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짓이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장 차림에 키가 훤칠한 오십 대 남자였다. 나는 그가 누군지 몰랐지만 나를 구해준 그 남자에 감사했다. 그는 원숭이를 밖으로 밀어버리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소리 없이 나타난 구원병의 얼굴을 나는 쳐다보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다시 박혀있던 자리로 되돌아가야 했다.
“나도 당원이오.”
당원이라는 말을 듣자, 꼭 공산당원이오, 라고 말하는 것 같아 잠시 몸이 떨렸다. 공산당원에게 잡혀가서 이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무의식 속에 들어있는 그들은 남한 사람들보다 잔혹하고 더 악랄했다.
부국장은 사무실로 곧 뒤따라왔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국장이 부국장을 나무랐다.
“하마터면 어쩔 뻔했소, 지금 점심이 뭐가 대단하단 말이요!”
부국장이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여기 있는 것이 확인됐으니 당사는 곧 포위될 것이요. 저 사람을 피신시킬 대책을 강구해 보시오.”
그랬다. 이들은 내가 이런 상태에 처할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단지 엉큼하게 그 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 당신들에게 정의나 진리 같은 것이 없는 것은 확실해. 난 내 마음대로 행동할 거야.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사무실을 빠져나가 바깥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당원인 양 가장을 한 채 뒷길로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곳에는 내 얼굴을 아는 부대원들이 배치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껏 내가 바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던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갖는 것 말이야. 다시는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부대 숙영지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시민들의 놀림감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방패를 들고 곤봉을 들고 있는 것은 생각만 해도 역겨운 일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순간에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봐줄지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나는 그들을 사랑한 적도 없고 그들로부터 허위에 찬 찬사를 받고 싶어 한 적도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면 투사다운 장렬한 최후는 어떨까? 단지 머릿속으로만이 아니라 실지로 몸을 던지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경들에게 고문을 당하거나 최루탄을 맞아 죽은 학생이나 노동자가 아니라 몸에 시너를 붓거나 고층에서 떨어져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람들에게 나는 도움을 청했다. 그 순간을 맞이할 용기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내게 용기를 주소서!”
신과 다름없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끝내자, 부국장이 치안경찰이 당사를 포위했다는 소식을 부국장이 가지고 왔다.
“하지만 너무 염려하지 말게. 우리도 자네 하나쯤 살릴 병력은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부국장의 행동은 사뭇 달랐다. 당황하고 허둥대는 기색은 이렇게 빠르게, 라고 말하고 있었고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어서 상부의 명령이 내렸으면 하는 듯했다.
부국장은 밖으로 나갔다가 여자 가발과 옷, 화장품을 가지고 나타났다. 여자로 변장해서 당사를 나가자는 것이었다. 좋은 방법이군. 난 왜 지금껏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나는 부국장이 가져온 하얀 블라우스와 얇은 여름용 치마를 입었다. 잠시 동안 여자가 된다는 것이 나를 즐겁게 했다. 여자가 쓰는 말투, 복장, 사회적인 행동이 언제부터 규격화된 대량제품처럼 출시되었던가. 이것은 대지와 자연을 거스르는 행동이었다. 드디어 검은 곱슬머리 가발을 쓰자, 나는 여성이 되었다. 내가 바랐던 우아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모습에 나는 만족했다.
그때 문을 밀고 들어온 국장이 내 모습을 보았다. 그는 허, 하고 웃으려다 말고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것보다는 말일세.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서로에게 좋은 쪽으로 해결을 보세. 우리 당이나 자네의 신변 둘 다 말이야. 밖에 기동대장하고 국회의원, 관할경찰서장이 자네와 면담하기 위해 와 있네.”
이 순간 내가 왜 반대를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오로지 그들의 손아귀에 잡힌 참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랬더라면 나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걷는 길을 뒤따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왜 갑자기?”
부국장이 나 대신 물어주었다.
“아까 전 일이 큰 실수였어. 그 일만 없었다면 경찰들도 저 사람이 우리 당사에 있다는 것을 몰랐을 거야. 조금만 기다렸으면 되는 일을 갖다가!”
“죄송합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국장실 문을 차고 나왔다. 놀란 직원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이 순간처럼 나 자신을 한 목적에 집중시킨 적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이 내 전부였다. 나는 꽃잎처럼 용감히, 그리고 허무하게 공중으로 흩어지고 싶었다. 나는 갖가지 장애물을 지나 창문을 열고 휙 몸을 날렸다.
여태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 같은 공포는 없었다. 그것은 참 아름다운 비행이었다. 열린 하늘에서 꽃잎들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지는 분홍빛 꽃잎으로 덮였다. 그리고 내 주위의 사물들은 제각기 내 죽음을 축복해 주었고 나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황홀한 순간을 맛보았다. 나는 세상과 사람과 일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죽은 게 아니었다. 잠시 후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의 하얀 시트 위에 뉘어져 있었다.
우람한 철문이 뒤에서 소리를 내며 닫히자, 유치장에 흩어져 있던 눈들이 모조리 나를 향해 모였다. 오라질 놈의 인간들! 나는 의경이 이끄는 대로 반원형으로 된 여러 개의 방 중 제일 앞의 방에 가서 섰다.
“손을 앞으로 내!”
의경은 내 손에 채워진 수갑을 풀어 주었고 그다음으로 앞에 있던 방의 철문을 열었다. - 아니 그 순서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나는 순순히 갈색 마루가 깔린 1번방으로 들어갔다. 맨발을 마룻바닥 위에 올려놓자, 몸이 으씰으씰 떨릴 정도의 냉기가 느껴졌다. 냉기는 맨발에서 다리로, 몸통으로, 머리로 퍼져나갔다. 이곳이 내가 보름 동안 지내야 할 곳이었다. 두렵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곳을 나가도 감옥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따름이었다.
“유치장 수칙이라도 읽어 두는 것이 아마도 좋을 거야.”
꽝, 하고 철문을 닫으며 의경이 말했다.
‘그래, 밖에 나가면 독재자의 법전을 읽어야겠지.’
나는 구석에 쌓인 모포 중에서 1장을 들추어내서 사각으로 접어 그것을 바닥에 깔고 앉았다. 그러자 나와 세상을 가로지르고 있는 철창이 눈에 들어왔고 다음으로 간수책상과 바로 위의 벽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거대하고 검은 바늘이 달린 시계였다. 시계는 아주 잘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정지했다. 내 사고가 정지했고 사람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바라고 있던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정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잠시 행복한 상태에 빠졌다.
유치장 수칙은 정면의 간수 책상 오른쪽 위에 붙어 있었다. 나는 얼굴이 긴 데다 안경을 쓴 의경의 모습을 떠올리며 유치장 수칙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읽고 나서 나는 괜히 읽었다 싶었다. 그것은 내가 여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아님을 일깨워 주었고 독재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수인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리가 저린 것을 오랫동안 참고 있었던 나는 반원형 반대편에 있는 자들이 일어나서 눈에 띄지 않게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서는 극히 사소한 것들조차 허용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자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다리를 푸는 인간이었다. 갈색 니스가 칠해진 나무 조각은 바닥에서 시작해서 벽의 중간까지 올라가 있었다. 아마도 벽에 부딪혀 죽거나 다치려는 자들을 막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오른손으로 만지며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떼었다. 그러는 동안 조금 전에 본 유치인이 감시카메라를 피하며 걷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유치인이 주의해야 할 대상은 책상에 앉아 책이나 신문을 보는 간수가 아니라 사실은 감시카메라였다. 갑갑해진 나는 걷기를 포기하고 모포가 놓인 자리로 돌아왔다.
얼마 후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저앉아 있는 내가 미웠고 그것이 견딜 수 없었다. 조금 전에 했던 것처럼 벽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뭇조각을 짚어 가는 동안 몇 개의 글자들을 발견했다. 조금 전에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마술사 타도!’
손톱이나, 날카롭지는 않지만 단단한 물체로 긁거나 짓이겨서, 지나치게 가늘거나 약간 일그러진 글꼴이었다. 이것을 발견하자, 내심 탄성을 질렀다. 반독재 투쟁을 하던 학생이나 시민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는 증거였다.
잠시 자리로 돌아와 쉬었다가 몇 분 후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더욱 용기를 내어 뒤편까지 나아갔다. 뒤편은 세면장과 화장실이었다. 세수할 수 있는 세면대에는 냉․온 수도꼭지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수세식 화장실에는 값싼 화장지가 누런빛으로 매달려 있고 변기에 쭈그려 앉으면 겨우 하체를 가릴 수 있는, 용수철 달린 문이 있었다.
채광창이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세면장을 지나쳐 화장실에 가려고 했을 때 유치장 내부를 밝히는 형광등 불빛보다 더 밝은 빛을 대한 느낌이 들었다. 채광창은 세면장과 화장실의 중간에서 약간 세면장 쪽으로 치우친 천장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오물을 걸러내기 위해 설치하는 철망처럼 몇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것을 통해 몇 가닥의 햇살이 실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햇빛을 발견한 순간의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광휘! 마음은 한없이 부드럽고 충만해졌고 일체의 사물에 대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벽시계가 잠시 멈추었다고 생각한 것은 내 착각이었다. 벽시계는 거대한 바늘을 움직이고, 낮게 종을 6번 침으로서 유치장을 변화시켰다. 그때까지 닫혀 있던 철문을 열어젖히고 노란 바구니를 들여보냈다. 그것을 뒤에서 밀고 있는 사람은 두 명의 중년 부인이었다. 그들은 먼저 내 방에 도시락을 들여 주고 곧 옆방으로 건너갔다. 나는 철문 사이의 네모진 틈으로 디밀어진 도시락을 무릎 위에 놓고 열었다. 한 개의 양은 도시락 안에 든 것은 분명 갈색 줄무늬가 그려진 보리밥일 것이고 또 하나의 도시락에 든 것은 빨간 고춧가루를 무친 노란 단무지일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도시락에는 노란 단무지 외도 푸른빛이 장에 녹아서 검게 변한 고추 장아찌가 들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보리밥 한 술을 입에 넣고 고추장아찌를 베어 물었다. 순간 매운맛과 짠맛이 어우러진 독특한 맛이 상처를 소독할 때처럼 코와 눈의 신경을 찔러댔다.
그 다음 날 오후였다. - 아니 며칠 후일 것이다.
아침마다 작은 수레를 밀며 각 방을 도는 의경이 그 날 내 방에 임의적으로 던져준 책, 니체의 ‘선악의 피안’을 읽고 있던 나는 갑자기 유치장 안을 흔드는 구호에 놀라 창살 밖을 쳐다보았다.
“예수를 믿으십시오, 회개하십시오!”
이십 대 여자의 목소리였다. 정인일까, 이 목소리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는 두 줄로 늘어서 있는 방문자의 행렬을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성가대처럼 검은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 연한 녹색의 투피스에 다갈색 구두를 신은 여자, 검은색 정장의 빨간 입술의 여자, 그 옆에 정장한 남자, 기타를 멘 삼십 대 초반의 청년, 긴 머리에 바둑판무늬 남방을 입은 핼쑥한 여자…
“자, 우리의 형제자매를 위해 기도합시다!”
감색 정장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에 따라 일동은 손을 모아 올렸다. 그자가 아마 목사인 듯했다. 목사가 기도를 마치자 서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유치인이 들어 있는 방에서도 아멘,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도를 마친 목사는 이렇게 외쳤다.
“예수를 믿으십시오, 회개하십시오!”
방금 전의 목소리가 바로 이 자의 목소리였다니. 이 목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그는 망할 놈의 목사 같으니라구, 하고 중얼거렸다. 속은 것이 분했고, 거듭해서 나까지 죄인 취급하는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독재자를 독재자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면 죄인을 죄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때까지 내 생각이었다.
곧이어 방문자들은 기타를 어깨에 멘 남자의 반주의 맞추어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이런 곳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가슴에 벅찬지 표정이 과장되어 있었다. 빨갛거나 연한 갈색의 입술을 크게 벌려 치아를 드러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밝고 환하게 웃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반면 남자들은 그녀들보다는 경건한 자세로 임하고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이들이 찬송하는 사이 방문자 중 몇 사람은 빵과 우유를 담은 종이박스를 들고 유치장을 돌기 시작했다. 나는 연한 노랑으로 머리를 염색한 중년 부인이 준 빵과 우유, 전도지를 한 장 받아들었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십시오!”
그녀는 기계적으로 말한 후 옆방으로 건너갔다. 나는 빵과 우유를 게걸스럽게 먹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혐오스러운 이 동물이 죽을 때는 어떤 표정을 짓고 죽을지 궁금해졌다. 아마 찍소리 못하고 죽을 거야.
나는 양 한 마리를 안은 예수의 모습이 인쇄된 전도지를 손에 펴들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나는 조금 전에 본 부인을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몇 차례 불러도 부인은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1호 방을 지나쳐갈 때 다시 불렀다.
“잠깐만요!”
중년부인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볼펜 한 자루를 좀 빌려달라고 말했다. 부인은 부담스러운 눈초리로 잠시 나를 보더니 이윽고 볼펜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볼펜을 받아들자마자 갈겨쓰기 시작했다.
‘저는 제1 기동대 소속의 전투경찰입니다. 저는 독재정부를 전복시킬 투사가 되려고 합니다. 부디 도움을 주십시오.’
아래쪽에는 부인을 향해서도 한 마디 썼다.
‘부인, 이 쪽지를 부디 H 성당의 신부님들에게 가져다주십시오.‘
부인은 전도지를 받아 아무런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과연 내가 원하는 대로 심부름을 해줄까, 걱정었지만 부인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유치장 문을 나설 때까지 그 어느 것도 나를 찾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