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en Camino

프롤로그

by JACOB


200만 원. 200만 원이 모였다.


부모님의 너그러운 100만 원. 대견하다는 말과 함께 들어온 외삼촌의 30만 원. 나는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는 어머니 친구가 대뜸 10만 원. 한 해 동안 가장 깊어진 L누나의 60유로. 큰마음으로도 충분했던 K집사님의 35유로. 한국 짬뽕이 그리울 거라며 건넨 K형님의 5만 원. 정말 오래 뵙고 싶은 B권사님의 20만 원. 친구 석주의 10만 원. 떠나는 날 집에서 잡은 신우의 101달러.


계수해 보니 약 200만 원이었다. 자그마치 200만 원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 고무줄에 둘둘 말려있는 101달러를 펼치니, 생전 다정함이라곤 그리 느껴지지 않았던 신우의 쪽지가 조그맣게 들어 있었다.


“사랑이 언제나 끊어지지 않는 것이 친구이고, 고난을 함께 나누도록 태어난 것이 혈육이다.”*


괜히 신우 때문에 울컥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이래서 만인에게 다정한 사람보다 평소에 냉소적인 사람이 감동 주기 쉬운 건가. 억울하다.



억울함도 잠시, 공항으로 가는 발걸음이 제법 무거워졌다.

이 순례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이해와 응원과 연대와 사랑이 업혀 있는 걸까. 내가 떠나는 순례길이 그들에게 대체 뭐라고. 내 아집과 투기로 가는 여행일 뿐인데, 내 마지막 버킷리스트일 뿐인데, 나를 추스르고 싶어 오른 길일 뿐인데, 왜 이렇게 다들 내 인생에 이토록 진심이신지. 내가 이 길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줄 알고.

어느 시인은 생을 산다는 것을 ‘딱딱한 자기 존재 안에 생명이 움틀 수 있게 자신을 뒤틀어 여는 것’이라 말했다. 200만 원, 많은 생명 속에 들어선 내 생명은 어떤 것일까. 또 철저하게 무너질 것 같은 내 생에 왜 이렇게 많은 분의 생명이 얹혀 들어온 걸까.


나라는 생명이 참 가볍지 않다는 자각과 함께 큰 안쓰러움이 몰려왔다. 오밀조밀 얽혀있는 우리의 생을 비웃듯 세상은 무의미의 바람을 거세게 불러오니까. 덧없음이 불친절하게 몰아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심히 나부끼는 존재들이니까. 세상은 우리를, 나를, 개인을, 결코 배려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세상 앞에서 여지없이 약자일 뿐이니까.



*밥 열 술이 모이면 밥 한 그릇이 된다고, 많은 이들의 정성스런 한술 한술 위에 나름 봉긋한 밥 한 그릇이 되었다. 비록 덕지덕지 삐져나온 밥풀에, 금방 온기도 잃고, 흰쌀인지 보리인지 흑미인지 현미인지 온데 뒤섞여 엉망이지만 그래도 애써 그릇을 채워냈다. 많은 이들이 정성껏 퍼낸 한술들인데 모아보니 영 석연찮은 한 그릇이라 심히 죄송하다.


(....)

“불친절하게 몰아치는 무의미한 내 생에 당신들의 의미를 친절히 얹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을 얻을지 모르는 이 순례길 여정에, 무엇이 될지 모르는 내 미래에, 바닥을 기게 될지도 모르는 내 생에, 그저 덧없음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는 인생에, 아름다움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은 사무친 기도가 됐다. 그리고 나는 마저 아뢨다.


“나는 구합니다. 나는 찾습니다. 나는 두드립니다. 삶은 무엇이고 생은 무엇인지. 나는 덧없음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대변하고 싶습니다.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으니,*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구원할 빛을 주옵소서.”


이 길 끝에 내가 바라던 광명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글 끝에 내가 바라던 광명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생 끝에 내가 바라던 광명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그럼에도 노래할 수 있는 존재니까.


나의 글, 나의 노래, 나의 기도, 나의 편지, 나의 순례.

Buen Camino.

좋은 순례되기를.





*잠언 17:17

**십시일반(十匙一飯): 밥 열 술이 한 그릇이 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조금씩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 쉬움을 이르는 말.

***마태복음 7:7-11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