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군을 바꾼 경력직의 적응기

by 치리공





퇴사할 줄 알았다. A는 유난히 회사에서 붕 뜨는 느낌이었지만 특히 최근 2주 정도는 더 심했다. 뭔가를 하는 사람의 눈빛이라고 할 수 없는 그의 표정은 파티션 너머에서도 너무 잘 보였다. 내가 3개월 육아휴직을 떠나자마자 입사한 그는 타 산업군에서 영업을 10년 정도 해온 경력직이었다. 지금 우리회사가 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분야였지만 영업력이 있고 의욕이 있다고 판단해 회사에서 채용한 사람이었다.

우리 회사 중에서도 특히 우리 부서는 새로 오는 사람을 잘 챙기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기존 멤버 끼리도 안 챙긴다. 영업조직이라 각자 프로젝트 알아서 관리하다 보니, 개인사업자들이 모여 있을 뿐이지 팀으로 시너지가 나는 곳은 아니다. 나도 이런 구조가 꽤나 어색했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새로 입사한 A에게는 힘든 환경이었을 것 같다. 2~6년차 남직원들이 식사도 같이 하며 챙겼다고 들었는데, 막상 그 그룹에 끼기도 어색했던 것 같다. 어느샌가부터 A는 점심시간에 혼자 식사를 즐겼다. 나도 혼밥을 좋아해서 늘 혼자 하고싶은거 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5년 다닌 사람의 혼밥과 입사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의 혼밥은 맥락이 다르다.

이후 A는 혼자 미팅을 많이 나갔다. 그룹장님은 영업 미팅을 권장했고, 실무자가 뭘 하던 크게 터치를 하지 않는 분이라, 본격적으로 영업미팅을 다녔다. 자리를 비우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A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룹장님은 내가 살면서 본 상사 중 가장 간섭하지 않는 사람이다. 덕분에 그는 상사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영업을 했다. 이것은 이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샀다. 나는 딱히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없어 몰랐지만, 같은 실 내 다른 팀장인 B는 A를 수상해했다. 회사 데이터(판매상품)를 잘 아는 것 같지도 않은데 딱히 질문하는 것도 없고, 늘 밖에서 미팅을 한다고 하지만 제안서를 보낸 흔적도 없고. 아무래도 B입장에서는 의심이 들 만도 했다.

A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처음 입사하자마자 방치되어 ‘나보고 뭐 하라는 거지..’ 혼자 생각 많아져서 3개월 간 스트레스 받고, 그룹장님에게 저 이제 나가서 영업하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해서 열심히 다녔을 뿐이었다. 우리 회사는 제안서를 보낼 때 매번 상사의 결재를 받게 되어 있는데, 본인이 여기저기 뿌리는 것 대비 성과가 없었기에 결재를 매번 상신하는것도 민망해서 개인 메일로 제안서를 보냈다. 이후 추가 미팅까지 이어질 것 같으면 A는 내부 보고 후에 일을 진행했다. B가 같은 실 팀장이지만 딱히 직속 상사도 아니니 보고 할 의무도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것이 A의 입장이었다.

A가 입사한 지 8개월인 초겨울 쯤 되었을 때 B팀장은 A에게 “앞으로 미팅 갈 때 같이 가자.” 고 했다. 내가 도울 게 있을 수도 있지 않나는 게 명분이었지만, A는 자신을 감시하는것으로 생각했다. 그때부터 슬슬 둘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부서 회식을 했다. 당시 나는 자리에 없었는데, B와 다른 사람들이 A가 앞에 있는데 다른 저연차의 직원에게 “너 열심히 해서 팀장해야지” 라는 이야기를 한참 했다고 한다. A 입장에서는 ‘나도 있는데 왜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한참 하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며 매우 뻘쭘했고 그때부터 마음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고 후에 말했다.

A는 생각이 많고 방어적인 사람이다. 피드백 하나를 들으면 열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우리 사업실의 알아서 하는 분위기와 B의 피드백은 부정적 생각이 많아지는 걸 가중시켰다. 때마침 A에게 좋은 제안이 와서 그는 퇴사를 결정했다. 경력직 A와 B 팀장 둘 중 누가 잘못했을까 생각하면 딱히 그런건 없다. 새로 온 사람을 방치한 B도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결국 이 상황에서 더 아쉬운 사람은 A고, 아쉬운 사람이 더 애쓰는 게 세상 이치라 생각한다.

A는 다른 업계로 이직을 했지만 적응을 못했다. 나에게 퇴사 소식을 알려주는 자리에서 말하길 IT분야는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런 말 하기에는 너무 공부를 안했다’ 고 생각했다. 이직을 하면 해당 산업에 대한 학습(learning)을 열심히 해야 한다. 책도 읽고 남이 만든 자료도 대충 보는게 아니라, 이게 내일 시험에 나오는 족보라 생각하고 중요한건 외울 기세로 봐야한다. 안타깝지만 A는 학습력이 낮았다.

게다가 언러닝(Un-Learning)이라고 하는것. 즉 자신이 다른 산업에서 알고 있던 것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그는 내부 메일을 보낼 때마다 결재시스템에 등록 하는 걸 부담스럽고 불편해했지만, 우리 회사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었다. 메일 발송 결재 상신을 쉽게 간과할 게 아니었다. 내가 이해안되는 무언가를 다들 하고 있다면 이유가 있거나 아니면 중요하게 여겨서 그렇다.

또 다른 예로는 내가 회의록 작성을 부탁했는데, 그가 포스트잇에 회의 내용을 정리해 적어서 준 적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노션, 워드, 한글 등을 생각했으나 포스트잇이 와서 많이 당황했다. 중요한 내용은 다 적혀 있었지만 ‘이게 뭐지?’ 생각하며 다시 그것을 타이핑해 메일로 보고했다. .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었고, 계속해서 작은 비효율이나 어색함이, 생겼다. 경력직이라 차마 말하기가 그렇네 라며 매번 넘기다 보니 어느새 그와 일하는 게 불편하고 힘들었다. 작은 실금이 유리를 깨는 법이다.

언러닝이 러닝보다 더 어렵다. 모르는 건 인지가 되지만,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이게 틀렸을 수 있다는 걸 감지하기 어렵다. 만약 나였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입장 바꿔 내가 A가 오래 일하던 산업군으로 이직을 했다면 나의 모든 행동이 남들에게는 어색하고 난 모를텐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여러 사소한 방안이 생각났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1) 친절한 사람에게 감사표시를 많이 하며 당연하다고 생각되는것까지 계속 물어보고, 2) 이직 초반에는 기존 사람들과 사소한것까지 비슷하게 행동하고, 3) 누군가가 흘러가는 말처럼 툭 던지는 조언도 최대한 반영하고 알려주는것. 다 내가 A에게 은근히 바랬던 것들이다.


다행히 A는 제안을 받아 회사를 옮긴다. 제안을 받아 옮기는 걸 보면 전 직장에서는 일을 잘했던 것 같다. 역시 사람이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개인의 능력도 있겠지만, 회사와 궁합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 여기가 안 맞았을 뿐이지 그는 다시 돌아간 본인 섹터에서 잘 해낼 것 같다. A가 이직 후 겪은 일련의 과정을 바로 옆에서 보며 같이 연차 쌓이는 입장에서 러닝과 언러닝을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A가에게 새로운 시작을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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