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1

by 양산호

누군가 몸을 흔들고 있다는 느낌에 눈을 떴다. 형광등 불빛이 눈에 부셨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사람들이 부산히 움직이는 소리.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 뒤이어 P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수경 님, 출동입니다.”

눈을 뜨고 시계를 보았다. 둥근 원판 위에 놓인 두 개의 바늘이 자신의 움직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숨을 죽인 채 오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제 잠들기 전 소대 무전이 한 말이 떠올랐다. 새벽이 출동이 있을지 모릅니다―.

잠시 후 31중대 버스는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대원들은 좌석에 부딪히거나 넘어지며 방석복을 입기 시작했다. 이윽고 버스가 D중공업 정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했다.

“하차! 하차!!”

버스에서 내린 대원들의 복장은 완벽했다. 다리에 각반을 차고 허리에 혁대에 경찰봉을 꽂고 있었다. 나는 방패조를 따라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나, 둘! 하나 둘!”

곧이어 중공업 정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켤 수 있는 모든 불이 켜지고 노동자의 횃불까지 가세한 그곳은 화재가 나거나 잔치를 벌이는 부잣집 같았다. 노동자와 전경을 가로막고 있는 철골 바리케이드만 없다면 정말 그랬다.

내가 속한 중대는 맨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대열을 정비하기 무섭게 작전이 개시되었다. 중장비 한 대가 나타나 철골 바리케이드를 걷어내기 시작했고 가스차와 사수들은 이를 방해하려는 노동자들을 향해 가스탄을 쏘아댔다. 입김 때문에 내가 쓴 방독면의 유리가 뿌옇게 흐려졌다. 그러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현실이 아니라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때 얼핏 옆에 있는 P의 눈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상황에 투입되었던 최초의 얼마간, 나도 그랬다. 대치하고 있는 학생들의 붉은 머리띠만 보아도 몸이 부들부들 떨렸었다.

노동자들은 의외로 쉽게 물러나고 있었다. 작전을 개시한 지 채 오 분도 되지 않아 전경들은 정문을 돌파했다. 노동자들은 중공업 안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을 쫓아가면서 나는 노동자들이 쓰던 천막에 불이 붙은 것을 발견했다. 누가 지른 것일까. 노동자들일까. 아니면 가스탄에 맞은 것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지만 누구에게 물을 상황은 아니었다.

넓은 도로를 따라 도망치던 노동자들은 세 갈래 길이 나타나자,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제각기 흩어졌다.

“19중대 왼쪽, 20중대 가운데, 31중대 오른쪽!”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내가 속한 31중대는 오른쪽으로 달아나는 노동자들의 뒤를 쫓았다. 사복 전경들이 앞서서 먼저 달려가고 뒤를 이어 봉을 빼 든 전경들이 따랐다. 철골 구조물이 노변에 쌓인 도로가 나타났다. 바다를 등지고 있던 노동자들로부터 무엇인가 휙휙 날아오기 시작했다.

“윽, 큭!”

전경들은 비명을 지르며 철골 구조물 뒤로 몸을 숨겼다. 그것은 돌이 아니었다. 작업장에서 사용하던 나사들로 방패를 뚫고 방석복에 파고들었다. 31중대의 추격은 일단 중단되었다. 세 개의 나사 뭉치를 맞은 나도 철 구조물 뒤로 숨었다. 복부나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상처가 생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구조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중대 문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구조물 밖으로 나온 대원들은 노동자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뒤는 바다였다.

“잡아라!”

노동자들은 양쪽 부두를 따라 달렸다. 31중대는 둘로 나누어졌고 나는 남쪽으로 가는 대열에 섞여들었다.

이윽고 31중대가 노동자들과 대치하게 된 곳은 골리앗이라고 불리는 크레인 앞이었다. 처음 본 골리앗은 거대하지만 약간 바보 같은 느낌을 주었다. 크레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노동자들은 이미 크레인의 머리에 가 있었다. 대원들은 닭 쫓던 개처럼 멍청한 얼굴로 까마득한 위에서 오가는 노동자들을 보고 있었다.

“야, 이놈들아. 따라와 봐, 독재자의 개들아!”

노동자들의 야유를 견디다 못한 대원 몇 명이 골리앗의 기둥에 달린 사다리로 달려갔다. 그러나 골리앗이 개처럼 후두두 몸을 한 번 털자, 대원들은 어이쿠, 하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순간 나는 골리앗에 대한 내 생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다윗의 돌팔매에 나가떨어졌던 거인이 아니었다.

“야!!!”

화가 난 사수들이 골리앗의 머리를 향해 가스총을 발사했다. 검은 원통형의 가스탄들이 허공을 날아오르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100여 미터 앞에 떨어지거나 사수의 얼굴을 향해 다시 떨어졌다. 그 때문에 대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흩어졌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검은 꽃잎 같은 것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서서히 내려오는 것처럼, 그래서 아무런 위력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대피, 대피!!”

대원 중 누군가가 고함을 질러댔지만 너무 늦어 있었다. 꽃잎이 아닌 쇳덩어리는 대원들의 몸에 닿자마자, 대원들의 방석모를 깨고 두개골을 부숴 버렸다. 또 어깨나 등을 뭉개버렸다. 내 머리에 앉은 것은 그중 작은 것이었지만 내 왼쪽 두개골도 무너졌다. 순간 얼굴 위로 피가 흘러내렸고 숨이 가빠졌다. 나는 의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몽롱한 상태에서 이상한 동물들을 보았다.

H 성당으로 가는 길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대원들과 함께 성당 근처를 순찰한 적도 있었고 며칠씩 부근의 공터에서 죽치고 있기도 했다. 나는 충무로역에서 내렸다. 출구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우산을 든 행인이 지나갔다.

“비가 오는구나! 하긴 장마철이니까.”

나는 지하철 입구에 서서 지상으로 내려서기 전에 잠시 뜸을 들였다. 막상 빗속으로 들어가려니 망설여졌다. 그러다 어린아이가 우산도 없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결정을 내렸다. 나는 남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가늘었지만 냉기를 품고 있어서 살갗에 닿은 지 몇 초 후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오 백여 미터를 걷자, 골목이 나타났다. 길을 따라 늘어져 있는 작은 가게들과 주택을 지나자 다시 큰 길이 나왔고, 오른쪽으로 돌자 가톨릭회관이 보였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빗줄기가 거세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가톨릭회관의 젊은 수녀에게 시국에 대해 상담을 할 수 있는 신부를 소개해달라고 말했을 때는 이미 비에 젖은 머리칼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수녀의 말대로 검거나 붉은 색이 두드러지는 중세식 돔 형태의 건물을 보면서 약간 경사진 길을 걸어 올라갔다. 빗줄기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하얀 대리석을 때리고 검은 구두와 바짓가랑이를 적셨다. 나는 차츰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고 이가 덕덕 소리를 내며 부딪치는 것을 알았다. 내가 과연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이라도 돌아가려면 얼마든지 돌아갈 수도 있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기세가 꺾인 나는 참담한 기분이 되어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누구를 위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난 화가 나서 놈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경사가 완만해지는 지점에 이르자, 대 미사장으로 보이는 중세건물을 배경으로 보도의 오른쪽에 서 있는 하얀 색 작은 건물이 나타났다. 수녀가 말한 건물이 틀림없었다. 가까이 가자, 건물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성당을 대표하는 그것과 달리 흰 타일이 외벽에 붙여져 조금도 칙칙함을 풍기지 않는 현대식 3층 건물이었다. 나는 현관에서 몇 명의 여자들을 만났지만 곧바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신부는 수녀의 말대로 여신도 무리를 상대로 강의 중이었다. 열린 문틈으로 강의실을 엿본 후 신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북쪽을 향해 나 있는 창으로 걸어갔다. 창문을 통해 드러나는 빗줄기는 더 이상 강해지지도 않았고 약해지지도 않았다. 방금 전 내가 통과해온 그 힘과 세기로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내가 머리의 물기를 털고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한 마리 잿빛 비둘기가 앞을 통과해서 사람들이 나무에 매달아 놓은 하늘색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후 한참 동안 비둘기는 입구를 향해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지쳐서 포기하려고 했을 때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내민 비둘기는 내가 있는 쪽을 흘낏 보았고 놀란 표정으로 다시 쏙 들어가 버렸다.

여신도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신부에게 접근했다. 삼십 대 중반의 젊은 신부는 곱슬머리에 은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신부는 내게 몇 마디를 들은 후 심상치 않다고 여겨서인지 잠깐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1층 유리문을 나서기 전에 신부는 잠시만요, 라고 말하며 공중전화기를 가리켰다. 나는 그에게 내 모든 것을 맡긴 것은 아니었다. 도움을 주든 어쩌든 그것은 그의 자유였다. 나는 단지 내가 가고자 하는 길만을 갈 뿐이었다. 나는 유리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 층 창가에 서 있을 때만 해도 내리던 비는 이미 그쳤고 바닥에 고인 물은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무척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셨군요. 지금 많이 떨리시죠?”

잠시 후 신부가 돌아왔다. 나는 신부의 위로를 받는 순간 다리의 힘이 쫙 빠지는 것을 느꼈지만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대답했다.

“예, 약간.”

“제가 그런 일을 잘 아는 분께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저를 찾아오십시오.”

신부의 태도는 할 수 있는 한 정중했고 어떻게든 나를 돕겠다는 뜻이 역력했다. 보도를 걷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나도 가슴이 무거워져 입을 열 수 없었다. 이백여 미터를 걷자 왼편으로 울창한 나무들이 나타났다. 몇십 년 아니 몇백 년은 됨직한 호두나무와 삼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 이런 숲이 있다니, 하고 놀라면서도 나는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신부는 오솔길을 걸어가는 동안 말이 없더니 역시 하얀 건물 2층의 한 방에 이르자,

“바로 이곳입니다.”

라고 말했다. 서재로 보이는 그 방의 주인은 작달막하고 검은 머리 속에 새치가 엿보이는 40대 후반의 남자로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왔다.

“바로 이 사람입니다.”

젊은 신부의 소개에 주인은 내 손을 잡았다.

“자, 일단 자리에 앉아서 자네의 말을 들어보세.”

주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목소리가 약간 쉬어서 거칠게 들렸다. 내가 소파에 앉자, 젊은 신부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가슴에 있는 말을 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미리 써 둔 편지를 잠바의 안주머니에서 꺼내 주인에게 내밀었다. 이 분의 입에서 무슨 말이 흘러나올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느 곳에 있게 될까. 부대로 돌아가게 될까, 아니면 새로운 곳으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신부는 읽던 편지를 내려놓고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눈을 치켜떴다. 좀 더 과격한 언어를 쓸 걸 그랬나. 신부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가 어려운 결심을 했다는 것은 알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시기가 적절치 않군. 지금이 6. 10 때나 6. 29 라면 문제는 좀 달라졌겠지만 몇 번을 생각해도 지금은 아니야. 자네 일생에나 우리 성당에나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걸세. 자네는 아무래도 돌아가는 것이 낫겠어.”

나는 고개를 푹 숙여서 먼지 하나 없는 바닥을 보았다. 시기라는 것, 그런 것은 그나마 좋았다. 내가 이 순간을 위해 학수고대하며 힘들게 살았다는 것, 그것도 그냥 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거역할 수 없도록 하는 어조라니… 내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독재자를 용서할 수 없는 내 양심을 드러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기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 적도 없고 이 거사가 성공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 난 잘못 생각한 거야. 이런 늙은 신부를 믿는 게 아니었어. 인간이란 다들 그런 거야. 신부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어. 그 사이 주인은 책꽂이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무슨 일을 하려는지 지켜보는 내 앞에서 주인은 서명하고 이렇게 썼다.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정말 주인 놈은 으스대고 있었다. 이 자의 면상을 어떻게 후려치고 달아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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