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일은 잘해서가 아니라, 일단 시작했기 때문에 흘러간다
초등학교 때였다. 아침부터 몸이 찌뿌드드했다. 살짝 감기 기운도 있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오늘은 못 가겠다고, 조금은 엄살을 섞어 말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쉬라는 말 대신 이렇게 말했다. “일단 가보고, 너무 힘들면 조퇴해.”
그 말이 조금 야속했지만 결국 학교에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상 교실에 앉으니 하루가 또 흘러갔다. 그날 아침에 느꼈던 찌뿌둥함과 감기 기운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되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돌아보면 나는 그날 꽤 중요한 사실을 일찍 배운 셈이다. 많은 일은 하기 전이 가장 버겁고, 일단 발을 들이면 생각보다 견딜 만하다는 것.
회사도 그렇다. 아침에는 에너지가 바닥난 것 같고, 하루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사무실의 책상에 앉으면 메일을 열고, 보고를 정리하고, 그날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처리하게 된다.
운동은 더 그렇다. 운동이 힘든 것이 아니라 현관문을 나서는 일이 어렵다. 신발을 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가는 그 짧은 과정이 제일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일단 밖으로 나가면 적어도 20분쯤은 걷거나 뛰고 돌아오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마음을 과제 혐오(Task Aversiveness)라고 설명한다. 하기 싫고 귀찮게 느껴지는 일일수록 마음은 자꾸 뒤로 물러난다. 여기에 미루기(Procrastination)가 붙는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피어스 스틸(Piers Steel)은 미루기를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는 자기조절의 문제에 더 가깝다고 봤다. 일이 버거워서 미루는 것이 아니라, 버겁게 느껴지는 감정이 싫어서 미루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생긴다. 우리를 움직이지 않게 붙잡는 것은 대개 일 자체보다 그 일을 시작하기 직전의 감정이다. 막상 학교에 가면 또 하루를 보내고, 회사에 가면 또 일을 하고, 운동을 시작하면 몸은 조금씩 리듬을 찾는다. 이 지점을 설명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개념이 행동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다. 원래는 우울 치료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접근이지만, 핵심은 일상에도 그대로 통한다. 기분이 좋아져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몸을 움직이면 기분과 동기가 뒤따라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하기 싫다”는 감정은 움직이지 않을수록 더 깊어진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감정은 그날 전체의 진실이 아니라, 문턱 앞에서 잠시 커지는 저항에 가깝다. 운동 자체가 버거운 것이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첫 장면이 부담스러운 것이고, 학교가 힘든 것이 아니라 교문 앞까지 가는 시간이 막막한 것이며, 일이 싫다기보다 책상 앞에 앉기 전의 무게가 크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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