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해 전령사

by 난아

무슨 일인가로 친구와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유독 냉전 기간이 길었다. 웬만하면 이해하고 넘어갔을 텐데 서운함이 커 마음속 응어리가 쉬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불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뜻밖의 방법으로 화해를 하게 되었다.


구원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온다고 했던가. 우연찮게 접한 책에서 한 줄기 빛 같은 문장을 만났다. 노동자로 살며 틈틈이 글을 쓰는 아마추어 작가의 글이었다.

“힘든 삶이 나를 수필로 이끌었고, 이제는 수필이 내 삶을 인도한다.” 나에게는 보석 같은 문장이었다. 값비싼 보석 만이 보석은 아닐 것이다.


친구에게 내가 쓴 글을 한 편 보냈다. 한참 후에 돌아온 그의 긍정적 반응을 보고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원로작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뭇잎을 쓰다듬는 햇빛과 바람을 보면 인자한 모성애가 느껴진다는 작가의 말에 누군가가 “거기서 어떻게 모성애를 느끼냐”라고 물었다. “그걸 알아채는 게 작가일세.”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말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말해주고 보이지 않는 것-마음 같은 것-을 보게 해 주는 게 문학이라고 한다면 허술하고 서툰 내 글도 문학이 될 수 있으려나.


정직하게 적어 내려간 글을 보여줌으로써 화해를 요청하는 내 신호를 알아챘는지 친구는 더 이상 가시 돋친 말을 하지 않았다. 문학이 우리 사이의 화해 전령사가 되었다.


시 공부 선생님의 말이 와닿는다. “글을 쓰는 사람은 공인이에요. 따라서 자기 글에 책임감을 가져야 해요. 글은 나의 얼굴이에요.” 어느 노 작가는 수강생들에게 “글을 잘 쓰려하기 전에 먼저 가족에게 잘해라, 네 삶을 똑바로 살아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시를 배우고 싶어 다니게 된 수업에서 나는 살아가는 지혜를 깨우친다. 우리가 추구하는 많은 것들,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혹은 예술이든 이 모든 것들은 다 삶의 한 방편일 뿐이지 않을까.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의 척도를 덥석 받아들이기보다는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는 안목을 오늘도 문학으로 배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