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진 순간에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학창시절, 100미터 달리기 대회만 나가면 늘 5등이었다.
총성이 울리기도 전에 이미 달려나가는 이들이 있었고, 나는 언제나 한 발 늦게 출발선에서 몸을 떼었다.
1등은 환호를 받고, 꼴등은 응원을 받았다.
그사이 어정쩡한 5등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나는 늘 그 자리에 혼자 숨을 몰아쉬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뒤처짐의 자리, 그것은 내 자리였다.

돌이켜보면, 그 자리는 내 인생과 닮아 있었다.
앞서가지도, 완전히 뒤처지지도 못한 채, 늘 한발 늦고 숨 가쁘게 따라붙는 인생...
공무원 시험에서도, 직장에서도, 결혼에서도 나는 언제나 남들보다 한 발 늦었다.
세상이라는 트랙에서 나는 늘 그렇게 뒤처져 있었다.
노량진의 창문 없는 고시원, 세 번의 불합격, 부모님의 기대와 대출금은
나를 결박했고 숨조차 고르지 못한 채 버티게 했다.
때론 부끄럽고, 때론 초라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뒤처진 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우연히 한옥이라는 낯선 집에 발을 들이며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달리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 너무 앞만 보느라 듣지 못했던 것들이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게 합격하고, 늦게 인정받고, 늦게 웃었던 인생.
그러나 늦음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바람 소리,
뒤처짐 속에서만 마주하는 고요가 있었다.
그 고요는 때로 한옥의 낡은 기둥이 되어 나를 지탱했고,
상담실에서의 위로가 무너진 벽을 세웠으며,
글쓰기는 다시 걷게 하는 발이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인생의 중요한 것은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트랙을 벗어나지 않고 내 방향을 지켜내는 것임을...
늦더라도 나만의 결승선을 향해 끝내 달려가는 것...
그 과정에서 나는 에서 좌절하기도, 일어서기도 하며 계속 회복해 나갔다.
늦어도 괜찮다.
내 속도로 걸어간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글은 그 늦음 속에서 발견한 풍경과,
뒤처진 자리에서 시작된 회복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