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타지에서 산다는 것

by Story Line

우리 가족은 어렸을 때부터 낯선 타지로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중 아버지는 해외 출장이 잦으셨고, 우리 역시 따라가는 일은 다반사였다. 여행과 산다는 것은 크나큰 차이다.




여행은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특색의 일부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고, 산다는 것은, 그 나라의 모든 것을 껴안고 살아야 된다는 부분에서 차이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나는 총 3번에 낯선 타지에서 살아보았다.




베트남, 일본, 캐나다.




그 나라 안에서도 이사도 가고, 여행도 자주 가였다.




중학교 1학년때 베트남에 6개월에 살다 다시 한국에서 6개월 그리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것 말고는 없었다.




내가 공부하는 것에도 그리고 성격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정해진 커리큘럼이 아닌, 호주, 필리핀, 미국등 각종 학교의 커리큘럼에 맞춰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더구나 그때는 갑작스러운 아빠의 출장으로 인해 영어는 회화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데 더욱더 문제가 생겼었던 것이다.




남들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군대를 돌아다녀서 좋겠네"라고 말을 했지만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러한 것은, 장점이라는 모순에 숨겨진 단점 같은 것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힘든지, 매일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밥을 먹는 것조차.




그렇게 베트남에 있을 때는 왕따를 다시 당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왕따가 아닌 은따였다.




무시를 당하는 것조차, 나는 관심이라고 생각해서 웃으면서 넘겼고, 그 당시 베트남에 있던 학원 선생님(한국분) 마저 나를 장난 소재로 남겼고, 거기에 도가 지나친 것 같다고, 주변 사람이 말을 할 정도였다.




그 당시에는 그냥 관심을 원했던 것 같다, 바보 같고, 스스로를 낮추면서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원했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캐나다 유학을 결정하게 되고, 코로나가 터졌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생겼다.




점점 무시당하는 것도, 나 자신을 낮춰가면서 다른 사람의 광대가 되는 것도, 다 내가 선택했지만, 아무런 이유가 없이 화가 났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내가 하고 싶은 일본어 그리고 영어 공부를 죽자고 했다.




비록 캐나다에 가지만, 그런 거 상관하지 말고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내 삶은 나쁘지 않았다.




열심히 배운 일본어 덕분에 일본인 여자친구를 사귀고, 다른 친구들과 놀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었다.




그때 생각을 했다.




어디를 가던지, 언어라는 것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구나라고.




그 당시 취미로 하던 일본어가 지금은 실력이 꽤 좋아져서, 과외까지 하고 있다.




여러 나라를 가보고 타지에 살아보면서 깨지고 느낀 것은 공허함이다.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도, 공허함 말고는 다른 특별한 기억이 남지는 않는다.




아무리 좋고 소중한 경험이어도 그냥 자잘한 단점에 모든 게 가려지는 것처럼.




내가 몰랐던 좋은 점이 단지 사소한 단점 하나에 가려진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게는 이상적인 삶은, 누군가에게는 현실보다 힘든 삶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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