다. 이 생각은 저 작가에게서, 이 말은 저 선생님에게서, 이 영감은 저 인물에게서, 이 글의 시작은 저 책에서 시작된 것을. 그저 운이 좋게 표절에 걸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운이 좋게 아무도 모를 뿐이다. 그저 운이 좋게 모두가 수용해 줬을 뿐이다.
미국 팝아트의 한 거장은 자신의 많은 작품이 대개 모방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왜 질타받지 않았을까? 질타받기엔 너무 유명했기 때문일까? 그는 말한다. 자신은 그저 기존의 작품 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을 뿐이라고. 그래서 자신의 작품은 예술이 되었다고.
물음표가 붙었다. 어디까지가 영감이고, 어디까지가 모방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까지가 침해일까. 공감으로 다가오면 마음을 울리는 위로가 되고, 영감으로 다가오면 새로운 가치를 덧입히는 예술이 되지만, 침범으로 다가오는 순간 과히 모두가 불쾌해진다.
물음표가 붙었다. 어디까지가 영감이고, 어디까지가 모방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까지가 침해일까. 물음표가 붙었다. 어디까지가 위로가 되고, 어디까지가 연대가 되고, 어디까지가 감탄이 되고, 어디까지가 불쾌가 될까.
글의 끝까지 해답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먹고살기 위해 까짓 내가 먼저 냈을 뿐인 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우겨야 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자신과 전체를 연결할 수 있을까.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더불어 너머를 온전히 지향할 수 있을까.
내 고민의 뒤는 그대로 여백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누군가 이 위로 형형색색 다양한 펜을 휘날리기를 기다리며 그저 남겨두기로 했다. 언젠가 이게 누구의 글인지 모를 정도로 형형색색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 찰 때 세상에 내놓으리라.
나와 너, 세계 모두의 이름으로 더불어 만들어 낸 '평화의 예술 작품'으로.
모두가 먹고사는 문제에 더 이상 날카롭지 않게 될 때 ‘우리의 평화’라는 이름으로.
본디 꿈꾸는 것이 예술이자 문학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