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근하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교수님 저 진짜 모르겠어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쉬지 않고 부유하는 생각의 조각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고 떠다니는 것들이 마치 방방 거리는 나인 듯 느껴져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물을 가득 받은 컵에 색종이 조각들을 넣고 컵 아래 부분을 잡았다 놓으면 어떻게 되는가? 제각기의 속도를 알 수 없게 모든 것이 움직인다. 어디로 갈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여러 갈래길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사람처럼 가만히도 아니면서 멈춰서 있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달려오는 차를 바라보면 나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그저 멈춰있다고만 생각하게 되는데, 부지런히 발을 옮기고 있을지언정 메타인지하는 내 시선 속엔 정적으로만 보인다. 기대치가 높아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는 생각도 한다. 욕심이 많아서 이것도 저것도 이 정도까지도 저 정도까지도 욕심껏 해내고 싶어 하는 나를 안다. 앞으로 걸어가는 진전만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명확해지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주제도, 자꾸만 던지는 질문들도, 답하기 위해 공부하는 나도.
모 아니면 도처럼 할 때는 너무 팍 잘 지키려고 하면서 놓을 때는 한없이 놓아버린다. 운동을 가지 않을 때 오히려 먹고 싶은 걸 참아야 하는 이유는 명백한데도 운동도 안 가니까 먹고 싶은 것도 먹어버리자 해 버린다. 살이 찔 때 같이 확 쪄버리자 극단으로 간다. 다시 운동도 하고 채소도 먹으면서 살이 빠지자 하는 시기도 있다. 중도를 소망하고 모순을 경계하지만 인정하면서도 말로만 글로만 내 감정을 떠들 뿐 실천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극단이 한계치를 확 넘어가 선을 없애버리지는 않지만 삐- 삐- 나에게 내가 주는 경고음이 자꾸만 들린다. 이 또한 내가 가진 기준이라는 게 높아서 그런가. 이러면서도 모호한 선을 그리고 옅은 기준을 갈망하는 나다.
부러운 사람이 생겼다. 차분한 사람. 뚜렷한 색깔에 지금 당장 여기서 결정 내리는 왁자지껄한 내 모습을 좋아했고 좋아하는데 고요하게 가라앉은 생각들을 하나씩 직접 손으로 만지며 정리하는 사람이 부러워졌다. 조용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가 가진 분위기 속에, 그 의식 속에, 그 신체 속에 내가 포함되어 보고 싶다. 가끔은 정적인 나의 시간이 찾아오는데 평소에는 영 그렇지 않다. 어떤 이슈로 터치 한 번, 일정을 보고 꾹꾹 두 번 바람 잘 날이 없다. 당장 잡혀있는 건 하지만 앞으로 비어있는 시간들에 좋아하는 약속을 멈추고서라도 토닥토닥 나를 잠재워 보아야겠다고 공표한다. 이어지는 경로의 윤곽선을 그리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할게, 해야 하는 게 뭔지 나에게 물어본다. 그래서 뭐냐고. 아니 질문이 지금의 나 같아 다시 수정한다. 관심 가지는 게 있으시냐고. 대답할 것이다. 명상도 하고 숨을 뱉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