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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친구

by 난아

나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일주일에 한 번 시 공부를 하는데 몸이 안 좋아 쉬려던 차였다. 평소 과묵하던 한 선배가 "꼭 나오라"는 톡을 보냈다. 예상치 못한 호명에 깜짝 놀라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발걸음을 뗐다.


시 공부가 좋아서 시작했으나 알면 알수록 어려워져 고민을 하자 누군가가 ‘글 친구’를 만들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날 불러주었던 선배와 문자를 주고받게 되었다. “선배님의 꾸밈없고 유머러스한 시가 좋아요.”라는 내용을 보냈다. 잘 알지 못해 서먹서먹한 사이였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돌아온 선배의 답장을 받고는 조금 놀랐다. “내 글을 좋게 봐주어서 고마워요. 나만 시를 안 써 가니 너무 창피해서 이제부터는 공부를 좀 해서 글을 열심히 써 보려고요.” 고무적인 말에 나도 덩달아 힘이 났다. 오랫동안 수간호사 생활을 하다 파킨슨병이 발병하는 바람에 지금은 건강에만 전념하는 70대 선배이다.


다음 날, 수업이 끝나고 요즘 어떤 공부를 하느냐고 선배에게 물었더니 교재인 박준 시집을 정독과 속독으로 번갈아 가며 읽고, 신문도 스크랩해서 읽는단다. 아! 내 게으름이 창피했다.


물론 나는 치열하게 공부해야 할 수험생도 아니고, 작가가 직업도 아닌지라 글을 쓰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하나, 글쓰기가 좋아 시작했으면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쓰고 또 쓰며 시지프스의 바위 올리기 같은 작업을 되풀이해야 함을 잊고 있었다.


글 친구를 만들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들이야말로 글쓰기를 사랑하는 공통된 마음과 진지함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의 글에 대한 관심과 존중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저마다 백지를 마주하고 언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동료 의식이든 느슨한 연대든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인류 문명의 역사를 이끈 것이 ‘상상력’이라면 상상의 힘으로 글을 쓰는 우리는 주위에 작게나마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글쓰기는 명상이나 종교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듯하다. 글을 쓰다 보면 정서가 충만해지고, 건강한 순환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글 친구들의 다양한 글에는 저마다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남의 이야기이지만 거기서 나의 삶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들의 글에 머물고 느끼며 음미하는 시간이 내 지평을 넓혀준다. 나와는 다른 시각과 표현으로 쓰인 글에서 유영하다, 때로는 깜짝 놀랄 만한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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