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는 자유의 무게, 함께라는 구속의 부피

혼자를 선택할지 둘을 선택할지

by 박지숙

강남의 한 치과, 정적만이 흐르는 진료실에서 은수는 오늘도 완벽한 보철을 완성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손길, 예리한 진단. 그녀는 남을 믿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내 공간을 내어주고, 내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오염'과 같았다. 덕분에 그녀는 마흔 후반의 나이에 남부럽지 않은 자산을 모았고, 대학 강단에서는 '철의 여교수'로 불리며 독신주의자들의 우상이 되었다.


하지만 어젯밤, 지독한 몸살 기운에 눈을 떴을 때 은수는 처음으로 자신의 '완벽한 성'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타오르는 갈증에 물 한 잔이 간절했지만, 손끝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아무에게도 전화를 걸지 못한 채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100억 대 자산가도, 박사 학위를 가진 교수도, 고열 앞에서는 그저 '돌봐줄 이 없는 혼자'일 뿐이었다.


같은 시각, 지영(가명)은 부엌 불을 켰다.

남편보다 연봉이 높지만, 그녀의 일과는 남편보다 두 시간 일찍 시작된다. 아이들의 아침, 남편의 셔츠, 그리고 출근 전 짬을 내어 하는 투잡 업무까지. 지영은 가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묻는다. "나는 누구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걸까?" 명절이면 허리가 끊어질 듯 전을 부치고, 시댁 제사며 친정 행사까지 온몸으로 막아내는 그녀는 늘 '나'를 잃어버린 기분이다.

"좋겠다, 은수는. 자기 몸 하나만 챙기면 되잖아." 지영은 친구 은수를 부러워하며 말한다. "좋겠다, 지영이는. 아플 때 물이라도 떠다 줄 사람이 있잖아." 은수는 친구 지영을 그리워하며 답한다.


결혼해서 사는 게 정답일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게 정답일까.

은수의 삶은 '자유'라는 이름의 광야다. 끝없이 펼쳐져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지영의 삶은 '책임'이라는 이름의 정원이다. 꽃도 피고 열매도 맺지만, 정원을 가꾸느라 정작 자신의 허리는 굽어간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삶에서 내가 갖지 못한 조각만을 골라 부러워한다. 은수의 화려한 통장 잔고 뒤에 숨겨진 서늘한 고독을 보지 못하고, 지영의 시끄러운 식탁 뒤에 숨겨진 지독한 피로를 외면한다.

정답은 없다. 다만 선택에 따른 '비용'이 있을 뿐이다. 은수는 고독을 지불하고 자유를 샀고, 지영은 자유를 지불하고 온기를 샀다. 둘 다 인생이라는 파도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노를 젓고 있을 뿐, 누가 더 행복한지는 그 누구도 단정 지을 수 없다.


어쩌면 인생의 본질은 '무엇을 선택하느냐'보다 '내가 선택한 외로움을 어떻게 껴안느냐'에 있을지도 모른다. 혼자 살며 느끼는 '돌봐줄 이 없는 서러움'이나, 함께 살며 느끼는 '나를 잃어버린 허무함'이나, 결국은 우리가 인간이기에 짊어져야 할 각기 다른 모양의 배낭일 뿐이다.

오늘 밤, 은수는 비싼 와인 한 잔으로 고독을 달래고, 지영은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피로를 잊는다. 두 사람 모두 내일이면 다시 치열한 자신의 삶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그녀들이, 그리고 우리가 어떤 길을 걷고 있든 한 가지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선택한 그 길 위에서 흘리는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삶의 조각을 조금 더 따뜻하게 응시해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미로 같은 인생을 완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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