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차

白茶

by 열목어


백차는 차나무의 잎을 가열하거나 비비지 않고 그대로 말려서 만드는 차로 주로 중국 복건성의 복정 지역에서 생산된다.


삼십 대 초반에 인연이 있던 지인에게 백차를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본래 나는 차를 마시는 습관이 없었지만 선물한 성의를 아껴 일부러 꺼내어 마시곤 했다.
내 기억엔 가지고 있던 茶들 가운데 끝까지 소진한 유일한 차였던 듯싶다.
백차의 맛은 제다(製茶)의 방식에 연유하여 여타의 차보다 담백하고 은은한데 어찌 보면 심심한 느낌이 들 정도여서 초심자들은 그 맛을 알기까지 몇 차례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며칠 전 우연한 기회에 기억에만 남아있던 백차가 내 손에 들어왔다.

어떤 이가 나의 지인에게 선물한 것인데 나의 지인도 차에 관심이 없는지라 어찌어찌 나에게까지 오게 된 것이다. 받아보니 백차라는 것은 알겠는데 포장의 겉면에 크게 貢眉(공미)라고 되어있다.
백차는 백차인데 공미는 또 무엇인지......



백차는 싹을 따느냐 싹과 잎을 같이 따느냐, 또 어떤 시기에 따느냐에 따라서 백호은침, 백모단, 공미, 수미 이렇게 네 단계로 나뉜다.

백호은침(白毫銀針)은 싹으로 만들며 싹의 흰 털이 하얗게 빛나는 모양에서 이름하였고 가장 연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
백모단(白牡丹)은 하얀 모란과 같다는 의미이고 싹과 잎이 섞이는 단계인데 백호은침보다 담백함은 덜 하지만 맛이 더 짙어진다.
공미(貢眉)는 잎의 비중이 싹보다 높아진다. 이렇게 채엽의 단계가 낮아지면서 주로 시간을 두고 발효를 거쳐 노엽차로 마시는데 발효의 풍미와 단맛이 강해진다.
수미(壽眉)는 싹보다는 거의 잎과 줄기로 만들어지며 공미와 마찬가지로 발효를 거쳐 노엽차로 마시며 발효의 과정과 환경에 따라서 깊고 풍부한 맛을 낸다.
일반적으로 나열한 순서로 가격대가 형성되나 맛이라는 것은 엄연히 취향의 영역이라 무엇이 더 좋고 좋지 않다는 말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가열하지 않고 그대로 말리는 제다 방식에 사람의 상상력을 더해 그늘에서 말리는 것을 넘어 어떤 경우에는 달빛에 말린다고 하여 월광백(月光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있다 하니 우리의 그네들에 대한 '과장의 의심'을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섬세함의 세계다.
"一年茶 , 三年藥, 七年寶" (백차는 일 년이면 차, 삼 년이면 약이고 칠 년이면 보배다.)라는 말은 내려오는 말인지 어느 상인이 지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글자 읽기를 좋아하는 우리네들에겐 영원한 주제인 시간의 개념이 깃든 형식미가 느껴진다.

세상은 부여한 의미의 세계라는 관점에서 수많은 차들 중에서 오직 백차의 영역에도 여기에 미처 적지 못한 많은 얘기와 호기심과 검증과 성취가 있다는 점에 다시 한번 지식이라는 것과 지식을 마주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손에 차를 받아 들고 살펴보다가 예전에 이런 배경을 모르고서 그저 담백하고 은은한 맛에 나름대로 약간의 감탄을 하며 백차를 마시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백차는 뭉쳐져 발효된 상태가 아니었고 지인이 나에게 건네면서 지역의 특산이고 귀한 것이라는 설명을 거듭 덧붙였던 걸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백호은침이나 백모단이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오늘, 층차가 여러 단계인 茶들 앞에서 내게 좋은 걸 골라주었을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부엌 수납함 어디엔가는 아직 있을 찻잔을 찾아 진설해 놓고 물을 끓여 온도를 맞추어, 우러나는 시간을 지켜가며 백차를 마실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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