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의 구조적 통일성>을 중심으로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Kim Il-ryeol’s “The Structural Unity of The Story of Hong Gil-dong” in order to examine how academic persuasiveness is achieved through specific structural strategies in his writing. Unlike deconstructive approaches that tend to remain at the level of enumerating dispersed meanings, Kim Il-ryeol’s writing is characterized by a judgment-centered structure in which an interpretive conclusion is established and subsequently confirmed through textual organization. To clarify this strategy, the analysis is conducted across multiple levels: sentence composition, paragraph development, and overall textual structure.
The analysis demonstrates that Kim Il-ryeol’s writing consistently follows the same argumentative trajectory at each level. At the sentence level, interpretation is confirmed early through the use of nominalized concepts and judgment-oriented predicates. At the paragraph level, an initial impression of dispersion is acknowledged, after which a new interpretive principle is introduced to reestablish unity. At the level of overall structure, multiple analytical axes—such as social meaning, psychological unity, and the logic of power—are arranged in parallel. Through the repetition of this shared structural pattern, the text presents its structural unity in a multi-dimensional manner.
This repetitive structure functions not merely as a formal device but as a rhetorical strategy that guides the reader’s interpretive trajectory. Rather than encouraging unrestricted expansion of interpretation, the text leads readers through a process in which previously established judgments are progressively reinforced through structural repetition. This paper argues that such judgment-centered writing can be understood as offering an alternative to explanation-centered academic prose, suggesting the possibility of a model of academic persuasiveness that derives its force primarily from structural organization.
1. 해체적 글쓰기의 한계와 판단 중심 글쓰기의 문제 제기
국문학 연구에서 학술적 글쓰기는 작품에 대한 반응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텍스트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해체한 뒤, 다시 하나의 인식 구조로 조직하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구에서 글쓰기는 여전히 의미의 추출과 병렬적 배열에 머무르고 있다. 작품의 부분적 의미들은 충실히 설명되지만, 그 의미들이 어떻게 하나의 구조를 형성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 이러한 글쓰기는 분석을 수행하지만, 판단을 완결하지는 않는다.
이른바 해체적 방법에 대한 문제점은 김일렬이 논문의 결론부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다. 해체적 방법은 작품을 세밀하게 분해하는 데에는 유효할 수 있으나, 작품이 구조로 존재한다는 전제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의미를 하나하나 적출하여 평면적으로 집합하는 방식은 전체를 설명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체를 유보한다. 그 결과 해석은 늘 가능성의 상태에 머무르고, 연구자는 설명을 반복하면서도 결론을 확정하지 못한다. 해체적 글쓰기가 지니는 한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김일렬의 글쓰기는 이러한 설명 중심적, 해체 중심적 서술 방식과 분명히 구별된다. 그의 글에서 문장은 사고의 과정을 드러내는 통로가 아니라, 사고의 결과를 고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김일렬은 설명을 통해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판단을 먼저 제시하고, 그 판단을 구조적으로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그의 문장은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기기보다는, 다르게 읽을 수 없게 만든다.
<『홍길동전』의 구조적 통일성>은 이러한 글쓰기 전략이 가장 선명하게 구현된 텍스트이다. 이 논문에서 김일렬은 작품의 분산성과 비일관성을 먼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결함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표면적 혼란을 출발점으로 삼아, 작품 내부에 작동하는 구조적 통일성을 단계적으로 확정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문장, 문단, 글 전체는 각각 독립적인 설명 단위가 아니라, 판단을 고정하기 위한 서로 다른 층위의 장치로 조직된다.
본고는 김일렬의 이 논문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그의 글쓰기가 어떠한 방식으로 판단을 조직하고 학술적 설득력을 형성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분석의 초점을 내용이나 해석의 타당성에 두기보다,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고, 문단이 어떻게 전개되며, 글 전체가 어떠한 구조로 설계되는지에 둔다. 다시 말해 본고의 관심은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말함으로써 판단을 완결했는가’에 있다.
이러한 분석은 김일렬 개인의 글쓰기 특징을 밝히는 데 머물지 않는다. 설명 중심의 학술 글쓰기를 넘어, 판단 중심의 글쓰기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자 모델을 제시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2.문장 성분의 배열을 통한 판단의 형성
김일렬의 글쓰기에서 문장은 의미를 설명하는 단위가 아니라, 해석을 확정하는 최소 논증 단위로 기능한다. 이러한 특성은 개별 문장이 구성되는 방식, 즉 문장 내부에서 성분들이 배열되고 위계화되는 방식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1) 판단을 선점하는 서술어의 전략적 배치
김일렬 문장의 핵심은 서술어가 문장 전체의 논증 방향을 사전에 고정한다는 점이다. 다음 문장은 이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홍길동전』은 사회적인 불평등에서 야기되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으로 일관되어 있는 작품이며, 여기서 작품이 지닌 사회적 의미의 통일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문장에서 핵심 서술어는 “일관되어 있는 작품이며”, “찾아볼 수 있다”이다. 문법적으로는 가능성이나 추론을 나타내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논증적 기능에서는 결론을 확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주어인 『홍길동전』은 곧바로 ‘사회적 불평등에서 야기된 갈등’이라는 해석적 규정과 결합되고, 이후 제시되는 문장 구성 성분은 이미 내려진 판단을 보완하는 역할로 제한된다.
이와 같은 서술어 배치는 독자가 문장의 앞부분에서 제시된 해석을 일단 받아들인 상태에서 뒤의 설명을 읽도록 유도한다. 즉, 서술어는 문장 말미에 위치하지만, 의미 작용은 문장 전체를 지배하며 해석의 방향을 선점한다.
2) 명사화를 통한 사고의 종결과 개념 고정
논문은 사건이나 과정을 동사적으로 전개하기보다, 명사화된 개념을 통해 사고를 정지시키는 전략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다음 문장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심리학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 문장에서 ‘지니고 있다’라는 서술어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심리학적 필연성’이라는 명사이다. 이 명사는 앞선 서술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의문, 즉 ‘왜 이러한 행동이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을 더 이상 확장시키지 않는다. 동사적 설명이 계속될 경우 열릴 수 있는 해석의 가능성은, 명사화된 개념에 의해 문장 차원에서 봉쇄한다.
이와 같이 명사화는 문장을 설명에서 논증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장치로 작동한다. 독자는 개념의 형성과정을 따라가기보다, 이미 성립된 개념을 수용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며, 이는 김일렬 문장의 설득력을 구조적으로 강화한다.
3) 지시어를 활용한 논의의 응축과 생략
문장에서는 ‘이것은’, ‘이러한 점은’, ‘여기에서 확인되는 것은’과 같은 지시어가 문장 전면에 빈번히 등장한다. 다음 문장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것이 작품의 표면에 불과하다는 판단에 이르면 논의를 계속 진전시킬 수 있다.”
이 문장에서 ‘이것’은 직전에 제시된 여러 사건의 불연속성과 통일성 결여의 인상을 모두 포괄한다. 김일렬은 이를 다시 설명하지 않고, 지시어 하나로 압축한 뒤 곧바로 ‘표면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제시한다. 이로써 문장은 설명 단계를 생략한 채, 해석의 전환점으로 기능한다.
지시어는 정보의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충분히 논의되었음을 전제로 하여, 설명을 반복하지 않고 판단 단계로 이행하기 위한 전략적 장치라 할 수 있다.
4) 문장 성분 간 위계 설정과 의미 집중
<『홍길동전』의 구조적 통일성>의 문장에 사용된 모든 성분이 동일한 정보 가치를 지니지는 않는다. 의미의 중심은 항상 판단을 담고 있는 주어–서술어 결합에 놓이며, 부사어와 보조 성분들은 이를 정당화하는 부차적 위치에 배치된다. 다음 문장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홍길동전』은 사회적 불평등에서 야기되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으로 일관되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여기서 사회적 의미의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
쉼표 이전의 서술은 판단을 선언하는 부분이며, 쉼표 이후의 설명은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머문다. 문장은 비교적 길지만, 기능적으로는 ‘사회적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하나의 판단만을 수행한다. 이처럼 문장 성분 간 위계를 명확히 설정함으로써, 긴 문장 속에서도 논점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이처럼 김일렬의 문장 구성 방법은 문장 성분의 선택과 배열을 통해 해석의 방향을 선점하고, 판단을 문법적으로 고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서술어는 결론을 확정하고, 명사화는 사고의 확장을 차단하며, 지시어는 논의를 응축한다. 이러한 문장 구성 전략은 이후 문장들이 문단 안에서 전개되는 방식, 나아가 글 전체의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 단위로 작동한다.
3. 판단 문장의 배열과 논리적 긴장의 조직
앞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일렬의 문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판단 단위로 기능한다. 그러나 그의 글쓰기 전략은 개별 문장의 완결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미 판단을 내린 문장들이 문단 내부에서 어떤 순서로 배열되고,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보완·강화하는가에 따라 논증의 설득력은 한층 더 증폭된다. 본 장에서는 「『홍길동전』의 구조적 통일성」에 나타난 실제 문장들의 전개 방식을 분석하여, 김일렬이 문장 간 관계를 통해 어떻게 논리적 긴장을 유지하고 해석을 확증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 판단 선제시형 문장의 연쇄 배치
<『홍길동전』의 구조적 통일성>에 나타난 문단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문단 내부에서조차 판단이 반복적으로 선제 제시된다는 점이다. 다음 문장의 배열을 보자.
“이러한 면에서만 본다면 이 작품에는 확실히 통일성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작품의 표면에 불과하다는 판단에 이르면 논의를 계속 진전시킬 수 있다.”
첫 번째 문장은 통일성 부재라는 결론을 단정적으로 제시한다. 이어지는 문장은 이를 즉각적으로 전복하지 않고, ‘표면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추가함으로써 논의의 방향을 전환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두 문장 모두 설명이 아니라 판단이라는 점이다. 김일렬은 ‘왜 통일성이 없어 보이는가’라는 설명을 먼저 제시하지 않고, 상반된 두 판단을 연속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인식을 의도적으로 흔든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문장을 정보의 전달 순서가 아니라, 사고의 방향을 제어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대립 구조를 활용한 논리적 긴장 유지
문장 전개 과정에서 ‘A처럼 보이지만 B이다’라는 대립 구조를 빈번하게 활용한다. 다음 문장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지금까지 검토해 온 바, 각 단락에 내포된 문제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동일한 문제가 일관성 있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품의 표면에 불과하다는 판단에 이르면 논의를 계속 진전시킬 수 있다. 어느 단락에 있어서나 항상 불평등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그 불평등은 두 개의 상반되는 층위 사이의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첫 문장은 분산성과 비일관성을 확인하는 판단을 제시한다. 이어지는 문장은 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차원의 공통성을 끌어올린다. 이때 김일렬은 앞선 판단을 철회하지 않고, 새로운 판단을 병치함으로써 논리적 긴장을 유지한다. 독자는 앞선 결론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을 포함한 더 상위의 해석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와 같은 문장 전개 방식은 단선적 설명을 방지하고, 복합적인 구조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3) 해석적 재서술을 통한 확증의 누적
논문은 문단 중반부에서 사건이나 사례를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내려진 판단을 전제로, 사건을 해석된 상태로 재서술한다. 다음 문장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가)는 신분적인 불평등을 문제 삼은 단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경제적인 불평등을 문제 삼은 단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다)는 신분적인 불평등을 문제 삼은 단락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라)는 신분적인 문제보다 경제적인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단락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장은 각 단락의 내용을 정리하는 문장이다. 이는 다음에 이어질 문단에서 다시 소개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불평등’이라는 해석 틀을 적용한 결과물이다. 김일렬은 사건을 증거로 제시하지 않고, 사건을 해석의 확인 자료로만 활용한다. 이로 인해 문단 내 문장들은 새로운 정보를 추가하기보다, 동일한 판단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반복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해석적 재서술은 문단을 탐색의 공간이 아니라, 확증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4) 개념 상승을 통한 문단 내부의 종결
문장 전개의 후반부에서는 반드시 개별 판단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끌어올린다. 다음 문장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신분적인 불평등과 경제적인 불평등은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 불평등이라고 묶어 말할 수 있다.”
앞선 문장들에서 제시된 여러 판단은 이 문장을 통해 하나의 개념으로 수렴된다. 이때 문장은 새로운 논의를 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개된 문장들을 개념적으로 봉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문단은 이 지점에서 설명을 멈추고, 해석을 닫는다. 김일렬 문장 전개의 핵심은 이처럼 문단 내부에서 ‘판단 → 재확인 → 개념 종결’이라는 흐름을 완결시키는 데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보았듯이 김일렬의 문장 전개 방식은 개별 문장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판단을 선제적으로 제시한 문장들을 대립·병치·재서술의 방식으로 배열함으로써, 문단 내부에 논리적 긴장을 형성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해소한다. 그 결과 문단은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 아니라, 해석을 확증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문장 전개 전략은 다음 장에서 살펴볼 문단 전개 방식의 구조적 토대가 된다.
4. 문단을 하나의 논증 단위로 만드는 확증형 구조
앞 장에서 살펴본 문장 전개 방식은 문단 차원에서 더욱 조직적인 구조로 확장된다. 김일렬의 글쓰기에서 문단은 정보를 축적하는 공간이 아니다. 하나의 문단은 하나의 해석을 제시하고, 그 해석을 스스로 입증하는 최소 논증 장치로 기능한다. <『홍길동전』의 구조적 통일성>에 나타난 실제 서술을 따라가 보면, 문단은 느슨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결론은 앞에 놓이고, 서술은 그 결론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방향으로만 배치된다. 여기에서 문단은 설명의 단위가 아니라, 확증의 단위가 된다.
1) 문단 첫 문장의 해석 선언 기능
김일렬은 문단을 시작할 때 탐색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미 분석이 완료된 판단을 문단의 첫 문장에 놓는다. 논문의 서두에서
“이 글은 「洪吉童傳」을 대상으로 작품의 構造的 統一性을 찾아내는 데 그 목적을 둔다”
고 밝히는 방식이나, 사회적 의미를 다루는 대목에서
“사회적인 불평등에서 야기되는 支配層과 被支配層의 葛藤으로 일관되어 있는 작품이며, 여기서 작품이 지닌 사회적 의미의 통일성을 찾아볼 수 있다”
고 단정하는 문장이 그러하다. 문단은 질문으로 열리지 않는다. 판단으로 열린다. 이 순간 독자는 의심하는 위치에 서지 않는다. 이미 제시된 결론이 어떻게 입증되는지를 따라가는 위치로 이동한다.
2) 두 번째 문장의 근거 방향 제시
해석이 선언된 뒤, 곧바로 사례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먼저 논증의 지형을 설정한다.
“먼저, 예비작업으로서 사건전개의 표면적인 양상을…, 둘째, 사회적인 의미를…, 셋째, 주인공의 심리를…, 넷째, ‘힘’의 성격과 기능을 분석.... 찾아낸다.”
라는 서술은 단순한 구성 안내가 아니다. 이후 전개될 모든 문단이 어떤 질서로 배치될지를 미리 고정하는 장치다. 각 단락을 다룰 때도 “내용을 대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는 표현을 통해, 설명이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지 독자에게 선행 인지시킨다. 문단은 즉흥적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이미 정해진 논증의 틀 안에서만 움직인다.
3) 중간 문장의 해석적 재서술
문단의 중반부에서 텍스트의 사건이 등장할 때, 중립적인 인용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김일렬은 사건을 서사로 제시하지 않고, 해석된 상태로 다시 말한다. 길동이 해인사를 습격하거나 포도대장을 능욕하는 행위를 말하는 다음 진술을 보자.
“자신의 욕구가 적서차별이라는 제도의 장벽에 부딪혀 좌절되자 … 適應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라는 진술로 재규정되며, 나아가 “代理的 適應”이라는 개념으로 다시 묶인다. 사건은 설명되지 않는다. 사건은 이미 논지 속에 편입된 채로 호출된다. 이로써 중간 문장들은 판단을 흔드는 요소가 아니라, 판단을 확인하는 자료로만 기능한다.
4) 개념 상승을 통한 문단 내부의 종결
사례가 충분히 제시되면, 더 이상 개별 장면에 머무르지 않는다. 곧바로 상위 개념으로 올라간다. 다음 예문을 보자.
(가) 신분적인 문제
(나) 경제적인 문제
(다) 신분적인 문제
(라) 경제적인 문제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볼 때 이 작품에서 동일한 문제가 일관성있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가)와 (나)가 어긋나고 (나)와 (다)가 어긋나며 (다)와 (라)가 또한 어긋난다. ... 공시적으로 보아도 신분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라는 서로 다른 문제가 한 작품 속에 공존한다.
“적자와 관료는 신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유리한 계층이며 이 계층의 핵심은 바로 지배층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서자와 백성은 신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불리한 계층이며 이 계층은 바로 피지배층이다.”
(가)부터 (라)까지의 사건들은 “身分的인 問題”와 “經濟的인 問題”로 정리되고, 다시 그것들은 “두 개의 상반되는 階層(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것”이라는 하나의 구조적 진술로 압축된다. 이 단계에서 문단은 더 이상 확장되지 않는다. 개별 서술은 모두 하나의 개념 속으로 흡수되고, 문단은 논리적으로 닫힌다.
5) 상위 논지로의 환원
문단의 마지막은 언제나 글 전체의 핵심 논지로 돌아간다. 심리 분석을 마친 뒤 “네 개의 단락은 心理學的 必然性으로 통일되어 있다”고 정리하거나, 힘의 기능을 분석한 뒤 “작품의 구조는 이러한 면에서도 일정한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고 결론짓는 방식이 반복된다. 개별 문단은 여기에서 독립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전체 논증 속으로 다시 편입된다. 문단은 고립되지 않는다. 언제나 ‘구조적 통일성’이라는 상위 판단에 의해 회수된다.
김일렬의 문단 전개 방식은 이처럼 결론을 유보하지 않는다. 문단은 해석 선언으로 시작해, 해석적 재서술과 개념 상승을 거쳐, 다시 상위 논지로 환원되는 고정된 경로를 따른다. 이 확증형 구조 속에서 독자는 사고의 과정을 목격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도출된 해석이 단계적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이러한 문단 전개 방식은 해체적 방법이 지니는 설명 과잉과 판단 유보의 한계를 넘어, 작품을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인식하게 만드는 강력한 설득력을 만들어 낸다.
5. 반복을 통한 분산의 승인과 통일성의 확증
김일렬의 논문에서 문단은 느슨하게 확장되는 설명의 단위가 아니다. 하나의 문단은 일정한 순서를 따라 전개되며, 그 자체로 하나의 해석을 입증하는 완결된 논증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사회적 의미, 심리학적 통일성, 힘의 논리를 다루는 문단들은 모두 동일한 전개 질서를 반복한다. 표면적으로는 분산되어 보이는 현상을 먼저 확인하고, 기존 해석의 한계를 지적한 뒤, 새로운 해석 원리를 제시하고, 이를 작품 전반에 적용한 다음, 통일성의 존재를 선언하는 방식이다. 이 반복 구조는 우연이 아니다.
1) 표면적 분산 양상의 확인
김일렬은 문단의 출발점에서 곧바로 통일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이 통일되지 않아 보이는 인상을 먼저 인정한다. 사회적 의미를 다루는 문단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서술을 살펴 보자.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볼 때 이 작품에서는 동일한 문제가 일관성 있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장은 작품이 산만해 보인다는 독자의 직관을 정면으로 수용한다. 심리학적 통일성을 다루는 대목에서도 주인공의 행위가 “상황에 따라 일관되지 않게 보인다”는 점이 먼저 제시된다. 힘의 논리를 다루는 문단 역시 길동의 힘이 감정적·폭력적으로 행사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인상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문단은 처음부터 반론을 제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론이 성립할 수 있는 지점을 먼저 열어 둔다.
2) 기존 해석의 한계 지적
그러나 이 분산의 인상을 곧바로 해석의 결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곧이어 기존 해석의 기준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사회적 의미를 논하는 문단에서는
“이러한 면에서만 본다면 이 작품에는 확실히 통일성이 없다.”
라고 말한다. 심리 분석에서도 주인공의 행동을 성격적 변덕이나 우발성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충분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힘의 논리 역시 단순한 난폭성이나 영웅적 기질로 환원하는 해석이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긋는다. 이 단계에서 김일렬이 문제 삼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기존의 해석 틀이다. 문단은 텍스트가 아니라 해석 방법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3) 새로운 해석 원리 제시
기존 해석의 한계를 지적한 뒤, 새로운 해석 기준을 제시한다. 사회적 의미의 경우, 그는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문제의 성격’을 기준으로 작품을 다시 볼 것을 제안한다. 심리학적 분석에서는 개별 행동을 단절적으로 보지 않고, “좌절 → 저항 → 재구성 → 안정”이라는 심리학적 필연성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힘의 논리에서도 힘을 충동적 행위로 보지 않고, 일정한 성격과 기능을 지닌 구조적 요소로 규정한다. 이때 제시되는 새로운 원리는 아직 결론이 아니다. 그러나 이후 모든 서술이 이 원리를 중심으로 재배열될 것임은 이미 확정된다.
4) 작품 전반에의 적용
새로운 해석 원리는 곧바로 작품 전체에 적용된다. 사회적 의미를 다루는 문단에서는 가정, 사회, 관청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모두 불평등이라는 하나의 문제로 묶인다. 심리학적 분석에서는 각 단락의 사건들이 앞서 제시된 심리 단계의 반복으로 재해석된다. 힘의 논리 역시 개인적 차원에서 집단적 차원으로 확대되며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함이 확인된다. 이 단계에서 개별 사례들은 더 이상 독립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 모두가 하나의 해석 원리를 확인하는 자료로 기능한다. 분산되어 보이던 장면들은 동일한 구조의 변주로 재정렬된다.
5) 통일성 확인 선언
문단의 마지막에서 김일렬은 다시 한 번 통일성을 명시적으로 선언한다. 사회적 의미의 경우
“사회적인 불평등에서 야기되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으로 일관되어 있는 작품”
이라는 결론으로 돌아가며, 심리 분석에서는 “네 개의 단락은 心理學的 必然性으로 통일되어 있다”고 단정한다. 힘의 논리를 다룬 문단 역시 “작품의 구조는 이러한 면에서도 일정한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는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문단은 열린 상태로 남지 않는다. 반드시 ‘통일성’이라는 상위 논지로 회수된다.
이와 같이 김일렬의 문단 전개는 우연적이지 않다. 사회적 의미, 심리학적 통일성, 힘의 논리를 다루는 문단들은 모두 ‘표면적 분산의 확인 → 기존 해석의 한계 지적 → 새로운 해석 원리 제시 → 작품 전반에의 적용 → 통일성 선언’이라는 동일한 순서를 반복한다. 이 반복 구조는 문단을 탐색의 공간이 아니라, 통일성을 확증하는 최소 논증 단위로 만든다. 논문을 읽고 수용하는 이는 문단을 읽으며 판단을 하지 않는다. 이미 제시된 판단이 단계적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일렬의 글쓰기는 해체적 설명을 넘어, 구조 자체로 설득하는 학술적 힘을 획득한다.
6. 문단 배열을 통한 구조 증명의 설계 방식
김일렬의 글쓰기는 문장과 문단 차원에서 이미 높은 완결성을 지니지만, 그 설득력은 개별 단위의 완결성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단과 문단이 어떤 관계 속에서 배열되며, 각 문단이 글 전체의 논지와 어떤 위상으로 연결되는가에 의해 결정적으로 강화된다.
1) 문제 제기 문단과 분석 문단의 역할 분담
논문은 처음부터 작품의 통일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평가와 표면적 인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볼 때 이 작품에서는 동일한 문제가 일관성 있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장은 작품의 분산성과 비일관성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이 판단이 이후 논증에서 부정되거나 수정되는 것이 아니라, 글 전체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 조건으로 설정된다는 점이다. 즉, 앞의 문단이 결론을 제시하는 역할이 아니라, 이후 분석 문단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명확히 규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로써 글 전체는 ‘통일성이 있다’는 선언에서 출발하지 않고, ‘통일성이 없어 보이는 이유’를 해명해야 하는 구조로 전환된다.
2) 분석 문단의 병렬 배치 전략
본론에서 사회적 의미, 심리학적 필연성, 힘의 논리라는 세 개의 분석 축을 제시한다. 이때 이들 문단은 시간 순서나 중요도에 따라 배열되지 않는다.
“사회적 의미의 통일성, 심리학적 통일성, 힘의 논리에 의한 통일성이 그 자체로서는 서로 다른 것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구조적 통일성이 지닌 세계의 측면일 것이라는 가설 아래 작품을 분석한다.”
이 문장은 이후 문단 배열의 원리를 명확히 제시한다. 각 분석 문단은 하나의 ‘측면’을 담당하며, 서로를 보완하거나 종속하지 않는다. 문단과 문단은 위계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병렬적으로 배치된 독립적 논증 단위로 기능한다. 이러한 병렬 배치는 독자가 어느 하나의 문단을 ‘핵심’으로 오해하는 것을 방지하며, 통일성을 단일 기준이 아닌 다층적 구조로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3) 반복되는 문단 내부 구조를 통한 독해 학습 효과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각 본론 문단이 동일한 내부 전개 구조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의미, 심리학적 통일성, 힘의 논리를 다루는 문단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른다.
① 표면적 분산 양상의 확인
② 기존 해석의 한계 지적
③ 새로운 해석 원리 제시
④ 작품 전반에의 적용
⑤ 통일성 확인 선언
먼저 작품이 통일되지 않아 보이는 표면적 분산 양상을 확인하고, 이어 그에 기반한 기존 해석의 한계를 지적한다. 다음으로 새로운 해석 원리를 제시한 뒤, 이를 작품 전반에 적용하고, 마지막으로 통일성의 존재를 선언한다. 문단은 이 다섯 단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앞의 논의에서 언급했듯이 이 반복은 단순한 형식적 유사성에 머물지 않는다. 독자는 첫 번째 분석 문단을 통해 이 논문을 읽는 방법을 학습하게 된다. 이후의 문단들은 이미 익숙해진 전개 틀 안에서 빠르게 이해된다. 문단의 배열은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가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식을 미리 규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독해는 자율적으로 확산되지 않는다. 필자가 설계한 경로를 따라가도록 구조화된다.
이와 같은 문단 전개는 우연이 아니다. 사회적 의미, 심리학적 통일성, 힘의 논리를 다루는 문단들은 모두 분산의 확인에서 출발해 통일성의 선언으로 귀결되는 동일한 논증 경로를 반복한다. 이 구조 속에서 문단은 더 이상 탐색의 공간이 아니다. 각 문단은 이미 설정된 해석을 단계적으로 굳혀 가는 최소 논증 단위로 기능한다. 독자는 문단을 읽으며 판단하지 않는다. 오로지 판단이 형성되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일렬의 글쓰기는 해체적 설명을 넘어, 구조 자체로 독자를 설득하는 힘을 얻는다.
4) 문단과 글 전체 논지의 상호 환원 관계
각 문단은 독립적인 결론을 지니지만, 그 결론은 항상 글 전체의 핵심 개념인 ‘구조적 통일성’으로 환원된다.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각도에서 살펴야 .... 구조적 통일성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 심리학적 필연서에 의해 통일되어 있다는 것은... 뜻이 된다.”
“작품의 구조는 이러한 면에서도 일정한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문장은 거의 모든 분석 문단의 말미에서 반복된다. 이 반복은 단순한 문구상의 중복이 아니라, 각 문단의 결론이 글 전체의 결론으로 흡수되는 구조적 장치이다. 문단은 독립적으로 닫히되, 동시에 전체 논증 사슬 안에 편입된다. 그 결과 독자는 어느 문단을 읽더라도, 항상 글 전체의 중심 논지로 되돌아오게 된다.
5) 새로운 주장 없는 재배열
논문의 결론은 새로운 해석이나 추가 논점을 제시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홍길동전』의 구조적 통일성을 찾아내기 위해 작품에 내포된 ... 등을 분석해 왔다. 이들을 순서대로 요약하여 결론으로 삼고자 한다.”
결론 문단은 앞선 문단들의 논증을 다시 배열하고 종합하는 역할에만 충실하다. 이는 글 전체가 이미 본론 단계에서 논증을 완결했음을 전제로 한 구성이다. 결론은 독자를 설득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이미 설득된 해석을 하나의 구조 인식으로 정리하는 단계로 기능한다.
이처럼 김일렬의 글 전체 전개 전략은 문단을 단순히 이어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문단 각각을 동일한 논증 단위로 조직하고 이를 병렬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전체 구조를 증명하는 방식에 있다. 문단은 글 전체의 축소판이며, 글 전체는 문단 구조의 확대판이다. 이러한 설계로 인해 김일렬의 논문은 내용으로 구조를 말하고, 구조로 내용을 증명하는 자기증명적 텍스트로 완성된다.
7. 판단 중심 글쓰기 전략의 효과와 의미
지금까지 본고는 김일렬의 글쓰기를 문장 구성, 문장 전개, 문단 전개, 그리고 글 전체의 구조 전략이라는 네 개의 층위에서 분석하였다. 이 분석의 목적은 개별 기법을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각 층위의 전략이 어떻게 맞물려 하나의 일관된 글쓰기 원리를 형성하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특히 본고가 주목한 것은, 김일렬의 글쓰기가 전 층위에 걸쳐 표면적 분산을 승인한 뒤 통일성을 확증하는 동일한 논증 경로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본 장에서는 앞선 논의를 종합하여, 이러한 판단 중심 글쓰기 전략이 지니는 효과와 학술적 의미를 정리한다.
1) 판단의 조기 확정과 해석의 수렴
김일렬의 글쓰기에서 문장은 사고가 전개되는 과정이 아니다. 문장은 이미 도출된 판단을 조기에 확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명사화된 개념, 판단형 서술어, 지시어 중심의 문장 구성은 독자가 의미를 유보하거나 다른 해석 가능성을 탐색할 여지를 문법 차원에서 봉쇄한다. 이로써 문장은 설명의 단위가 아니라, 하나의 판단을 완결하는 최소 논증 단위가 된다.
이러한 문장 전략은 독자의 읽기 태도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킨다. 독자는 문장을 따라가며 의미를 형성하지 않는다. 대신 문장이 이미 제시한 판단을 전제로, 그 판단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확인하는 위치에 놓인다. 이는 해석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이 아니라, 해석의 방향을 구조적으로 수렴시킴으로써 논의의 초점을 분산시키지 않는 효과를 낳는다. 문장 차원에서 이미 분산의 가능성은 봉합되고, 판단은 하나의 방향으로 굳어진다.
2) 분산의 승인과 확증의 누적
문단 차원에서 김일렬의 글쓰기는 더욱 분명한 전략성을 드러낸다. 문단은 질문을 생성하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표면적으로 분산되어 보이는 현상을 먼저 승인한 뒤, 그 분산이 왜 통일성을 훼손하지 않는지를 단계적으로 확증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결론 선언으로 시작되는 문단, 기존 해석의 한계를 지적하는 서술, 새로운 해석 원리의 제시, 작품 전반에의 적용, 그리고 통일성 확인 선언으로 닫히는 구조는 문단을 하나의 완결된 논증 장치로 만든다.
이러한 문단 전개 방식의 효과는 분명하다. 독자는 문단을 읽으며 ‘무엇이 문제인가’를 다시 묻지 않는다. 대신 이미 승인된 분산이 어떤 논리적 과정을 거쳐 통일성으로 회수되는지를 따라가게 된다. 문단은 탐색의 공간이 아니라, 판단을 굳히는 공간이 된다. 그 결과 논문 전체는 질문과 가설의 흔적을 지운 채, 분산의 승인과 통일성의 확증이 반복적으로 누적되는 텍스트로 구성된다.
3) 구조 자체에 의한 설득
전체 구조 역시 동일한 원리를 따른다. 사회적 의미, 심리학적 필연성, 힘의 논리는 서로를 보완하거나 종속하는 관계가 아니다. 각각은 독립적인 분석 축으로 제시되며, 저마다 표면적 분산을 승인한 뒤 구조적 통일성을 확증하는 문단들의 집합으로 구성된다.
이 병렬 구조의 효과는 통일성을 하나의 해석으로 제시하지 않는 데 있다. 독자는 특정 해석이 옳기 때문에 설득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분석 축들이 동일한 논증 경로를 따라 통일성에 도달한다는 사실 자체에 의해 설득된다. 다시 말해, 이 논문은 내용을 통해 구조를 설명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구조를 통해 내용의 필연성을 증명한다. 통일성은 주장되지 않는다. 구조로 체현된다.
4) 세 층위 전략의 결합과 판단 중심 글쓰기의 성립
문장, 문단, 전체 구조의 전략은 각각 고립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문장 차원에서 판단을 조기에 확정하는 전략은 문단 차원에서 분산을 승인하되 통일성을 확증하는 전개를 가능하게 하고, 이러한 문단들이 병렬적으로 배열됨으로써 전체 구조는 안정적인 설득력을 획득한다. 반대로 전체 구조의 설계는 각 문단과 문장이 수행해야 할 기능을 사전에 규정한다.
이 글쓰기 방식은 하위 단위에서 상위 단위로 의미가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상위 구조가 하위 단위의 기능을 미리 결정하는 하향식 설계에 가깝다. 이 구조 속에서 문장과 문단은 자유롭게 변주되지 않는다. 모든 서술은 오직 하나의 판단, 즉 구조적 통일성을 확증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5) 설명 중심 글쓰기에서 판단 중심 글쓰기로
김일렬 글쓰기 전략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학술 글쓰기의 중심을 설명에서 판단으로 이동시켰다는 데 있다. 기존의 해체적 방법이 분산된 의미를 병렬적으로 제시하는 데 머물렀다면, 김일렬의 글쓰기는 분산을 먼저 승인한 뒤, 그것을 구조 속에서 재배열함으로써 통일성의 필연성을 확보한다.
이는 특정 작품 분석에 국한된 성과가 아니다. 텍스트를 구조로 인식하고, 해석을 판단의 형태로 조직해야 하는 모든 학술 글쓰기에 적용 가능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김일렬의 글쓰기는 분명한 방법론적 의의를 지닌다. 해석의 설득력은 더 이상 설명의 양에서 나오지 않는다. 분산을 어떻게 승인하고, 그것을 어떤 구조로 회수하는가에서 발생한다.
<『홍길동전』의 구조적 통일성>에 나타난 김일렬의 글쓰기 전략은 문장 차원에서 판단을 닫고, 문단 차원에서 분산을 승인하되 통일성을 확증하며, 전체 구조 차원에서 그 확증을 병렬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설득을 완성한다. 이 글쓰기 방식은 독자에게 사고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강력하며, 동시에 구조를 통해 해석의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이다.
결국 김일렬의 글쓰기는 잘 설명하는 글쓰기가 아니다. 그것은 다르게 읽을 수 없게 만드는 글쓰기이다. 분산을 인정하면서도 통일성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이 판단 중심 글쓰기의 원리는, 현대 학술 담론에서 논리적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하나의 유효한 전범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요약
본고는 김일렬의 <『홍길동전』의 구조적 통일성>을 대상으로, 그의 글쓰기가 어떠한 구조적 전략을 통해 학술적 설득력을 획득하는지를 분석하였다. 기존의 해체적 글쓰기가 의미의 분산적 나열에 머무르는 데 비해, 김일렬의 글쓰기는 판단을 중심에 놓고 이를 구조적으로 확증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를 위해 문장 구성, 문단 전개, 글 전체 구조라는 여러 층위에서 그의 글쓰기 전략을 고찰하였다.
분석 결과, 김일렬의 글쓰기는 전 층위에 걸쳐 표면적 분산을 승인한 뒤 통일성을 확증하는 동일한 논증 경로를 반복한다. 문장 차원에서는 명사화된 개념과 판단형 서술어를 통해 해석을 조기에 확정하고, 문단 차원에서는 분산의 인상을 먼저 수용한 뒤 새로운 해석 원리를 제시하여 통일성으로 회수한다. 나아가 사회적 의미, 심리학적 통일성, 힘의 논리라는 서로 다른 분석 축들은 병렬적으로 배열되며, 동일한 구조를 반복함으로써 작품의 구조적 통일성을 입체적으로 입증한다.
이러한 반복 구조는 단순한 형식적 장치가 아니라, 독자의 독해 방식을 사전에 학습·통제하는 전략으로 기능한다. 독자는 사고를 자유롭게 확산시키기보다, 이미 제시된 판단이 단계적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본고는 이와 같은 판단 중심 글쓰기가 설명 중심 학술 글쓰기의 한계를 넘어, 구조 자체로 설득력을 확보하는 하나의 유효한 모델임을 밝히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