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작정하고 숨긴다면 숨길 수 있다. 세상 만천하에 드러나더라도 오른손이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게 왼손의 생각이라면 말 자체가 성립 될 수 있다. 오른손이 될 수 없다는 핑계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람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진짜 모를려면 모를 수 있다. 뒤집어진 세상으로 볼 수 없음을 인정하고 보고 싶다는 꿈조차 꾸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그 위치가 될 수 없잖아 어쩌면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등을 맞댄 채 영 영 궁금해 하지도, 가고 싶지도 않은 채로 그렇게 살아가 버린다.
집에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있는지 몰랐다. 예전부터 제목은 많이 들어본 책인데 보지는 못했다. 반성하게 될 것 같아서. 반성 하기가 싫다는 말은 아닌데 내가 차별주의자라는 걸 스스로에게 공표 하고 싶지 않았다. 겁쟁이였다. 겨우 작가의 말을 보고 그도 사람이구나 했지만 글애 담아 고백하는 작가를 좇기도 어려웠다. 주변에서 차별 찾기란 식은 죽 먹기다. 기타로 노래 연주를 하는 동생에게 기린이라는 이름으로 YouTube 하나 만들어보라고 권유하며 작명 센스 대박이지 않냐고 말하던 가까운 차별주의자를 비난 했다. 이미 구를 때로 굴러 닳을 곳은 닳아버린 양심은 심장을 찌르지도 못했다. 부끄러울 뿐이었다.
생각 나지 않는 게 더 무섭다. 질문도 이야기도 에피소드도 기억하지 못 한다는 게 선량 하지도 않을 차별에 절여진 사람이라는 게 명백한 것 같아서.
스위스에 갔다가 식당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 우리를 보고 미간에 확 찌뿌리던 언니를 감정껏 흘겨 보고 음식이 어떤 맛이었는지도 음미하지 못한 채로 가게를 나왔다. 맛과는 반비례 하게 생생한 얼굴 속 비슷한 상황에서의 내 얼굴은 안 보인다. 어디로 갔는지 없다. 미간을 펴지않았을까? 코를 벌렁 거렸을까? 입꼬리를 올렸을까? 아무것도 기억 나지 않는다. 책을 봐야겠다. 나를 떠올려 봐야겠다. 저 안에 동그란 걸 들어 봐야겠다.
벌써 두시고 나는 여섯시에 일어나야 하니 내일 봐야겠다.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