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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도 Jun 12. 2022

난 왜 ‘그것들’을 모으고 있나.

나와 수집에 대한 고찰


스스로도 특정한 물건들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편이라 인정하는 바다.

어렸을 적 장난감과 문구에 대한 집착은 ‘수집’이라는 미명 하에 조금은 다른 형태로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무소유가 미덕이 되고 비워냄의 미학을 치켜세우는 미니멀리즘이 라이프 스타일의 대세로 떠오른 요즘, 수집으로 채워진 삶은 어쩌면 시대역행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연하듯 꾸준히 쌓여온 수집품들을 돌아보며, 그 물건들과의 관계 그리고 기억들을 하나씩 훑어볼 필요성을 느낀다. 이마저 없다면, 그 물건들은 실효성이라곤 없는 한낱 잡동사니뿐일 테니. 오랫동안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 ‘그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 필요를 느낀 셈이다.







유년기와의 연결고리

애정하는 영화 또는 애니메이션이 있다면 일단은 관련 피규어 상품부터 찾고 보는 편이다. 피규어와 장난감은 엄연히 다르다는 철학을 견지하고 있으나, 그 뿌리는 같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피규어에 대한 이 무한한 애정은 과연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어쩌면 한참 장난감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에 가지고 싶던 장난감을 또래 친구들만큼 갖지 못했던 한을 지금에서야 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못했던 당시, 부모님은 일 년에 딱 두 번, 그러니까 어린이날과 생일에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사주셨다. (거기다 생일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불과 4일 전인지라 늘 퉁쳐서 하나의 선물로 받곤 했는데, 그게 또 얼마나 억울했던지...) 두 번의 큰 연례행사를 위해 주말마다 나들이 가곤 했던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나는 선택과 집중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고, 그날이 당도하기 전까지 부디 장난감이 선반대 위를 떠나지 않길 하늘에 기도드렸다.


장난감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시절, 9살에 처음으로 접했던 스타워즈 장난감은 영화와 피규어 수집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가지고 놀기 위함이 아니라는 '피규어'란 오브젝트와 언젠가부터 '키덜트'로 명명되기 시작한 문화는, 머리가 커진 이후로도 레고 코너와 피규어샵을 기웃거릴 수 있는 정당성을 심어주었다. 그러면서도 한때는 스스로 성숙치 못한 관심사라 여겨, 남몰래 즐기는 은밀한 취미로 숨기곤 했다. 언제부턴가 점점 더 많은 공인들이 이러한 개인적 취미를 공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피규어 수집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감 표를 얻기 쉽지 않은 마이너 취미란 건 사실이다. 미우나 고우나, 난 대중문화 서브컬처 팬이다. 영화, 애니, 미디어 믹스에 대한 애정이 변치 않는 한, 이만큼 건강하고 즐거운 취미를 찾기란 힘들 것 또한 자명하다.









정리해나가는 작업

정리, 큐레이팅 하는 것은 수집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바야흐로 수요 할 수 있는 것들이 그야말로 넘쳐흐르는 세상이다. 그래서 제품을 선별하여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편집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고, 각자 잘 알고 좋아하는 분야에 관해선 누구나 전문 크리에이터들로 부상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컨텐츠 공급자에게도 선택은 중요한데, 하물며 정작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선택과 정리’가 의미하는 바가 어떨지 짐작할만하다.



(좌) 스타워즈 컬렉터들의 디피는 차원이 다르다 (출처: 페이스북 그룹  StarWars Collectors)/ (우) 좋아하는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수집하는 인스타 개인계정




컨텐츠의 홍수 사이에서, 엄선하고 엄선하여 기획해낸 ‘나만의 컬렉션’이기에,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진열하는 것 또한 어쩌면 필연적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집 안의 공간 내 ‘배열’ 또는 '장식'과 같은 인테리어 개념일 수도 있고, 이를 더 포괄적으로 ‘아카이빙’ 또는 ‘큐레이팅’이라 칭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단, 물리적인 공간 내 수집품들의 배열뿐만 아니라, SNS에 올리는 수집품들의 사진들, 그리고 이렇게 웹상에 올리는 글들 또한 어쩌면 수집품들에 관한 기억의 파편들을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이기에 큐레이팅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만하다.








손에 잡힐 수 있다는 것

점점 웹상 기반의 컨텐츠들만이 각광받고 있고,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의 일상화로 가상현실, 즉 메타버스의 시대는 체감될 만큼 코앞으로 다가왔다. 웹상의 아카이브에선 집안을 좀먹듯 차지하는 수집품들처럼 공간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웹 드라이브상에서 데이터는 거의 무한대로 저장되고, 친절하게 내 취향까지 분석하여 추천까지 뚝딱해주니, 수집의 자유 또한 무한대로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가상현실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것 이란 게 있다. 바로 손 뻗으면 바로 닿을 듯한 거리감이란 것. 으레 가치 있는 수집품일수록 보관 또는 전시함에 있어 최상의 상태를 위해, 그것들과의 물리적 접촉은 최대한 지양되는 편임에도, 만질 수 있는 유형(有形)의 물건들을 곁에 두었을 때만이 얻을 수 있는 ‘심미적 만족감’ 이란 것이 있다.




제 아무리 고화질이라도, 작품 앞에 직접 서 있을 때만큼 생생하게 그 질감을 느끼기란 힘들다.


미술작품을 수집한다는 건 무엇일까? 방구석에서 구글만 접속해도 고해상도로 작품을 구석구석 뜯어볼 수 있는 세상인데도, 여전히 작품이 있는 전시 또는 미술관에 직접 가는 것이 훨씬 더 선호되고 있다. 전시된 작품을 만지는 건 철저히 금기시됨과는 별개로, 눈앞에 실제 하고 있는 작품을 감상할 때만이 주는 만족감이 있기 때문일 테다. 캡션 또는 도슨트(해설가)를 통해 들은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곧바로 눈앞에서 작품의 형태로 물질화되는 듯하다. 전시장을 나와 관련 굿즈를 자연스럽게 짚게 되는 것은, 이렇게라도 작품에서 전해진 감동을 손에 쥐고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BTS를 비롯한 관련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고 있는 HYBE INSIGHT 팝업샵 (좌)/ 요시고 사진전 티켓팅만큼이나 쉽지 않았던 원하는 굿즈 얻기 (우)


비슷하게, 영화 캐릭터들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재현해 놓은 피규어들은 영화라는 ‘무형적’ 이야기를 ‘유형적’으로 소환해낸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원하는 음원을 무한히 들을 수 있는 지금에도, 열성적인 음악 팬들은 좋아하는 음반을 앨범 또는 LP로까지 수집한다. 나 또한 음악을 정말 좋아하기에 음반을 수집하는 것도 물론, 비슷한 연장선에서 ‘기타’ 연주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것은 공기에 떠다니는 음악을 손에 잡히는 단단한 기타넥과 기타줄로 구현해낼 수 있는 경험이자, 음악이 뿜어내는 음향을 촉각으로 구축하고자 했던 내 나름의 노력이었던 셈이다.


(좌) 도쿄의 카세트테이프만을 취급하는 샵, WALTZ (우)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마틴 기타, OM 18 Autehntic









가상현실에서 할 수 있는 수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라는 트렌드로 대변되는 이 시대에서 가상현실과 병행하는 수집만의 특별함이 있다. 종이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는 손맛에 비할 수 야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전자책 또한 굉장히 선호한다. 시작은 단순히 종이책을 둘 공간이 부족하여 찾게 된 e-book이었으나, 이젠 나만의 거대한 서재를 손안에 간편히 들고 다닌다는 만족감이 더 크다. 폰 또는 아이패드로 읽는다면, 메신저와 SNS 등 기타 어플 등으로 인해 절대 누리지 못했을 기분. 오직 독서만을 위한 책 읽기 전용 기계이기에 충족될 수 있는 부분이다.


e-book에 빠진 사람들은 절대 손에 놓을 수 가 없을 킨들 (좌)/ 피규어와는 별개의  또다른 수집 형태 (StarWars Galaxy of Heroes 캡쳐화면) (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용히 운영해오고 있는 SNS 계정은 ‘기억’과 ‘사유’의 아카이브 공간과도 같다. 좋은 영화와 책에 관해서라면, 그 생각들 또한 휘발되기 전에 묶어두고 싶은 마음에 글을 남기고, 그와 함께 이미지화하여 아카이빙하기엔 인스타만한 플랫폼도 없다. 필자는 평소 게임을 하진 않지만 (관심은 많다), EA 게임사에서 개발한 스타워즈 모바일 게임 ‘Galaxy of Heroes’가 폰 화면 내 늘 자리하고 있긴 하다. 스타워즈의 모든 캐릭터들을 피규어로 수집하기엔 그 수가 셀 수 없이 많아, 아쉬운 건 게임 내 캐릭터로 해소하고 있는 것… 게다가 피규어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거듭 말하는데 결코 있을 수 없다!)이지만, 게임 내 캐릭터들은 말 그대로 플레이하며 가지고 놀 수도 있다!













관계항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대세라고는 하나, 결국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을 수밖에 없고, 사물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물건들 사이 특정한 물건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가는 수집은 의미하는 바가 더 남다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충동적으로 사놓고 정작 어디에 두었는지도 잊어버리고 마는, 소비할 때 그 순간뿐인 그저 그런 물건들 중 하나가 아니라, 인간관계처럼 지속적으로 돌아보고 보듬을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처럼 말이다.



단지, 나와 수집품 간의 관계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수집품들은 나를 더 먼 곳까지 이어주는 특별한 중재자, 매개체이기도 하다. 마치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영매’마냥, 수집품은 그것의 보다 더 근원적인 존재와 나 사이에 가교를 놓아준다.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의 한정된 미술 작품들 중 하나를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작가와 보다 더욱 긴밀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떤 분야나 장르를 막론하고, 많은 팬들이 한정판 굿즈와 리미티드 에디션에 목숨을 거는 이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희소성 짙은 스타워즈 캐릭터 피규어들이 내 방안에 들어서게 될 때, 스크린 속의 거대한 신화는 이제 내 일상의 일부가 된다.


본인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피규어와 함께 사진을 찍은 실제 배우들 (존윅의 ‘키아누 리부스’, 스칼렛 요한슨의 ‘블랙위도우’, 톰홀랜드의 ‘스파이더맨’)






앞으로 이어질 글들은 그때그때마다 다른 수집의 단상으로 쓰일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에도 애정을 가지고 데리고 온 물건들이 하나둘씩 내 방 어느 한 공간을 자리하게 될 것이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 이전부터 오랫동안 자리해온 것들과 교감하는 것에 이 여정의 목표가 있는 만큼, 현재 진행형 수집에 초점을 두기에 앞서- 각 수집의 기원을 먼저 뜯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볼 참이다. 여느 격언 말마따나,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주의이다. 그럼에도,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수집은 현재의 ‘나’를 있게 하는 것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여정을 통해 그간 간과했던 ‘그것들’과의 관계, 더 나아가 미처 스스로도 발견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탐구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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