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고스 Oct 02. 2023

<Prologue>Them 속에서 One하는 인생 살기

나는 살아있는걸까?

멍하니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내다보면 나는 ‘그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생명체인가’ 하는 생각에 꽂힌다. 매일 일찍 잠에서 깨어나 찬물 샤워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남이 볼 땐) 부지런한 사람이지만, 깨어난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누워있다가 허리를 곧게 세워 옮기는 것 뿐이라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이마저도 포기하자니 하등 쓸모없는 인간이 되겠고, 매일 반복하자니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 앞으로 이동은 하지만 내 의지로 움직여서 가지는 않는, ‘끌려간다’는 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라는 호기심이 솟아 오른다. 물론 그다지 물어보고 다니지는 않는다.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싶지 않다. 순도 100% 솔직한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같아서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을 데이터로 추출하여 내 방에 쌓아두고 비교 분석하는 재미를 누리고 싶다. 물론 망상이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일뿐.


별이 모여 은하를 이루고 은하가 모여 은하계를 이룬다. 나와 너와 지나가는 사람이 모여 군중집단을 이루며 전세계의 군중을 일컬어 인류라고 부른다. 유대감을 형성하는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득실도 극과 극으로 향하기 쉽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이로운 작용이 일어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집단적 광기에 빠져 공평한 파멸의 길로 어깨동무한채 달려가기도 한다. 개인과 집단의 관계는 꽤나 오묘하고 복잡하다.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진실과 이성은 처음엔 고개를 내밀어보다가도 어느 순간 한 켠으로 밀려나 수그리게 된. 죄목은 다수에게 '불편감'을 유발한다는 기분상해죄. 꼼짝 없이 '비주류', ‘극소수’ 내지는 ‘극단적’ 프레임을 입힌 채 말이다. 불편감과 불쾌감을 양팔 벌려 환영하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물론 실제로 냉정히 그럴만한 이유로 비주류가 되어 구석에 내몰려 있는 경우도 있다. 가령 ‘촉법소년은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이니까 10번, 100번이라도 용서해주어야 한다’, ‘술 조금 마시고 운전하는 것 정도로 뭘 그러냐’와 같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주장이 메인스트림에서 인정받기를 바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들은 진실과도 상식과도 합리성과도 동떨어져 외면받은 경우지, 권력에 탄압받은 진실 같은 게 아니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몰상식과 부정과 불합리가 각기 도처에 널려있다. 주장도 근거도 부족한 찌라시와 낭설과 유언비어들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군’더더기가 묻어 변질된 ‘계’네들 사이에서도 ‘일’관된 정도(正道)를 추구하는 ‘학’(배움)이 있다. 집단 속에서 왜곡·변질·희석되었으나 입맛에는 맞는 기호식품같은 ‘오염된 정서’가 있는 반면, 식감도 좋지 않고 한번에 씹어 소화하기 어려워 환영받지 않지만 가장 솔직하고 꾸밈 없는 ‘본질의 정서’도 있다.


이 책에서만큼은 그 어떤 누구도 무엇도 의식하거나 눈치보거나 배려하지 않는다. 개인이 집단 정서에 의해 N분의 1로 쪼개져 희생되는 일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아보고 하는 마음 뿐이다. 개인을 속이고 괴롭히는 그릇된 사회 통념과 상식을 꼬집어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그 가운데 나아갈 방향에 대한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 도넛을 좋아했다. 가운데 뚫린 구멍을 눈에 가까이 대고 망원경처럼 보면 묘한 재미를 느끼곤 했다. 그 순간 동시에 느껴지는 촉감과 향기 또한 좋은 기억의 일부로 남아있다. 하지만 멀쩡한 도넛은 놔두고, 제대로 보관하지 않아 상하고 흐물흐물해진 도넛을 눈에 갖다대어 세상을 바라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보는 데에만 집중하느라 미처 신경써주지 못한 퀘퀘하고 상한 냄새의 실체를 깨닫고, 갓 구운 신선한 도넛으로 바꾸어 보자.


나는 나일 뿐이다. 하지만 어떤 신분으로 어떤 단체의 일원으로서 존재하냐에 따라 나의 모습이 달라진다. 어딘가에선 순둥이, 어딘가에선 지성인, 어딘가에선 냉혈한, 어딘가에선 쌈닭. 또한 어떤 주제나 대화거리에 관해서는 한없이 차분하고 이성을 유지하는 것이 일도 아니지만, 어떤 소재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거부감이나 방어기제가 발동하여 들이받고 부닥치고 감정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수천만 명이 있다. 우리 모두 마음 속의 선과 악을 시시각각 꺼내가며 사회에서 ‘생존’하고자 하지 않는가. 나는 이런 내가 궁금해졌고, 이들이 궁금해졌다. 이들이 모이고 저들이 모인 모습도 궁금하다. 동시에 결심했다. 어떤 곳에 가도 누구와 대화를 해도 예의는 차리되 나를 내어주진 않을 것이다. 당하거나 속거나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몰랐던 것들을 일깨우고 거짓과 왜곡으로부터 벗어나 진실을 마주하고 싶다. 내가 하나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나누고 싶다. 미약하지만 그 사색의 과정을 담았다.


당연하다 여겨왔던 것들, 집단적·문화적·교육적 통념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해보고 나만의 가치관을 세워보자. 머릿속 여과기로 걸러 '흡수한 것' 말고 내가 직접 생산자가 되어 생산한 가치관으로 충만하게 채워보자. 나도 모르게 가볍게 결론내린 것들, 고민과 의심 없이 그러려니 해온 것들을 하나둘씩 발견해보자. 대단하지 않은 이 글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영감이 되었으면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