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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Aug 15. 2024

길어진 여름, 많아지는 여름옷

이 맘 때가 되면 여름옷들은 세일에 들어간다. 예전 같았으면 거들떠도 안 봤을 터인데 올해는 관심을 가지고 어디가 더 많이 할인해 주는지 찾아보게 된다. 입추도 이미 지나갔건만, 더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며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집 근처에 탑텐 매장이 생겼다. SPA브랜드로 가격 대비 품질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가끔 구매하곤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옷이 필요하면 주로 유니클로에 갔었다. 노재팬 바람이 불면서 나도 발길을 끊었더랬다. 대체재로 선택한 브랜드가 탑텐이었다.


스파오도 괜찮은 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탑텐이 더 나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파오의 주 타겟층은 10대에서 20대의 젊은 층이었다. 40대인 내가 소화하기에는 버거운 스타일들이 꽤 있어 포기했다.


노재팬 운동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한 때 주요 매장들이 문을 닫으며 바닥까지 추락했던 유니클로는 예전의 명성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럼에도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애국심이 유별나서가 아니다. 그새 몸에 길들여졌는지 유니클로 대신 입었던 탑텐 옷이 더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탑텐이나 스파오 같은 국내 SPA브랜드들 보다는 유니클로가 훨씬 더 나았다. 특히 소재 면에서 차이가 컸다. 예를 들면 두께를 얇게 만든 히트텍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어차피 내복에 불과한데 촌스러움은 덜어내고 기능성을 높여 스타일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보온성이 뛰어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젊은이들을 포함한 모든 연령층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국내 브랜드들의 퀄리티도 유니클로 못지않게 좋아졌다. 애국심 하나 없이 생각해 봐도 막상막하라는 생각이 든다. 발열내의뿐만 아니라 여름철 냉감 소재의 옷들까지 광범위하게 있어 선택의 폭도 더욱 넓어졌다. 그러면서도 디자인은 유니클로보다 트렌디한 편이다.


며칠 전 백화점에 갔다가 탑텐 매장에 들어서니 반바지가 9,900원으로 세일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올해 여름 시작할 때 구입해서 잘 입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가격이 싸서 어머 이건 또 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색상으로 골라 담았다. 거기에 반팔 티셔츠도 1+1 행사를 하기에 추가로 담았다.


계획에 없던 소비였지만, 여름 막바지 세일로 가격이 무척 착해서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아직도 무더위가 한창인지라 지금 사도 충분히 잘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정도면 내년 여름까지도 끄떡없을 듯하다. 


계산을 하고 나서는데 매장 절반 가까이 벌써 가을 옷들이 즐비하다. 보통 패션 쪽은 한 계절씩 앞서가는 게 국룰이니 F/W시즌 의류들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올해 여름이 유독 무덥고 길게 느껴서인지는 몰라도 눈앞에 걸려 있는 가을 옷들이 영 낯설다.


그동안 8월 중순에는 여름옷을 잘 사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구매한 여름옷들은 다시 생각해 봐도 잘 산 것 같다. 도무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는 뜨거운 태양. 원래 여름이 이렇게 길었던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 시점에서 새롭게 구입한 이 옷들이 나를 시원하게 지켜줄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여름이 가장 길다. 그리고 해가 거듭 될수록 여름은 더 빨리 찾아와 더 늦게 떠나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옷장 속을 제법 차지하고 있었던 봄가을 옷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여름옷들이 대신 채우고 있다. 


길어진 여름은 단순히 더운 날이 많아졌다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지구의 온도가 올라갔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에 갑자기 씁쓸해진다. 여름옷을 싼값에 득템 했다고 좋아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옷을 싸게 샀다고, 구입한 옷을 며칠 더 입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좋아할 때가 아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옷값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이상 기후 현상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날씨 앱의 기온이 섭씨 36도를 가리킨다. 체온과 같은 공기의 온도. 모두가 고통스러운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는 중이다. 우리가 더운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지구도 덥다는 신호일 것이다. 덥다고 불평만 할 때가 아니다.  긴 무더위가 주는 메시지에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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