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풍경3

by 양산호

그 후 나는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민정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도 편지를 쓴 적은 없었다. 펜을 잡자마자 힘들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민정에게 토해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자친구를 만나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다. 일부러 교회를 다니기도 하고 모임에 나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난 좋아하는 여자들에게서 만족할 만한 시선을 받지 못했다. 난 여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그것들을 받으려고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난 서서히 성인이 되려는 문턱에 와 있는 것을 느꼈고 혼자서 고통이나 슬픔을 혼자서 참고 견디려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이것은 물론 민정과는 다른 방식이었을 것이다. 민정은 그룹의 친구들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성인의 문턱을 넘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학교를 졸업하자 나는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가정 형편 때문에 진학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난 반건달 행세를 했다. 주위 사람들의 눈총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집안일을 거들지도 않았고 책을 읽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믿고 있었던 희망이나 개선 같은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때 누군가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럴 때 난 이렇게 대답했다. 분명히 기억이 난다. 시간은 아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아요, 라고. 그 때 내가 뭘 알고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해 여름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민정이 나를 찾아왔다. 명문대학 전자계산학과에 다니는 친구와 함께였다.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 때 나는 두 사람이 대학에도 가지 못한 내 처지를 동정해서 찾아왔다고 생각해서 약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속으로 나를 약 올리려고 찾아왔던 이거지,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었다.

그날 밤 우리는 학교 운동장에 앉아 막걸리를 마셨다. 그 텁텁한 술을 처음 마셨을 때는 얼굴이 화끈거려 몇 차례나 세수를 했는데 그때쯤은 익숙해서 몇 병을 마셔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내게도 술주정뱅이인 아버지의 기질이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너도 아버지처럼 술주정뱅이가 되려고 그래, 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술을 마시면서부터 아버지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도 아버지처럼 무능하고 게으른 남자였기 때문이다.

하여튼 우리 셋은 운동장 한가운데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지나치게 큰 학교의 운동장으로 인해 자신의 목청에 놀라며 노래를 불렀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민정이 술 마시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것을 보았을 때 기분이 묘했다. 자, 한 잔 따라줘 봐. 민정의 말에 나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술을 따랐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함께 온 친구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부른 노래는 얼핏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사회비판이나 풍자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언뜻 정신이 들어보니 나는 울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끌어안고 있었다. 민정인가 싶었는데 민정은 아니었다. 민정이 데리고 온 친구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나는 민정이 보낸 몇 권의 소책자와 대학신문을 받았다. 소책자는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고발이 쓰여 있었고 대학신문에 게재된 것은 주로 학생운동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들이 한순간 내 몸을 달아오르게 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사회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때까지 내 문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난 군인이 되기 위해 훈련소에 입대했고 교관들이 시키는 대로 엎드려뻗쳐, 를 하거나 인명을 손쉽게 살상하기 위한 총검술을 배우고 있었다. 그 일이 취미에 맞지는 않았지만 난 그런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격한 운동을 하고 나면 가슴속을 꽉꽉 누르고 있던 것들이 모조리 용해되어 공중으로 날아갈 때처럼 상쾌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내가 군대 체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자대 배치를 받자마자 나는 곳곳에서 고문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눈치가 빠르고 동작이 빠를 수 있을까, 그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생각을 했었다.

전투경찰로 배치되어 서울 시가지로 진입한 것은 그해 겨울이었다. 난 학생이나 시민들이 벌이는 데모를 방어하기 위해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후 닭장차를 타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시민들이나 학생들이 외치는 구호를 들었고 전단지를 보았다. 내게 사회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은 아마 그때부터일 것이다. 데모를 막기 위한 현장에 설 때마다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또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살지 않는 사람들이란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민정을 거의 잊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방황하며 허송세월할 때는 인간이란 결국 혼자서 고통을 견딜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군대에 와서는 특수한 상황에서 생겨난 긴박감 때문에 미래나 과거 어느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민정도 운동장의 사건 이후 신문과 책자를 한 번 보낸 이후로는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어느 대학 경영학부에 다니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어떤 써클에 들고 어떤 사람들과 만나는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시간이 만들어 낸 어두움이 차츰 서로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중대 행정반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 민정의 소식을 들었고 얼마 있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내일 면회를 오겠다는 것이다.

정말 네가 투사가 되었니, 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것을 중대 행정반 안에서 물을 수는 없었다. 다들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전화를 받고 난 후 잠시도 쉬지 않고 민정에 대한 생각을 했다. 전화선을 통해 들은 민정의 목소리는 약간 달라진 듯했다. 몇 년 서울에 사는 동안 촌스러운 억양은 평평하고 사근사근한 것으로 바뀌고 약간 근엄해진 듯했다. 어떤 옷을 입고 나타날까. 거리에서 본 서울 사람들처럼 세련된 복장일까, 넥타이까지 매고. 아니면 그전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 말쑥하고 단정한 옷차림일까. 그다음 근무자와 교대를 한 후에도 민정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 날 오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민정이 오기 전에 미리 제복을 빳빳하게 다리고 군화도 광이 나게 닦아 놓았다. 위병들로부터 전화만 오면 바로 신고를 하고 뛰어나갈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난 민정이 전투경찰 복장을 한 모습을 보고 경멸하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상대가 민정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누가 면회를 와도 마찬가지였다. 전투경찰은 비록 군인의 신분이기는 했지만 군사정부와 함께 지탄을 받는 처지여서 외박 날도 감히 제복을 입고 부대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지나가던 행인들의 눈은 모조리 전경에게 쏠리고, 지나치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더 심하면 멀리서 돌을 던질 수도 있었다. 우리는 조국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입대했지만 누구에게도 떳떳이 드러낼 수 없는 처지였다.

면회실 위병의 전화를 받은 것은 오후 1시경이었다.

나는 5분 대기병처럼 서둘러 상관과 고참에게 면회 신고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늑골이 오르락내리락 해서 빨리 숨이 찼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간신히 계단을 내려와 면회실 앞에 섰을 때 창을 통해서 단정하게 앉아있는 민정의 모습이 보였다. 탁자 위에 검은 장갑이 올려져 있고 옆에는 작은 손가방을 놓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한 뒤 면회실 문을 열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구레나룻을 기른 민정은 한눈에 반할 정도로 미남자가 되어 있었다.

“어머, 길수야!”

이 말투에 나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민정은 예전과 조금도 달라진 데가 없었다. 코밑에 검은 콧수염이 나고 키가 늘씬했지만 세월은 민정을 변모시키지 않았다. 나는 친구를 다시 찾은 기쁨에 민정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말 반가워, 민정아.”

나와 민정은 한참 손을 잡고 서 있다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리에 앉았다.

“네 이야기는 들었어.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다는 것 말이야.”

민정도 그 소식을 들었던가. 벌써 1년 전의 얘긴데. 나는 쑥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투사가 된 너에 비하면. 나는 내가 살아있는지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대본 것뿐이야. 나는 민정이 용감하게 구호를 외치고 나로서는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달아나는 모습을 떠올렸다.

커피를 마신 후 민정은 수포제를 맞은 후 고생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물집이 생겨 처음에는 좁쌀만 하던 것이 계란 크기로 부풀어 올라 수없이 병원을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나도 수포제(水泡劑)나 줄 끊어진 연처럼 허공을 날아가다 땅에 곤두박질치는 지랄탄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약간 호흡이 곤란함을 느꼈을 뿐 몸에 이상을 일으킨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민정이 내민 흉터가 있는 팔을 만지려고 했지만 민정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얘는 참.”

얼마 후 나와 민정은 매점을 나와 서울역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낮에 본 서울역은 밤에 본 풍경과 달랐다. 건물은 우중충하고, 칙칙해 보였고 온갖 병균이 자라는 온상 같았다. 서울역 주위에 유달리 기생하는 자들이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다.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낚아채려는 자들이었다. 물정에 어두운 시골 처녀를 꾀어 술집으로 팔아넘기는 깡패들도 있었고, 슬며시 행인을 밀치며 안주머니에 든 지갑을 빼 내가는 소매치기도 있었다.

오랜만에 민정과 같이 걷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간 관련도 없는 길을 걸어왔지만 순간적으로 한 점에서 일치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경찰서 앞을 지나자, 민정이 가죽장갑을 벗더니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여자들이 곧잘 하는 것처럼 손을 잡고 같이 걸었다. 손을 통해 느껴지는 체온을 통해 나는 민정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다시 친구를 찾았다는 뿌듯한 기분은 외박 날 민정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극에 달했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술을 마시고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할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민정은 소로우의 말을 인용하여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잡아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감옥이다, 라고 말했다. 이 말에 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역시 우리는 닮은 데가 있어.

민정의 말은 계속 나를 흥분시켰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혁명을 할 권리가 있다.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심하여 견딜 수 없을 때는 거기에 충성하기를 거부하고 저항해야 한다……. ’

난생 그렇게 가슴을 파고드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다지 많은 금서를 읽지 않았고 단지 피상적으로 이 정부는 옳지 못한 일을 하고, 국민들이 일어서야 한다고만 생각했을 뿐 학생들이 하는 것처럼 체계적인 사상 무장을 할 수는 없었다.

그 외에도 민정은 학생지도부의 분열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았는데 내가 동의하지 못할 대목은 없었다. 그들은 본질을 망각하고 있었다. 말을 끝낸 후 민정은 술에 취했지만 그다지 비틀거리는 기색도 없이 책상 서랍을 열더니 몇 장의 종이를 꺼내 가지고 왔다.

“자, 이걸 보겠니?”

나는 민정이 내민 것을 무심코 받아 들었다. 그것은 현 정부에 대해 벌이는 학생운동의 방향이 인쇄된 것이었다. 나는 어슴푸레 열린 눈으로 그것을 보다가 민중을 깨우치기 위한 노력, 이라는 부분에서 잠시 멈추었다. 사실 독재자의 시대가 좋은 시대인 양 착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었고 진실을 알고 행동하려는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래서 투표함을 개봉해 보면 재벌이나 군부와 결탁한 자들, 독재 정부에 아부하여 벼슬이나 해보려는 작자들이 늘 당선 사례를 써 붙이곤 했다.

그것은 본 다음 나는 가장 밑에 있었던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그것은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흑백사진이었다. 그들은 대개 구호를 외친 후 자기 몸에 시너를 붓고 스스로 불태워 죽였다. 사진 속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옷도 대부분 불에 타 있었다. 그때 민정이 죽은 남자는 바로 우리 학교 학생이야, 라고 말해 주었다.

그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른다. 나는 가슴속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꼈고 불에 타서 처참하게 죽은 학생과 자리를 바꾸어 누워 있었다. 그런 뒤 내 부모님과 형제들, 민정이 날 위해 구슬프게 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언뜻 정신이 들어 민정의 눈을 보았는데 젖은 속에 서릿발 같은 냉랭함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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