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문구

by 열목어


그날은 평소와 다른 길로 집에 돌아가면서 제법 걷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그리 가게 한 것인지, 그날은 걷고 싶었고 다른 풍경을 보고 싶었고 다른 분위기를 맡고 싶었나 보다. 보도블록의 규칙적인 무늬도 새록새록 밟혀오던 날이었다. 버스정류장을 향하다가 '중고책 1,000원', 쇼윈도 바깥에 너풀거리는 바랜 A4용지에 발길을 멈추었다. 루틴을 벗어난 센티한 날에는 시간이 따신물에 풀어지고 어디든 조용히 바라보면서 앉고 싶은 곳에는 앉아보는 마음이라 오랜만에 오래된 책의 달큰하고 케케 한 초콜릿 냄새를 맡으면서 보이지도 앉는 책먼지에 잔기침도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들어선 책방, 직사각형의 벽면에 휘어진 MDF 책장 선반들이 저마다 무겁게 책의 무게를 꽉꽉 받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서 골방에 들어 자기 세계와 붙어 앉아 긴 시간을 씨름했을 터였겠지만 이제 멋으로 소비되는 패션의 거리에 누렇게 뜬 책들은 익숙하고 진부한 지적 허영의 묶음 단위로 세일되고 있었고 다시 봐서 그런 건지 어쩐지 현학적으로 보이는 인상을 한 중년이상의 사람들이 보세옷을 집어내는 손길로 책장을 뒤적여보고 있었다. 나는 키순서를 무시한 채 꽂혀 있는 시집 코너 앞에 서서 시를 모르지만 시인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호객성이 짙은 제목의 시집을 펼쳐보면서 금세 거의 다 잊힐 이런 글 조각들 중에 그래도 하나는 남겨 버스에 오를 그런 한 줄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짧은 권태감이 찾아왔을 때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고 들어올 때 예감한 것처럼, 아니 이렇게 되어야 오늘의 퍼즐 한 조각이 완성될 거라는 암시처럼, 사람은 누구나 이런 맛으로 우연을 가장하면서 호들갑스러워지는 뭔가를 창조하는 재미라도 있어야 사는 것처럼, 그렇게 다시 만난 이름.

이문구.



아! 이문구.

어떤 이름인가.

아직 이십여 년은 되지 않은 과거의 어느 때, 이름만 들어오던 '관촌수필'이라는 책을 접하고 사람들이 '자세를 고쳐 앉는다'는 말을 하는 이유를 알게 한 이름이다. 시선을 옮겨 다른 책장에서 눈을 멈춘 자리에는 '우리 동네'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었고 거기에는 이문구라는 이름 세 글자가 적혀있었다.

'우리 동네'

이 소설을 한 번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두 번 읽지는 않았지만 집의 책장 가운데서 언제나 든든한 존재감으로 빈곤한 독서이력의 한 축에 임플란트처럼 굳게 박힌 '관촌수필'의 좋은 형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나를 잡아끌었다.

아마도 아메리카노 한 잔의 평균 가격이 안될 거금 2,000원을 들여 책을 구매하였다.

빅테크 AI패권과 블록체인 가상코인이 누구를 떼부자로 만들어 주고 있는 21세기의 사반세기를 넘은 지금의 현실에 70년대 후반 농촌의 생활상을 그린 책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 그 연결고리를 찾기 쉽지 않았으나 그 시절은 나의 고향, 그 시절은 나의 시작이었기에 공간과 시간의 원형으로 거슬러 발원지에 닿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우리 동네' 소설은 관촌수필과 마찬가지로 연작소설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충청도의 농촌, 가상의 면소재지와 그 산하의 리단위 행정구역들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동네의 인물들을 각 단편의 주인공으로 삼아 전체 소설의 그림을 그려낸다. 단편의 주인공들은 김 씨, 리 씨, 최 씨, 정 씨 등으로 대표되는 장삼이사 필부필부이며 이들이 바로 70년대 근대화를 몸소 겪는 당사자이자 국가주도 계몽 운동의 물살 속에서 농촌 공동체를 지켜가는 사람들이다. 각종 전자제품들이 농촌으로 들어오고 사람들의 여가 활동의 양상도 바뀌어가면서 옛 정서와 불어닥친 현재의 정서가 부딪치고 도시화의 물결에 힘입어 이문에 빨리 눈뜬 사람들과 그들이 잇속으로 벌인 일들에 어리숙하게 당하고 또 당하던 사람들도 차츰 약게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해 간다. 군면 단위의 감투와 완장이 지도 시범사업의 공과를 논공행상할 때 체면과 아첨이 교차하고 겉치레와 속셈이 엮이는 와중에도 충청도 특유의 빙빙 돌아가는 간접화법과 구수한 사투리는 그 모든 갈등을 느긋하게 어루만지고 고르게 해주는 상당히도 훌륭한 소통의 방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흙에서 소출을 이루고 소박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상공업 장려와 부동산 광풍에 휘말리고 지도사업의 일환으로 파종하는 벼의 품종을 제한받고 정책에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추곡수매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게 된다. 봄부터 가을까지 쉼 없는 노동으로 일관해도 자기 땅 몇 마지기에 쌀 몇 가마, 한 가마에 또 얼마얼마의 값어치가 매겨지기는 하나 그 가치를 공산품과 비교해 보면 그저 입에 풀칠하고 살아간다 뿐이지 도농의 격차는 날이 갈수로 벌어지기만 하는 그즈음이었다. 한 국가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농촌이 희생당한 것은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현상은 아니었기에 예외 없이 가난과 비애는 농촌을 지킨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남은 비교의 몫이었고 커가는 열등감을 '농자천하지대본'의 당위성으로 위안하기엔 그들에 대한 대우가 실로 팍팍하였던 것이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넓은 영역에 걸쳐있다.

병충해 방지사업으로 농약 사용이 장려되는 분위기 속에서 어떤 이는 농약 중독으로 쓰러져 생사를 오가고 흔히 보던 메뚜기와 여치, 우렁이와 가재도 사라지면서 사람들 사이에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싹튼다. 마을회관 옆 큰 나무 꼭대기에선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온 지도편달의 명령조와 근면 자조 협동의 멜로디가 군대 문화의 부속물처럼 딱딱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큰길 옆에서 보이는 건물들은 형식적으로라도 페인트를 칠하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놓아야만 군수님 행차길에 근대화 마을의 자부심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 시골을 벗어나 보겠다던 이 집 저 집의 아들딸들은 공장에서 저임금으로 생활하면서 노동조합의 논리에 동화된 치도 있었거니와 마을 아낙네들의 부녀회는 수익사업에 골몰하고 부락에는 가끔씩 전국 팔도유람의 관광차가 설악산, 지리산으로 출발 시동을 걸어놓고 섰는데 농협에 나락 판 대가로 땀을 바치고 푼돈을 만진 남정네들은 에라 모르겠다는 성질에 요릿집 술추렴에다가 아가씨를 앉혀놓고 어찌어찌해 볼 요량으로 변두리 숙박업소를 전전하기도 한다. 서울 어디로 시집갔다던 누구 집의 딸은 명품 두르고 자가용 타고 고향에 내려와 사람들 부아를 지르다가 망신살이 뻗치고 수재민 돕기 성금 및 물품 모으기 사업에 입던 팬티를 내놓았던 구두쇠 황 씨는 마을 사람들을 어수룩하게 보고 매점매석했던 젓갈을 팔아먹으려다 마을에서 된통 돌려놓아지는 것이다.

실로 작가의 관찰력과 이해의 깊이가 빛나는 문장들이 빼곡하게 가득하기도 하다. 면단위 정도의 마을을 표본으로 한국 농촌의 포괄적 실상을 꿰어 모순과 불합리를 드러내며 산업화 과정의 부득이한 측면 아래에 가려진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 가면서 이들을 동정해 달라는 것이 아닌, 읽는 이들에게 너희들의 본류와 너희들의 고향이 어디부터 왔는지 근본을 똑바로 쳐다보기나 하라는 준엄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작가가 다루는 문제의식과 주제, 그것을 받치는 소재들 모두 표면적으로 제법 무거운 것들이다.

아! 그러나 이리도 비판적인 소재와 안타깝고도 애틋한 사건들 속을 힘찬 조류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이 소설 속 인물들의 해학과 풍자다.


"너 찍소리라도 한마디만 더 하면 뒈질 줄 알아라"


그러면 듣던 이가 쓱 쳐다보고 이런 식으로 한마디 하는 것이다.


"찍!"


그래 내뱉었으니 어쩔 거냐는, 죽일 테면 어디 죽여봐라 하는 것.

공맹을 끌어다가 손바닥에 얹어놓고 청산유수로 법과 도리를 얘기하지만 또 한 순간에 비틀어 재껴 상대방의 허를 찌르거나 갑자기 보도 듣도 못했다는 식으로 나자빠지는 엉뚱한 회피, 알고도 모른척하고 모르고도 아는척하는 성동격서의 기민함까지 실로 말의 모든 기술이 다 담겨있다 할 정도로 비유와 인용, 묘사가 대단하고 의성어, 의태어등도 놀랍도록 풍부한 이 충청도의 속에 흐르는 반항과 익살의 힘은 정말 무지무지하게 웃겨서 책을 읽다가 잠시 덮고 한참을 낄낄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는 이문구 작가의 고향이 충청도라는 사실에 기인하지만 고향의 언어를 이렇게도 맛깔나게 사용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이며 그 이상으로 평가해야 할 부분은 향토성 가득한 방언을 끝까지 놓지 않고 밀어 간 작가의 필력이라 할 것이다.

당시의 유행이나 짜장면값, 쌀값, 공장 말단 사원의 임금 등에 비추어 현대의 생활양식의 변천과 화폐 가치, 물가에 대한 비교 이해는 소설을 읽는 맛을 더해주는 양념이다.

'관촌수필'을 읽고는 갯벌을 모르고 자란 내가 안타깝다는 느낌이 선연히 남은 것처럼 '우리 동네'를 읽고는 이와 같은 골계미의 장인들 속에 있어보지 못한 나의 일천한 경험이 안타깝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였다.



고래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 근본적인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을진대 몰아닥치는 변화의 물결은 언제나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을 바람에 먼저 눕는 들풀로 만들어 버리지만 그건 또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미련과 뚝심을 키워내며 강하게 불면 불수록 거기에 대응하는 질긴 면역 인자를 심어내는 이면으로부터의 반작용을 낳아왔다.

역사 연대기표를 가로든 세로든 그려놓고 우리가 살아가는 몇 mm의 구간을 놓고 보자면 얼마나 큰 바람들이 불어닥쳤나. 어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여 이란의 최고 지도자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떴다. 국제사회의 질서라는 것도 점점 체면도 염치도 없어지는지 노골적인 약육강식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첨단과 첨단도 좋지만 사람은 땅에서 난 것을 먹고 살아가는 유기체에 다름 아니며 돈이 무어든 다 해줄 수 있는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도 스스로의 정서와 그 범위와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이 고독감과 무력감을 이겨내고 삶에 대한 의미를 긍정적으로 부여해 줄 친근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이 재미있는 소설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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