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
설 앞둔 시장에는 그 시절 사람들이 많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에 인사하기가 바쁘다. 이 나이를 먹고 나니 단골로 듣는 말이 있다. “시집 가야지, 시집 안가나~?” 악의가 없지만 편안한 마음을 주지는 못하는 말이다. 가끔 엄마가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고 “니는 언제 갈거고” 할 때 빼고는 진짜 제일 많이 들었다. 들을 때면 눈이 휘어지게 웃는다. “헤헤” 하고 나면 다음 주제로 넘어가 있다. 중간에 엄마가 “아직 남자친구도 없다” 하고 감사한 인터셉을 해주신다. 헤헤, 맞다 아직 없어서 못간다. 있으면 갈거라고 속으로 만방에 알린 나는 볼거리 많은 시장에 집중한다. 재미난 시장 구경이다.
아직 부케를 받은 적이 없다. 받고 나면 제한된 기간 내에 시집을 가야하는데 못가면 그 기간이 늘어난다는 말 때문이다. 덕분에 남자친구가 꽤나 오랫동안 없었던 나는 가까운 지인이 한 두 명씩 갈 때 제안조차 받지 못했다. 그런 나도 언젠가 받을 날을 그려본다. 좋은 사람이 생기면 갈거고 그럼 “에잇 미신은 미신” 이라며 그동안 받지 않은 과거를 비웃겠지. 지금은 진짜 아무것도 없어서 가만히 있는다. 그냥 웃는다. 빙긋. 부케에 있는 얌전한 꽃처럼.
우리 동생이 먼저 갈 상황이다. 3월에 상견례가 잡혀 있다. 집안에 새로운 행사가 생겨버렸다. 어떤 날이 될지 아직 그리지도 못하는. 나는 동생이 먼저 가던 말던 내가 사회도 보고 축사도 하겠다 찡찡 거리는 누나다. 결혼식이 너무 재미날 것 같다. 내 것도 아니지만.
나는 로망이 있다. 사람에게가 아닌 결혼식에 대한 로망! 로망보다는 나 혼자 세운 계획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운동회 결혼식. 남들 다 하는 예식장에서 인사하고 노래 듣고 이야기 듣고 사진 찍고 밥 먹는 결혼식 말고 뮤지컬 한 판 하고! 결혼한다는 서약 한 판 하면서 만방에 알리고! 내 지인, 너 지인 다 끌어모아 한바탕 뒤집어지게 노는 운동회를 열고 싶다. 나는 당연 사회자로. 초반에 친해질 수 있게 레크리에이션 크게 하면서 떠들고 팀 나눈 운동회로 재미를 고취시키는거다. 마지막은 박 터뜨리기 해서 ‘최미진 결혼 축하’ 이런거 지익 내려오고. 어떤 일보다 신나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걱정은 손님들이 싫어할까 걱정. 다같이 즐겨야지만 재미있을텐데. 아직 아무것도 없이 미니 바이킹도 부르고 싶은 운동회 결혼식만 끝없이 그린다. 색칠까지 한 내 옆자리만 비워있다. 결혼. 혼자 하는게 아니잖아. 정신 차리겠다.
작년에 좀 뜸하더니 올해 또 몰아친다. 결혼식. 모두를 축하하며 아직 모르는 저 먼 그곳을 바라본다. 내 이야기가 되면 확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보기만 할 때는 이러고 저러고 입 대다가 직접 쓰려니 눈물만 나오는 논문처럼. 그래도 가보련다. 첫 번째 할 일! 만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