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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약혼녀 이야기

by 히비스커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쓰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세월이 흐르며 대부분 잊혔다.

그럼에도 기억나는 몇몇이 있다.

그중 한 명이 j다.


J는 K대 국문과를 나왔다.

K대 국문과는 걸출한 소설가를 배출해 낸 것으로 유명한 학교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J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은연중에 모교 교수들과의 추억을 얘기하곤 했다.

그럴 때면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스쳤다.

내가 교생을 하지 않았듯, j도 교생실습을 나가지 않았다.

j에겐 작가가 되려는 나와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동기들이 소설가나 선생님을 목표로 신춘문예나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그는 7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아마도 군청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예전 j의 집을 들른 적이 있었는데, 정말 군청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j는 7급 시험에 떨어졌다.

사실 보통의 경우, 인문계열에서 교생을 나가지 않는 경우는 한두 명에 불과하다.

그 문제아들이 바로 나와 j인 것이다.

그만큼 j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거 같다.

J는 미련 없이 같은 해 9급 공채에 응시했고 합격했다.


9급 공무원들이 그렇듯 그는 동사무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든 일이 너무 쉬웠다고 한다.

신입인 자신이 선임들을 교육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게 독이 됐다.

2년쯤 근무하자 j에게 권태가 찾아왔다.

그는 20년 넘게 근무한 상관들을 보며, 자신도 저렇게 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볼품없이 늙고 싶지 않아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선임들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을 텐데 왜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어쨌건 J는 퇴직금으로 옥탑방에 피아노를 들였다.

생각해 보면, 그에겐 순수하고 엉뚱한 면이 있었다.

그는 영화 '클래식' ost인 신승훈의 'i believe'를 흥얼거리곤 했다.

제일 좋아하던 작품은 허영란, 김국진 주연의 '내 약혼녀 이야기'였다.

허영란이 연변처녀로 농촌총각인 김국진과 결혼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이야기였다.

'십만 원 안 주셔도 됩니다'란 유명한 대사가 있다.

솔직히 그 드라마를 난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국문과 졸업생답게 그는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방송작가 교육원에 등록했다.

J의 인생이 꼬인 건 바로 그 지점부터였다.

누구나 그렇듯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한국방송작가교육원을 다니던 중, 그를 좋게 본 선생의 추천으로 유명작가의 보조작가 일을 하게 되었다.

(몇 년 전 그 유명작가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J의 말로는 말이 좋아 보조작가지 자신이 드라마 대본의 초고를 거의 도맡아 썼다고 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난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농구 경기로 치면, 한 골 넣고 혼자 다 했다고 추억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우리의 기억이 그렇다. 편한 대로 과장하고 조작한다.


내가 J를 만났을 때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다 거친 후였다.

처음 본 그는 매우 활달하고 유머 있고 똑똑했다.

약속장소가 신촌이었는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왔다.

처음엔 서먹했지만, 동갑이라 쉽게 친해졌다.


두 번째 만남은 친구와 나 그리고 J가 함께였다.

강남의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었는데, 그날이 kbs극본 공모 당선작 발표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술에 취한 친구는 공모에 탈락한 이유가 내정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 J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맞받아쳤다.

나는 중간에서 둘의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만남이기도 했고 두 친구의 감정이 갑자기 격해지자 당황했던 것 같다.

공모전 결과가 발표되면 항간에 내정자가 있다는 소문이 떠돌곤 했다.

솔직히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둘은 말다툼을 벌였다. 술기운일 수도 있고, 쌓였던 감정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평소 친구는 J를 꽤 존경했고 높이 평가했다.

친구는 j의 반응에 적잖이 놀란 거 같았다.


친구는 그날 밤, J로부터 절교 편지를 받았다.

이유는 적혀있지 않고, '잘 살아라' 란 취지의 내용이었다고 한다.

당황한 그가 나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두 번 만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신기한 건, J가 나한테 연락을 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왜 친구에게 절교편지를 보냈는지, j에게 이유를 물었다.

어떤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J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던 거 같다.

난 한 번도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다.

몇 해가 지나고, 공모의 계절이 다가왔다.

J는 이번에는 반드시 작품을 쓰겠다고 공표했다.

한 달쯤 지난 후 j는 나에게 작품을 보내왔다.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장난조의 말과 함께.

작품은 9급 공무원 생활을 하며 본인이 겪은 경험이 소재가 된 듯했다.

공무원들의 소소한 비리와 암투를 다룬 내용이었던 거 같다.

나름 기대를 했는데, 솔직히 재미없었다.

작품성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 작품은 공모에 당선되지 못했고, J는 크게 낙담했다.

그를 위로해 주고 싶어 술을 마셨다.

내정자가 있는 거 같다고 중얼거리는 소릴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그 후 그에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결혼, 출산, 해외취업, 진학까지.

어느새 중년이 된 그에게 삶의 풍파가 휘몰아쳤다.

마지막은 분식점 서빙을 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언젠가, 내가 그의 마음을 다치게 한 거 같다.

난 전혀 짐작이 가지 않지만.

나도 그에게서 절교 편지를 받았다.

휴대폰 문자의 내용은 간단했다.


'다시 연락하지 않을게'


정말 그 후 단 한 번도 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J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얼마 전 받은 그의 이메일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10명 가까운 사람에게 동시에 보낸, 단체메일이었다.

내용 역시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주식선물투자에 대한 광고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지만, 난 답장을 보낼 수가 없었다.

다만 J가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길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그날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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