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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버리는 가치에 대하여.

돈, 명예, 권력, 사랑, 우정 중 하나를 택하라면?

by 수원불나방

스무 살 시절에 나의 꿈은 시인이자 문학도였다.


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냅킨에 소소한 시구를 적어주는 것을 즐겨하기도 했고, 음악을 하는 친구의 오선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의 스케치북에 얼룩을 묻힌다는 느낌으로 조그만 글귀들을 적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손이 오그라들고 얼굴이 붉어져서 당장 증거를 인멸하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있지도 않은 재능에 자신감을 가지고 꿈을 꾸었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도전하던 신춘문예의 몇 번의 낙방 경험과 함께 주위의 만류로 펜을 집어던지게 되었고, 스스로의 선택이란 자기 위안으로 경영학을 전공하고 나서는 십 년이 넘게 주식 관련 업무를 하게 되었다.


문학도가 주식쟁이가 된 것이다. 그 후의 스토리는 생략한다. 비슷한 또래의 비슷한 조건으로 회사에 소속되어 정형화된 업무를 배우면서 넥타이 부대로 살았고, 여유가 생겨도 꿈이라는 건 되새김질조차 하지 않았다. 생계와 업무에 바빠 예전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도 완전히 잊게 되었으니 말이다.


뭐 감상적으로 내 꿈이 이랬었다는 반추도 아니, 스무 살 청춘 시절의 순수한 꿈에 대해서 말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제목에서 적었던 것과 같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스무 살 시절의 나의 꿈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

다만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니 그 시절 친구들과 그 시절 음악, 향수 냄새가 생각나듯이 그 분위기가 생각났을 뿐이다.


그 시절 친한 친구들과 모이면 이런 논쟁을 많이 했었다.

"돈, 우정, 사랑, 명예, 권력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이런 질문을 서로에게 하면서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 열띤 논쟁을 하곤 했었다. 대부분의 논쟁은 그 어느 것 중에 하나만 제대로 얻어도 다른 것은 어느 정도 희생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좀 더 강하게 말하면 하나만 제대로 얻으면, 나머지 것은 다 자동적으로 따라온다고 주장하던 친구도 있었던 것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열띤 토론은 주체인 다섯 명(그 당시 남자 세명과 여자 두 명)이 선택한 것은 중복되는 것이 하나도 없이 각각이 다 다른 것(가치)을 택했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에 와서 그 친구들이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그들의 삶은 좌충우돌하면서 닥치는 대로 살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때 선택했던 것이 무슨 책임감처럼 지금의 삶과 반드시 연관되어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상당히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달리하고도 싶다.


돈을 선택한 친구는 지금 네트워크 마케팅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다단계 판매업)의 고위직급자가 되어 있고, 권력을 택했던 친구는 군 영관급 장교로 복무 중이다. 둘은 자기의 선택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명예를 택했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문단에라도 등단을 했어야 하지만, 슬프게도 IT 벤처기업의 창업자로 살고 있다. 나머지 친구 둘은 왜 이야기 하지 않냐고? 둘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여성이었고 당시에 각각 우정과 사랑을 택했다. 이제는 소식조차 모르는 그녀들은 삶에서 자신이 선택했던 가치가 반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어느 곳에서인가 자신만의 가치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조금 옆길로 샜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라는 것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아니라고 반박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요즘 사회적으로 너무 경제적인 가치만 부각되어 있는 것이 조금 안타깝다. 개똥철학이겠지만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는 모두 다르게 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자 사는 모습과 그 종착점이 다 같은 모습일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요즘 세태를 보면 모든 가치를 가격 화하려는 자본 만능주의적인 세태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심히 걱정이다.


성공이라는 것을 경제적 성공인 부와 항상 결부시켜 표현하다 보니 그런 것일까? 좋은 배우자를 얻는 것도 경제적 능력과 결부되고, 아이를 키우는 환경과 교육에 대한 것도 경제적 능력, 나이 든 부모를 모시는 것에도 경제적인 부분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는 현실이니 말이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맞이하여 아내로 맞는 기쁨, 첫 아이를 낳았을 때의 눈물이 나던 기쁨, 작게는 친척이 다 모인 저녁식사 등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들도 많다.


굳이 너무 큰 행복과 비교하지 않아도 내 블로그에 작은 칭찬을 남긴 사람이 주는 기쁨, 목표했던 다섯 개의 산을 올랐을 때의 행복감. 손수 요리를 만들어서 지인에게 대접한 만족감 같은 작은 행복들도 그 가치로서 인정을 해주면 좋겠다.


성공은 자본적 성공에 기반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요즘 블로그와 자기 성공 계발서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짬짬이 재테크와 N잡, 경제적 성공을 통한 신분상승, 진로의 결정과 하고 싶은 취미나 공부 같은 것들이 삶을 살면서 체험을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고, 경제적 성공에 목표를 두고 모든 체험이 경제적 성공의 밑거름과 연관시키는 것이 조금 서글퍼진다.


아주 흔하게 이야기하듯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 돈이 많아도 같이 즐겨줄 사람이 없으면 즐길 수 없다는 말처럼 돈이 아닌 자신만의 가치를 정하는 기회가 이런 물질만능시대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추상적이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정하고 부와 연관된 수치적 목적 없이 즐거운 삶, 육체적인 질환이 없는 건강한 삶, 경제적 목적 없이 즐기는 자유로운 취미, 경제적인 이유나 목적을 위한 커뮤니티가 아닌 자연스러운 인간관계 등이 아쉬워지는 요즈음이다.


경제적 이득과 관계없는 자신만의 작은 목표를 만들어서 실천해 보면 어떨까?


이렇게 어설픈 칼럼 같은 글을 쓰는 나는 찌꺼기처럼 남은 조그만 명예욕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렇게라도 글을 욕심스럽게 쓰고 있다.


돈과는 상관없는 나만의 조그만 행복감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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