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원칙, 본능의 배려

안성재의 심사와 나의 미안함 사이에서 찾은 균형

by 치리공

흑백요리사 시즌 2를 봤다. 순식간에 몇 2화까지 몰아서 봤다. 요리는 잘 몰라서 기억에 남은 게 없다. 정작 지금까지 기억나는 건 심사 과정이었다. 시즌 1에서 백수저였다가 광탈하고 이번에 재도전한 김도윤 셰프에게 안성재 심사위원이 또 탈락을 주는 장면이었다. 안성재 심사시원은 김도윤 셰프를 개인적으로도 알고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지금 당장의 심사는 탈락이라고 했다. 내가 만약 심사위원이었다면 업계에서 영향력이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 사람을 탈락시킬 수 있었을까. 맛이 좀 이상하다 싶어도 ‘이사람만의 의도가 있었겠지. 다음에 더 잘하겠지. 아직 1라운드니까’ 라는 생각으로 합격을 줬을테다. 100%틀린 생각은 아니니까.


어제는 데이터 작업 요청을 할 일이 있었다. 전에 Y님이 해줬으나, 전달에 일부 누락이 있었어서 같은 업무를 또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미안해서 대충해서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의 미간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것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느낄 수 있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빡 왔다. 좀 더 이야기해보며 서로 생각이 다른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미안해서 배려 차 대충 해달라고 했지만, Y님은 대충 하는게 오히려 또다른 문제가 생길까봐 불안하기도 하고 할 때 확실히 하고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재요청을 했던 작업은 VAN가맹점에 업종분류를 붙이는 일이었다. 만약 이걸 대충한 걸로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수습을 잘 하니까 어떻게든 수습을 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좀 지저분했겠지. 대충해도 된다고 말한 건, 다시해달라고 말하는 상황이 민망해서 급하게 만든 배려였다. 그럼 또 다른 문제가 나오고 나는 그걸 다시 수습했겠지.


한 가지 해결책은 다시 세 가지 문제를 만든다. 인생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연속이다. 그간 나의 문제해결방식인 ‘배려위주 / 원칙변경 / 상황수습 ‘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간 나의 방식은 ‘배려’에 비중을 많이 두고 ‘원칙’은 그때그때 바꾸는 식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절한 균형은 잡을 수 있다. 대개 마음이 한쪽에 치우친다면 이성은 반대로 가는 게 인생의 건강한 밸런스를 만들어준다.


방송에서 보이는 안성재 심사위원은 본능으로 원칙을 따르며 이성으로 배려를 하는 사람 같았다. 심사 받는 사람이 미슐랭이라도, 다른 심사위원이 의견이 달라도 자신만의 원칙으로 의견을 말했다. 흔들림 없이. 나라면 최대한 주변 눈치 보면서 심사평을 요리조리 바꿨을 것 같다. 나와 다른 그를 보며 나의 균형을 돌아봤다. 본능이 배려를 향하는 나로서는 적절한 균형을 위해 이성이라도 원칙을 잘 지켜야지. 이렇게 생각하니 Y님이 하자는 대로, 시간 좀 더 써서 정확한 데이터를 받길 잘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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