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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Oct 20. 2024

친구 '본인상' 소식 들은 아내, 눈이 퉁퉁 부었다.

동료가 먼저 떠나갈 때... 죽음은 항상 곁에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제게 안 좋은 소식이 있는데, 당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갈까 봐 걱정이에요."



며칠 전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최근 우울증으로 치료 중인 나를 위한 그녀의 배려다. 내가 혹시 기분이 다운되거나 놀랄까 봐서 미리 늘 조심해주는 아내가 고맙다.



나는 괜찮으니, 소식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이미 예고를 해준 거라 괜찮을 듯해서다.



하지만 이어 날아온 아내의 메시지는 놀라고 말고 할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한때 아내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A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작별 ⓒ a_sobotyak on Unsplash




내가 알기로 몇 년 전 어떤 일을 계기로 둘의 관계는 소원해진 상태였다. 간혹 연락을 주고받던 것마저 최근 들어 거의 끊어지다시피 된 듯하다. 아내에게 듣기로는 어렸을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 사이임에도, 성격과 가치관에서의 차이가 무척 크다고 했다.



오랜 친구 사이지만 결국 감정의 골이 깊어져 최근에는 서로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러다 갑자기 어제 친구 A의 번호로 아내에게 부고 문자가 왔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남동생이 보내준 것이었다.



문자를 받은 아내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눈물 많은 아내는 연락을 받자마자 펑펑 울었을 게 분명하다. 나도 이렇게 놀라고 먹먹한데, 아내는 오죽할까.



퇴근한 후 집에 온 아내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운전을 못 하는 아내를 대신해 장례식장에 데려다주었다. 다행히 30분 정도의 거리였다. 친분이 없는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아내를 들여보내고 나서 장례식장 주변을 걸었다.



가을밤의 바람이 유독 더 차갑게 다가온다. 유족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따라 보름달은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꼭 이렇게 일찍 데려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지, 신에게 묻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친한 친구를 잃은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그 친구가 떠난 지 5년이 지났다. 마흔을 앞둔 5년 전 겨울, 나는 다른 친구로부터 그 친구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아직도 문자 내용이 생생하다.



"부고, ㅇㅇㅇ본인상"



부고라길래 친구의 부모님인 줄 알았는데 '본인상'이라는 글자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인한 사망이었다고 했다. 참으로 허망하고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당시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아들을 먼저 보낸 부모와 남편을 잃은 아내가 넋을 잃은 채 울고 있었다. 말 그대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지만 갑작스러운, 게다가 젊은이의 죽음에는 슬픔 그 이상의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이 함께 얹어져 있었다.



아마 아내의 마음도 그때의 내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한없이 슬프고, 먼저 자주 연락해 만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영정사진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절망감과 후회가 몰려와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 테다.



앞으로 올 더 잦은 이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아내도 나도 가장 친했던 친구를 먼저 떠나 보냈다. ⓒ 언스플래쉬




조문을 마친 아내가 나왔다. 예상대로 아내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친구 가족들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다고 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본인이 위로를 해드려도 모자란데 되려 친구 어머님께서 다독여 주셨다고 한다.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더 눈물이 났다고 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몇 마디 말로는 해소될 수 없는 슬픔인 걸 알아서 너무 애쓰지는 않았다. 시간이 약인 걸 알기에 더욱 그랬다. 친구를 떠나보내는 경험을 최대한 늦게 하길 바랐는데 아내에게도 친구와 영원히 이별하는 때가 이렇게 오고야 말았다.



아내 친구 A의 사인은 암이었다고 한다. 희귀 암 진단을 받고서 치료를 받던 중, 다른 장기로 전이가 심해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고. 며칠간 손도 쓰지 못하고 요양병원에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앞으로 더 많은 죽음들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려왔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계속 이별을 맞이해야만 한다. 아내도 나도 소중한 이의 죽음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조금씩 더 자주 우리를 찾아올 이별들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싶었다.



어쩌면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 번호표를 쥔 채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닌가 싶다. 인지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인정하기 싫을 뿐,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누가 먼저일지는 모른다. 분명한 건, 자신의 순서가 언제 찾아올지 모를 미지의 번호표를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한동안 아내는 친구를 애도하면서 보낼듯하다, 그동안 쌓아왔던 미운 정과 고운 정이 무뎌질 때까지.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제서야 조금 익숙해지겠지.



장례 절차가 끝날 때까지 나 역시, 아내의 친구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지내려 한다. 준비하지 못한 이별에 계속 후회만 들지 않도록 충분히 그런 시간을 함께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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