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 50대, 부양의 끝단에서 홀로서기를 준비하다

50대는 외롭지만 강인한 세대다

by 박지숙

"엄마, 요즘 애들은 결혼해도 애 안 낳는 게 당연하대요."


대학생 아들이 툭 던진 이 한마디에 밥을 먹다 말고 잠시 숟가락을 멈췄다. 내가 살아온 세상과 내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 사이의 거대한 간극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 그 중간 어디쯤, 이른바 '낀 세대'라 불리는 50대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나의 50대는 여전히 '부양'이라는 단어와 맞닿아 있다. 여전히 자라나는 두 아이를 뒷바라지해야 하고, 동시에 연로하신 부모님을 챙겨야 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워킹맘 시절은 치열한 사투였다.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키우고, 그 고마움에 정성을 다해 모시며 살림과 일,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투잡을 뛰고 잠을 줄여가며 가계의 보탬이 되었던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내 노후를 돌아볼 여유조차 앗아갔다.


하지만 지금의 20대, 우리 아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에게 부양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며, 심지어는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가 되었다. 각자도생의 시대,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무한 경쟁 속에서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풍경은 이제 고전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희미해져 간다. 사회적 흐름 또한 '효(孝)'라는 가치보다는 '각자의 독립된 삶'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물살을 틀었다.

​남편은 벌써 단호한 선언을 한다. "나중에 아이들 애 봐줄 생각도, 같이 살 생각도 절대 없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찾고 싶어 하는 남편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내가 그 힘든 세월을 겪어냈기에, 내 아이들이 겪을 고단함에 기꺼이 손을 내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마지막 소임이라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낀 세대의 가장 큰 모순과 마주한다. 나는 아이들을 도와줄 마음은 있지만, 정작 내가 아이들에게 기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니, 사실은 기대고 싶어도 기댈 수 없는 시대임을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는 예감, 그리고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할 첫 세대가 될 것이라는 확신.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 50대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80세까지 현역으로 뛰기로. 박사 학위를 따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나를 갈고닦은 것은, 단순히 커리어를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가장 처절하고도 숭고한 노후 준비였다. 남편과 나는 이제 서로를 의지하며 홀로서기를 준비한다. 아이들에게 기대를 거는 대신, 내가 가진 전문성으로 내 노년의 존엄을 지켜내려 한다.


​지금 50대는 외롭지만 강인한 세대다. 부모 세대의 유교적 가치관과 자녀 세대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기꺼이 완충지대가 되었다. 우리는 헌신했으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고단했으나 내색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책상을 밝히며 다짐한다. 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아파트 한 채가 아니라, 80세가 되어서도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당당한 엄마의 뒷모습일 것이라고. 낀 세대로 태어나 낀 세대로 살아가지만, 그 사이에서 우리는 가장 유연하고 단단한 '삶의 지혜'를 배운 것이 아닐까.


​비록 몸은 고될지언정, 누군가를 부양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나를 지킬 능력이 있음에 감사하며 나는 오늘도 낀 세대의 외줄 타기를 즐겁게 이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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