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웨딩마치
주로 라디오를 들을 때 일어나는 일.
흘러나오는 음악에 매료되었는데 그 음악을 다시 듣고 싶어도 가수나 연주자도 모르고 제목도 모르는 상태.
그런 경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중고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의 도입부에 어떤 원주민의 노래라고 해야 할지 또는 흥얼거림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를, 주술적이라고 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인터넷이 없는 시절이었다.
기억에 남아있는 멜로디를 붙들고 음악을 좀 즐겨 듣는다는 사람들 앞에서 나 역시 그 멜로디를 흥얼거려 가며 혹시 이런 곡 아느냐고 묻고 다니던 민망한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비효율적인 방법으로도 마침내 뮤지션을 찾아내었고 앨범도 구하게 되었으니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찾아낸 노래는 Enigma의 Return to innocence라는 곡이었다.
https://youtu.be/Rk_sAHh9 s08? si=FIQBQe49 CaZMV9 hO
몇 해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 무심히 라디오를 듣던 중에 유럽풍의 민속적인 바이올린 선율이 무척 아름다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 선율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리워지면서 꼭 찾아서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길목 지키기에 들어갔다.
길목 지키기란 다름 아니라 라디오를 들을 때 조용한 연주곡을 주로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듣는 것.
얼마나 걸렸을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클래식 FM의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이 연주곡을 다시 듣게 되었다.
연주자와 곡의 이름을 찾아 메모해 두었다.
연주자 ㅡ Susanne lundeng.
곡명 ㅡ Jeg ser deg, søte lamm
이 노르웨이 연주자의 음악들을 한 동안 들었다.
며칠 전,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평상시와 같이 별생각 없이 스트리밍 어플을 열고 살펴보다가 문득 조용한 연주곡을 듣고 싶어 다시 이 노르웨이 출신의 연주자를 플레이리스트에 걸게 되었다.
템포가 빠른 음악들을 스킵해 가면서 몇 개의 앨범을 플레이하다가 문득 내가 이 뮤지션의 음악 중 좋게 느끼는 곡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공통점은 제목에 bruremarsj라는 단어가 들어있다는 것.
노르웨이는 각 지역마다 전해 내려오는 bruremarsj가 있다. 예를 들어 Bruremarsj fra Sørfold라고 하면 Sørfold 지역의 bruremarsj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과 같은 느낌이랄까.
bruremarsj(브루레마르쉬)는 노르웨이어로 '신부의 행진'을 뜻하는 결혼 행진곡이다.
행진곡이라고 하면 신부가 입장하거나 마을로 이동할 때 행진의 배경이 되거나 행렬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곡이라서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으로 부부의 앞날을 축하해 주는 선율을 지녔으리라 짐작하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bruremarsj는 그렇지 않았다.
https://youtu.be/QaR09 RmrxUQ? si=CzIvjnvb8 q7 sa4 RM
이 곡들은 밝기보다는 무거우며 비애감마저 지닌 애잔한 감정을 담고 있다.
마치 부부가 걸어가야 할 길이 늘 평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듯, 맑고 흰 꽃빛에서 어둡고 짙은 황혼으로 향해가는 여로에 다름 아니라는 듯, 인간의 삶도 역시 본질적으로 누구나 같은 궤적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듯.
생각해 보면 나는 우연히 마주친 사물놀이 공연에 다른 이들 보다 더 오랫동안 발길을 멈추었고 판소리 음반을 사러 다녔고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와 같은 구전 녹취를 들었을 때 아련함을 느꼈다.
이는 꼭 우리 음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외국 음악을 접했을 때도 그 나라의 민간에서 전래되어 온 단조로운 멜로디에 마음이 움직이는데 아마도 그들의 역사와 선대의 삶과 죽음이 음악 속에 섞여있는 느낌을 받는 듯하다.
나에게는 팝적인 것들의 뒤에 가려져있는 민속적인 선율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었나 보다.
이것이 내가 베토벤, 모차르트의 심퍼니보다 부르흐의 스코티시판타지를 자주 듣는 나도 몰랐던 이유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나의 기호를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