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의 봄

친구와 함께 한 바다

by 천세곡

흘러가 버린 시간만큼 나를 채우고 있었던 많은 것들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독서실에만 앉아있었더니 건강은 예전 같지 않았다. 계속되는 불합격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얼굴에 웃음기도 사라진 지 오래다. 모아두었던 얼마 안 되는 돈도 사라져 갔다.


가장 밑바닥을 드러낸 것은 '나'라는 존재 자체였다. 공부하는 기간이 늘어나는 것과 정비례하여 내 자존감은 낮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아지니 자연스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 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수험생인 내 모습 그대로 사람들 앞에 설 자신이, 아니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잊는 것'이었다. 특히나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왔던 친구들은 모두 내게 소중한 존재였지만, 합격할 때까지만 그들을 잠시 잊고 살기로 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착각이었음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준비했던 모든 시험에서 낙방했고, 더 이상 수험 생활을 지속해 나갈 그 어떤 힘도 남지 않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하여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집에 혼자 틀어박혀서 보내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고등학교 시절, 나를 위해 함께 노래방을 열심히 다녀 주었던 친구의 전화였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로 다들 바빠져서 연락이 뜸해졌을 때도 잊지 않고 늘 먼저 전화를 걸어주었던 친구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


-고생 많았어. 다음 주에 바다나 보러 가자.


친구가 건넨 첫마디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동안 연락을 피했는지, 시험은 어떻게 되었는지 친구는 내게 묻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날 걱정하면서도 행여나 부담이 될까 그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참을 달려 바다에 도착했다. 느지막한 겨울의 끝에서 우린 바닷가에 섰다. 저 멀리 수평선 아래로 지고 있는 태양을 함께 바라보니 있으니 친구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정신없이 사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왔다.


한동안을 아무 말 없이 함께 서있었다. 석양이 바닷물 위에 눈부시게 스며든다. 온통 파랬던 바다가 붉게 물들고 있다. 새파랗게 얼어있던 내 마음에도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 스며들고 있었다.


바닷속으로 지고 있는 태양과 함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처럼 길었던 나의 수험생활도 함께 말이다. 겨울은 봄이 와야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