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2

by 양산호

잠시 후 나는 숲을 빠져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을 정리하려 했지만 혼란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난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내가 구타를 피하려고 이 길을 택했다고 가정해도 그랬다. 걸어가는 동안 바닥에 고인 빗물이 텀벙거리며 내 생각을 방해했다. 몇십 킬로미터를 걷고 수십 개의 전철역을 지나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거절이라니!’

나는 비참한 기분이 되었고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하고 길거리에 앉은 거지에게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기랄 될 대로 되라. 나는 원래 생각대로 밀고 나갈 거니까.

그때 전화기 모습이 둥실 떠올랐다. 그래, 신문사로 전화를 해보는 거야. 나는 허탕 칠 셈하고 도로변 공중전화에 동전을 집어넣었다.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내 입은 내가 막 양심선언을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쉽게 말하지 못했다. 그것을 발설하는 것에 곤혹감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저는 전경입니다. 양심선언을 하고 싶습니다.”

“사회부로 전화를 돌리겠습니다.”

양심선언을 전담하는 곳이 따로 있단 말인가. 불평이 생겼지만 하는 수 없었다. 다시 사회부 기자에게 저는 전경입니다, 양심선언을 하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다. 왜 내가 내 양심을 이렇게 힘들게 말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들은 잘들 지내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건 아니다. 난 다른 사람처럼 살 수 없어!

거절을 당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사회부 기자는 당장 나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는 신문사로 찾아오는 길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전철역으로 달려갔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S 신문사는 규모가 작고 직원들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신문사를 들어가려 했을 때 수위가 나를 제지했고 나는 또다시 양심선언을 하러 왔다고 말해야 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난 나는 당장 거리로 나가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사회부 팻말이 곧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금 전에 통화했던 기자를 찾았다. 동양인답지 않게 코가 큰 기자는 동료 기자들과 함께 나를 환영해 주었다.

“어서, 와요! 저는 박영술입니다.”

박 기자는 동양인답지 않게 코가 컸고 목소리가 굵었다. 그는 동료 기자들에게 나를 소개했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추어주었다. 순간 우쭐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은 난생처음이었다. 나는 모처럼 인생의 의미 있는 한 발을 내디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기자는 다음 날 조간신문에 내보낼 거라며 내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양심선언을 결심한 이유를 말해줄 수 있습니까?”

“음, 저는.”

나는 독재자를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하려다 약간 개인적인 감정인 것 같아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증오에서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서울 시민들은 종종 악을 쓰며 전경들에게 너희도 이제는 양심선언 할 때가 되었다고 약간은 무책임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녀석들의 심장이 아닌 내 심장을 친 것이다. 그게 어느 모로 보나 옳은 일이기는 했지만.

진술이 끝난 후 박 기자는 사진기자를 불렀다. 그런 후 내게 소속과 이름, 양심선언 의사를 물었고, 사진기자는 내 입 모양을 찍었다. 그것이 끝나자, 박 기자는 내가 머물 곳을 알려주었다.

“아마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 일찍 야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게 될 것이네. 우리도 그것과 때를 맞추어 일을 추진하겠네.”

박 기자가 잡아 준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앞으로 벌어질 일도 일이었지만 기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자, 우리의 후손들을 위하여!”

누구를 위한다는 말, 이 말처럼 숭고함의 파문을 일으키는 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나는 몇 번이나 이 말을 떠올리며 감탄했다.

당사 인권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작업복을 입은 남자들이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농성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 안도 마찬가지였다. 소외되고 어디에도 호소할 길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곳을 메우고 있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징징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 중에는 분명 독재자에게 표를 찍었던 인간도 있을 터였다. 징징거리는 대신 독재자를 때려 부수면 될 터인데 정말 한심한 노릇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사람들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부국장이라는 명패를 앞에 둔 남자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부국장의 말투는 약간 어눌했고 인상은 수더분해 보였다. 나는 부국장이 묻는 대로 소속, 이름, 오게 된 동기, 그리고 부국장의 요구에 따라 ― 내 생각에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었지만 ― 부대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합이나 구타에 대해서도 말했다. 하지만 신부를 만났다거나 사회부 기자를 만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신부에 대해서는 내가 숨겼고 신문사는 기자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조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부국장은 열심히 적었고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몇 가지를 더 물었다. 그것이 끝나자, 부국장은 그를 사무실 안에 있는 작은 사무실 안으로 데리고 갔다. 사무실에는 책상이 하나, 소파가 하나 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는 것이니까 여기서 좀 기다리게, 라고 말한 후 부국장은 밖으로 나갔다.

얼마 후였다. 부국장이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을 한 사람 데리고 나타났다. 그가 바로 국장이었다. 국장은 내가 조금 전에 했던 말들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나는 녹음기처럼 했던 말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난 인간이란 말이야, 라고 중간에 외치고 싶은 것을 몇 번이나 참았다. 그 과정이 끝나자, 국장은 밖으로 나가서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이 순간부터 일체 이 일에 대해 함구령을 내립니다.”

이후 나는 방에서 나갈 수 없었다. 간혹 부국장이 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었을 뿐 어느 누구도 얼굴을 디밀지 않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랐다. 아침에 부대를 나설 때 나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었고, 신부를 만난 이후로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런 뒤 신문사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은 후 다시 기운이 났고 야당 당사로 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어 온 셈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들여볼 새도 없이 주위 사람들에 의해 울고 웃은 셈이다. 도대체 이런 영향을 받으며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다 보니 저녁이 가까워졌다. 나는 부국장과 사무실 직원들이 벌인 술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물론 하찮은 사람이 아니라 투사로, 용기 있는 자로 말이다. 직원들은 다투어서 나와 악수를 하려 들었다. 그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를 흠뻑 존경이 담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다지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이 않았다. 나는 그들에 의해 웃고 우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감정은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술잔을 받을 때마다 붕 떠올라 이들 위를 날고 있는 느낌이었고 긴 창을 꼬나 들고 독재자와 싸우는 환상에 젖었다. 놈을 죽이는 거야.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마음으로 술을 마셨다. 그때 누군가의 제의로 건배가 이루어졌다.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하여!”

“위하여!!!”

술자리가 끝나자, 나는 소파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자는 동안 나는 꿈을 꾸었다. 여러 사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는데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특히 어머니는 불안한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다음 날 오전은 약간 초조하고 불안한 가운데 흘러갔다. 나는 곧 유명인사가 되어 감옥으로 직행하는 투사의 과정을 밟을 수도 있었고, 일진이 나쁘면 내가 빠져나왔던 바로 그 자리에 고스란히 가서 처박힐 수도 있었다. 유명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누군가 속삭였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사람, 경탄 속에서 내 이름을 생각할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나중에야 나는 그것이 악마의 유혹인 줄은 알았다.

제자리로 돌아가 박힌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한 짓이었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정 위에 서 있다고 믿고 싶어졌고 뒤를 돌아보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뒤를 돌아보지 말 것, 원점으로는 돌아가지 말 것, 나는 다짐했다.

아침 일찍 출근한 부국장과 아침 식사를 하고 국장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우리 둘 사이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는 뭔가 알고 있었음에도 나를 안심시키려는 말만 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어떤 결정을 내릴 처지가 아니었고, 어떤 조짐이 있다고 쉽사리 말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런데 삼십 여분 뒤 인권위원회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출근하고 업무가 재개되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일까. 꼭 일어나리라고 기대되었던 일이 일어나지 않자, 나는 불안해졌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혹시 부국장이나 국장이 총재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그럴 리는 없었다. 이건 공식 석상의 일, 뒤편으로 일어난 일들은 모조리 삭제한 신문이 아니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내 개인적인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개인의 양심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회적일 경우에는 내 문제만이 아니라고 속삭여도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별 이용가치가 없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들에게 줄 가치는 오로지 여기까지가 아닐까. 여당에 내게 숨겨진 한칼이 있다고 말이야.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이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이 내가 가진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내가 독재자를 죽이고 싶다는 심정은 이해할지 몰라도. 좋다. 아무래도 좋다. 나는 하찮은 인간들을 상대로 다툴 생각은 없었다.

“콩국수나 먹으러 갑시다!”

점심시간이 되자, 부국장이 문을 열었다. 나는 말없이 뒤를 따랐다. 좀 더 기다려보자구. 어제저녁 국장이 함구령을 내렸으니까 내가 여기 있는 것을 경찰들도 모르고 있을 거야. 그런데 국장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총재와 면담을 하고 있는 걸까. 나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하고 있을까. 정말 우습군. 내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의논되고 그 결정에 따라서 내가 움직여야 한다니 말이야.

아케이드 한식집에서 먹은 콩국수는 그다지 맛이 없었다. 아니 내가 식욕을 잃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 먹는 것을 혐오스럽게 여기는 버릇이 살아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여전히 시계 바퀴는 구르고, 나는 점심을 먹은 시점까지 살아있었다. 그 점에 나는 감사해야 했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때로는 감격스러울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그러나 내가 점심을 먹고 당사에 도착하기 전에 이 기분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나는 당사 정문에 다다르기 전에 키가 작고 못생긴 원숭이 한 마리를 보았다. 놈은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와 같이 근무했던 고참 중대원이었다. 나는 놈을 보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끈적거리며 불유쾌한 상상이 떠올랐다. 나는 늘 어디론가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늘 내 뒤를 쫓아오는 놈이 있었다. 그것은 내 운명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경멸했던 하찮은 인간들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들처럼 살기를 거부했고 나만의 삶을 살고자 했지만 그들은 시시때때로 나타나 나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그들에게 잡혀 현실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오랫동안 도피자의 상태로 있었다.

“아이쿠!”

나는 당사 현관문을 이삼 미터 앞에 두고 미끄러졌다. 다시 반사적으로 일어섰지만 놈은 벌써 내 어깻죽지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놔!”

나는 고함을 지르며 입고 있는 하얀 잠바를 벗어버렸다. 다시 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는 만원이었지만 나는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뒤따라온 원숭이가 날 끄집어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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